교과서 안 먹히는 뉴노멀…깊어지는 이창용 고민[BOK워치]
미국채 장기물 금리 상승세에 국고채 금리 동조
美 중립금리 오르나 韓은 내려 통화정책 '딜레마'
'일시적' 가능성도…11월 FOMC 파월 발언 주목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통화정책에 있어 큰 고민에 빠진 듯하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16년여 만에 5%를 돌파하는 등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고금리 장기화라는 ‘뉴노멀’(새로운 기준) 시대가 열리는 듯한 양상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장기 국채금리 상승세는 시장에서도 고금리 장기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시장에선 금리 인상에 대한 경제 회복력, 재정적자 위험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전문가들은 대부분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금리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재정적자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고금리 장기화에 힘을 더한다.
우리나라 상황은 사뭇 다르다. 인구 고령화·저출산 등 구조적인 요인으로 중립금리와 잠재성장률이 모두 하향 조정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중립금리가 미국과 반대로 하향 조정된다면, 한은 입장에선 기준금리 인하 등 운신의 제약이 따를 수 있다. 가령 우리 경제가 나빠져 금리를 낮춰야 함에도 미국이 고금리를 지속하는 탓에 금리를 독자적으로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같은 고민을 외신 인터뷰를 통해 털어놨다. 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모로코 마케라시에서 진행된 미 CNBC 인터뷰에서 “고금리 장기화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체제가 되고 있지만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장기 침체 요인이 상당히 높다”며 “고금리 장기화라는 글로벌 요인이 고령화에 따른 중립금리 하향을 얼마나 상쇄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는 부분은 국고채 장기물 금리가 미국채 금리와 동조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대담에서 “교과서에선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독립적인 통화정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국내 금융상황이 미 국채 금리 등에 더 많이 동조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가 말한 ‘교과서’는 거시경제학에서 나오는 ‘트릴레마’(trilemma) 명제다. 세 가지(자본의 완전 이동·외환 안정성·통화정책 독립성) 정책 목표 간에 상충관계가 있어 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고, 두 가지만 고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는 1998년 자유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하면서 통화정책 독립성과 자본시장 완전 이동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현재 통화정책 독립성이라는 정책 목표도 달성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 총재의 고민은 국내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지난 19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과 얘기하고 세계 석학이라는 사람한테 물었는데 다들 ‘좋은 질문이다’라고만 하고 답을 모르는 것 같았다”며 “선진국 중립금리가 올라가고 우리나라가 내려가면 독립적으로 금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향을 받아 어떤 변화가 있을지 공부하고 있지만 답이 안 보인다”고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27일 국회 종합 국정감사에선 “미국의 금리상승 기조가 일시적인 것인지, 장기적인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장기적이라면 우리에게 참 많은 정책 딜레마를 준다”고 했다.
최근 금융통화위원회에선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에 대한 깊은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잠재성장률에 대해 담론 수준의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부 항목별로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샅샅이 따져보자는 취지다.
이 총재는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가 일시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일시적이라면 관리를 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파월 의장 발언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한은 통화정책국은 지난 30일 블로그를 통해 “시장의 관심은 지난 9월 회의에서 제시한 고금리 장기화, 즉 2024년말에도 5%대 정책금리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이번 회의에서 변화할지에 쏠리고 있다”고 했다.
하상렬 (lowhig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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