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채찍 대신 라이다와 AI로 고대 신비 파헤치는 인디애나 존스

박건형 테크부장 2023. 10. 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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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구진, 위성사진으로 300년대 로마 유적 진실 새로 밝혀
레이저 활용한 ‘라이다’는 세월의 흔적 꿰뚫는 3차원 지도 만들어
2000년 전 폼페이 숯더미 파피루스 두루마리 글자까지 AI로 해독
일러스트=이철원

미국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는 1912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울산 장생포에 머물렀다. 당시 그가 잡은 귀신고래 골격은 뉴욕과 워싱턴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앤드루스는 고비 사막, 몽골, 북극을 누비며 상어, 뱀, 늑대, 중국군에 쫓기던 경험을 자서전에 남겼다. 1981년 조지 루커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탐험에 나설 때면 채찍과 중절모를 챙긴 앤드루스를 부활시켰다. 가장 유명한 영화 음악 ‘레이더스 마치(침입자의 행진곡)’의 주인공 인디애나 존스가 이렇게 탄생했다. 고대 사원과 밀림에서 나치 독일이나 도굴꾼과 싸우며 전설의 보물을 찾는 모험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현실의 존스는 정글도를 휘둘러 길을 만들지 않는다. 채찍의 자리는 위성, 라이다(LiDar), 인공지능(AI)이 대신한다. 다트머스대 연구팀은 26일 국제 학술지 ‘고대(古代)’에 시리아 지역에서 로마 무역로에 건설된 구조물을 여럿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유적 첫 발견자는 1920년대 예수회 신부 앙투안 포이데바르였다. 그는 복엽기(複葉機)를 타고 티그리스강 일대를 날며 구조물을 100개 이상 찾았다. 포이데바르는 “300년 무렵 페르시아 사산 왕조를 방어하려 건설한 로마 요새 장벽”이라고 했다. 다트머스대 연구팀은 위성으로 더 높은 시점에서 이곳을 살폈다. 구조물 4500개가 지중해에서 티그리스강까지 뻗어 있었다. 요새라 여긴 것은 무역상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정류소이자 휴게소였다. 항공 고고학 창시자 포이데바르의 100년 정설을 우주 고고학이 새로 썼다.

‘여자 인디애나 존스’라는 세라 파칵 앨라배마대 교수는 탐사 지역 선정에 보물 지도 대신 위성 서비스 ‘구글 어스’를 쓴다. 파칵은 640km 상공에서 촬영한 적외선 위성사진에서 숲의 색이 주변과 다른 곳에 유적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적외선은 엽록소에 반사되는데 유적 위에서 자란 식물은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 색이 옅다는 것이다. 파칵은 지금까지 유적 3000곳, 피라미드 12곳, 고대 무덤 1000기 이상을 찾았다.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첫 편 ‘레이더스’의 주 무대 고대 이집트 타니스의 옛 지도를 2016년 완성한 것도 그였다. 파칵은 “이집트는 서구의 주요 감시 대상이기 때문에 풍부한 위성 데이터가 있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위성을 뛰어넘는 고고학 혁명도 있었다.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알려진 라이다의 등장이다. 라이다는 초당 200만회 이상 레이저 펄스를 쏘고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 3차원 지도를 생성한다. 레이저의 짧은 파장은 잎과 잎, 뒤엉킨 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탐사에 몇 년씩 걸리던 광활한 지역 지도가 몇 시간이면 만들어진다. 스페인 북서부 5세기 거대 요새, 과테말라 고대 마야 유적, 500~1500년대 아마존 원주민 유적 수백 곳과 잊힌 2차세계대전 격전지가 라이다 탐사로 올해 드러났다. 라이다는 영원할 것 같던 권력의 빛바래고 무너진 궁전과 그 위로 자라난 세월의 흔적도 꿰뚫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고학은 진화한다. 네브래스카 링컨대 학생 루크 패리터는 지난 8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사라진 폼페이에서 불에 타 숯더미처럼 탄화(炭化)한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있는 보라색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단어를 읽어냈다. 이른바 ‘베수비오 챌린지’라는 대회 참가자 1500명은 켄터키대 연구진이 20년간 강력한 X선으로 촬영한 두루마리 영상에서 글자를 판독한다. 섬유질인 파피루스에 잉크로 쓴 글자는 완전히 스며들지 않고 0.1mm 정도 솟은 상태로 굳는다. 참가자들은 AI 프로그램으로 두루마리를 가상으로 펼쳐가며 글자를 재구성하고 판독한다. 연말까지 최소 140자로 구성된 구절을 4개 이상 먼저 읽으면 상금 70만달러를 준다. 이런 탄화 두루마리가 1000개가 넘는다. 판독에 성공하면 생생한 2000년 전 로마 기록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미래를 개척하려 만든 첨단 기술이 과거도 더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어스시의 마법사’를 쓴 판타지 문학의 거장 어슐러 르 귄은 고대 유적을 보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사람은 전설과 사실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과학이 이렇게 답한다. 언젠가는 모두 구별하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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