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벌레도 자꾸 보면 귀엽다···자연다큐+예능 결합한 KBS ‘지구별 별책부록’

김한솔 기자 2023. 10. 3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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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다큐-지구별 별책부록>에서 유세물 박사로 활약한 개그맨 유세윤. KBS 제공

생생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단 몇분의 장면을 위해 외부와 단절된 채 며칠씩 잠복을 하고, 나비가 우화하는 과정을 촬영하려 애벌레 때부터 애지중지 보살피며 키우기도 한다. 이렇게 열심히 찍은 자연 다큐멘터리, 대체 누가 보는 걸까? 아무리 공들여 만들어도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KBS <환경스페셜>팀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2부작 환경다큐예능 <비공개 다큐-지구별 별책부록>(이하 ‘지구별’)은 그런 고민 속에서 탄생했다. ‘지구별’ 아이디어를 처음 기획한 조나은 KBS PD를 지난 28일 인터뷰했다.

“내부에서 ‘엄숙주의’ 탈피한다며 좋아했어요. ‘환경스페셜팀’도 아는 거죠. 아무리 해도 (자연 다큐는) 자연을 좋아하는 분들만 보는 거예요. 이 방송은 자연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진 않거나, 자연에 아주 작은 관심만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게 기획했어요. ‘웃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요.”

‘웃음 담당’은 진행자인 유세물 박사다. 70년 가까이 생물학을 전공한 자연생태 전문가, 유 박사는 개그맨 유세윤의 ‘부캐’(부캐릭터)다. 유세윤은 무표정한 얼굴로 ‘진짜’ 전문가들에게 쉴 새 없이 ‘드립’을 친다. 민물가마우지 둥지를 관찰하기 위해 힘겹게 나무를 타고 오르는 전문가를 구경하며 여유롭게 믹스 커피를 마시고, 늑대거북의 ‘치악력’ 테스트가 필요하다며 조 PD의 신형 아이폰을 거북이에게 넘겨버리기도 한다. 유세윤의 ‘드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거나, 할말을 잃고 ‘현타’가 온 표정을 짓는 전문가들의 모습도 재미 포인트다.

KBS <비공개 다큐-지구별 별책부록>에서 개그맨 유세윤은 자신의 ‘부캐’인 유세물 박사로 등장한다. KBS 제공

‘지구별’의 1·2부 주제는 각각 ‘절멸’과 ‘대발생’이다. 1부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소똥구리가, 2부에서는 유해야생동물 혹은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된 민물가마우지, 늑대거북, 끈벌레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체로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는 생물들이다. 조 PD는 “1부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 2부는 ‘절멸’과 반대로 대발생하고 있는 것들 중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 혐오감을 주는 것들을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1부는 ‘연어처럼’ 예능 파트에서 다큐로 넘어온 김슬기라 PD가, 2부는 조 PD가 연출했다.

1부에서 유 박사는 국립생태원 전문가들과 함께 국내에서 사라진 소똥구리를 찾으러 몽골 고비사막까지 원정을 나간다. 똥을 먹고 사는 소똥구리를 복원하기 위해 말똥, 소똥, 인분 등을 모아놓고 어떤 똥을 가장 좋아하는지를 실험해보는 장면은 영락없는 예능이지만, 소똥구리가 ‘똥 경단’을 가지고 이동하는 모습이나 그 안에서 알을 낳고 부화하는 장면에서는 <환경스페셜>의 노하우가 드러난다.

‘똥 경단’을 만들고 있는 소똥구리. KBS 제공
소똥구리를 찾아 ‘소똥구리 추적단’이 도착한 몽골. KBS 제공

자연 다큐는 보통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조명한다. ‘지구별’은 꼭 그렇진 않다. 유해야생동물과 생태계교란종,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2부의 분위기는 서늘하다. 생태계교란종인 한강의 늑대거북이 빠르게 번식해 토종생물 서식지를 위협하고 있다는 대목에선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법적으로 발견한 즉시 ‘처리’해야만 하는 늑대거북의 알에서 막 깨어나 움직여보려 애쓰는 손톱만 한 새끼 늑대거북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생태계교란종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한 생명을 앗아가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수백마리의 생태계교란종 생물들이 뒤엉켜 블록 형태로 냉동된 채 쌓여 있는 이미지도 충격적이다. 생태계교란종은 대체로 새끼 때 귀여운 외모 때문에 애완용으로 들여왔다 버려진 것들이 번식한 것이다. 생태계교란종은 아니지만 인간의 재산 등에 피해를 줄 수 있어 ‘유해하다’고 지정된 유해야생동물도 그렇다. “모든 것이 자연보다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지와 연관돼 있다”는 유 박사의 멘트, “인간이랑 살기 싫다”는 끈벌레의 독백에서 제작진의 고민이 드러난다.

산성이 강한 민물가마우지의 배설물은 나무 등 식물이 살기 어렵게 만든다. KBS 제공
생태계 교란종인 늑대거북. KBS 제공

“생태계 교란종을 처리하는 이미지를 내보내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저는 너무 직접적이어서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팀장님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필요할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결정을 했죠. 냉동 후 열처리, 랜더링(동물 사체를 파쇄 후 고온, 고압으로 멸균처리하는 것) 작업을 한다고 해서 랜더링 업체에도 연락을 해봤어요. 그런데 냉동 업체, 운반 업체, 랜더링 업체가 있는데 랜더링 업체는 ‘이게 생태계 교란종’ 이라는 인지없이 그냥 오는 족족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생명을 죽여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듣고 싶었는데, 인간의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책임감이 휘발되는 것 같더라고요. 슬펐어요.”

빨간 끈벌레. KBS 제공

조 PD는 이번 방송을 준비하며 끈벌레 2마리를 사무실에서 몇개월간 직접 키웠다. 끈벌레를 채집한 행주까지 가서 진흙을 퍼오고, 갯지렁이를 잡아서 먹였다. “생물은 보면 볼수록 예뻐져요. 남들은 다 징그럽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애가 너무 귀중하고, 좀 잘 먹었으면 좋겠고. 방송하기 전에는 이런 게 눈에 잘 안 띄었거든요? 그런데 인식을 하고 나니 엄청 많이 보이는 거예요. 끈벌레도 한강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살고 있던 애거든요. 많은 것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구나, 알게 됐어요.”

조나은 PD가 회사 사무실에서 애지중지 키운 끈벌레. 조나은 PD 제공

2부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지구별’은 정규 편성이 확정되진 않았다. 조 PD는 만약 방송을 더 한다면 비둘기, 동양하루살이 같은 생활 밀착형 생물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다고 한다. “환경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장르입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갖고 있는 정통성을 활용하는 동시에 웃음도 줄 수 있게 기획했기 때문에, 그런 점을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방송은 KBS 홈페이지와 웨이브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끈벌레를 위해 진흙과 갯지렁이를 날랐다. 조나은 PD 제공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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