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때까지 체육점수 꼴등…이젠 한 번에 400km 걷는다

서현우 2023. 10. 3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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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컬 100] ‘깽이’ 신은경씨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 편집자 주

100km, 200km, 300km, 400km…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하게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초야에 묻혀 있다. 월등한 등력을 딱히 내세우지도 않고 치열하게 걷는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길에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또 광대한 인터넷 세계에도 행적을 남기지 않는다.

과시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태도와 신념은 꽤 울림을 준다. 다만 마지막 문장은 산악문화의 관점에선 다소 아쉽다. '산행기를 남겨야 산행이 완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충실하게 산행기를, 특히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확 줄었다. 사진이 귀하고 GPS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엔 글이 이 모든 모자란 부분을 채워 넣어야 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에 이어 GPS에 카메라까지 탑재된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금은 사진 수십 장에 글 한 줄로 모든 걸 설명한다. 물론 사진이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충분히 설명하겠지만 진솔한 내면이나 길의 역사, 인문학을 드러내긴 어렵다.

백두대간 동계 종주 중인 신은경씨.

신은경씨는 이런 세태를 역주逆走해 역주力走하는 보기 드문 여류 신인 산꾼이다. 산행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이 덜컥 지리산 종주에 덤벼들었을 정도로 저돌적인데, 산행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하게 전 과정을 솔직하고 꼼꼼하게 기록한다. 자신의 두려움과 나약함은 그대로 고백하고, 또 어떤 가치가 길 위에 숨겨져 있는지 치밀하게 조사해 함께 소개한다.

매섭게 기록을 쌓아가며 성장한 그는 최근 서해안길 400km를 한 번에 걷기도 했다. 인터뷰 요청에 "훨씬 잘 걷는 선배들이 많은데 내가 '산지컬'이 좋다고 하면 욕먹는다"며 주저한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단순히 체력이 좋은 사람을 찾는 연재라면 육상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맞다. '산지컬' 연재는 산에서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일 뿐"이라고.

신씨는 제주 해안둘레길도 일시 종주했다.

'소아신장병'으로 운동 못 해

신씨는 본인을 "시골사람"이라고 했다. 전북 익산에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논산 연무대로 이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키는 작은 편이지만 탄탄한 체격인데 어릴 땐 '약골' 그 자체였다고 한다.

"큰집이 걸어서 3분 거리였어요. 엄마 따라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숨이 안 쉬어져서 쓰러졌죠. 소아신장병이라는 병이었어요. 퇴원하는데 의사가 '운동하지 마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평생 운동하면 안 되는 줄 알고 살았어요. 중고등학교 내내 체육 교과목에선 열외했고, 체력장도 최하 점수였죠."

대학교에서 영상을 전공한 후 서울 모 방송국에서 연출, 작가 생활을 이었다. 외로운 타향살이에 격무까지 덮치자 몸이 급속히 나빠졌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건강검진을 받아보라는 상사의 권유에 따라 병원을 갔는데 검사 결과 대부분 멀쩡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운동해도 되는 몸이라는 걸.

"운동해도 된다는 걸 알았지만 할 시간이 없었어요. 방송국 생활이 하혈까지 할 정도로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가까운 대전의 한 인쇄소에서 사무직으로 오래 일했죠."

백두대간 종주 중 장경인대 증후군으로 탈출한 댓재. 그는 자력으로 빠져나와 의미가 깊었다고 한다.

평범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는 천성이 평범을 거부했다.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냥 지르고 봤다. 친구들하고 놀러 가면 다 무섭다고 마다할 때 혼자 번지점프에 도전하는 그런 성격이었다. 심심해서 2012년 KBS '우리말겨루기' 대회에 덜컥 나가서 우승하기도 했다. 산도 그렇게 시작했다. 지리산을 종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원래는 취미활동으로 사진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주요 멤버가 제주도로 이사 가는 바람에 모임이 깨졌죠. 그때 마침 해보고 싶은 게 생겼어요. 지리산 종주였죠. 산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어디서 지리산 종주란 걸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냥 딱 마음속에 떠올랐어요. 그래서 대전의 한 안내산악회를 찾아 신청했죠. 바로 전화 오더라고요."

안내산악회 대장은 겁 없는 신출내기가 염려됐다. 그래서 먼저 종주 전에 2번 정도 산행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2016년 5월 순천 조계산에서 첫 산행을 맛봤다. 비교적 어린 나이라는 팩트, 출사 모임 때 이곳저곳을 큰 무리 없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합쳐져 묘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산에 들었다. 코스는 12km. 결과는 참혹했다. 대열 맨 끝 후미 대장이 밀어줘 간신히 꼴찌로 겨우겨우 완주했다.

"'아 나는 산이 맞지 않는 사람인가?' 라고 절망했었어요. 그래도 지리산 종주는 꼭 해보고 싶었기에 그 다음 계룡산 산행을 10km 정도 했죠. 또 이건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성중 종주를 갔는데 희한하게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너무 즐겁고 아프지도 않았죠."

일몰을 배경으로 서해안길을 걷고 있는 신은경씨.

이 경험으로 지리산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가장 좋아하는 산이 됐다. 그는 "순수한 첫사랑을 시작한 느낌"이었다며 "너무 지리산이 좋아서 경품 추첨 때 1등이 한라산, 2등에 지리산이란 이름이 각각 붙어 있었는데 더 비싸고 좋은 1등 상품에 당첨이 되고도 지리산 경품으로 바꿔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닉네임을 별명 '깽이' 앞에 '지리'를 붙여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2년 동안 안내산악회를 따라다니는 생활이 시작됐다. 산악회에서 만난 인연들은 그를 조금씩 더 긴 산행으로 이끌었다. 등산 시작 1년 만에 30~50km가량의 무박 중장거리 산행을 즐기게 됐다. 버거운 산행도 꽤 잘 따라가자 설악산 태극종주까지 눈독을 들였다. 신씨 포함 여성 2명, 남성 2명이 조를 이뤘는데 신씨를 제외한 나머지 대원이 초장거리 산행으로 유명한 산악회 J3클럽 회원이었다.

"그러니 저도 자연스럽게 가입해서 활동하기 시작했죠. 산에 다녀오고 열심히 후기를 썼는데 제가 아무래도 방송국 작가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짧게 못 쓰겠더라고요. 구구절절 죄다 썼죠. 배병만 방장(클럽 회장 호칭)님이 그걸 좋게 봐주셨는지 한 번 같이 산행하자고 했어요. 그 '한 번 같이 산행'이 백두대간이었죠."

인왕산 수성동계곡에서 만난 신은경씨. 맑고 발랄한 성격이다.

백두대간이 산 인생을 바꿨다

그는 "내 산 인생은 백두대간 전후로 나뉜다"고 돌아봤다. 그 전에는 맹목적으로 사람들 뒤꽁무니를 좇아다니는 산행이었는데 대간을 완료한 후로는 직접 지도를 보고 걷고 싶은 길과 오르고 싶은 산을 찾기 시작했다. 발랄하던 산행기에 무게감도 생겼다.

"한 번 보고 다신 찾지 않는 글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산길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풀이 자라면서 묻히는데 후기도 찾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찾아볼 만한 자료로서 가치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도 해서 쓰고 있어요. 후기 한 번 쓰려면 시간을 한참 소모해야 하죠.

그래도 이 작업이 즐거워요. 최근에는 아예 이쪽으로 진로를 잡아볼까 고민하고 있어요. 산행기를 기고하거나, 책을 쓰거나, 1인 유튜버도 할 수 있겠죠."

백두대간은 정말로 강렬한 기억이었다. 산을 몰랐을 땐 그냥 산은 솟은 봉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간을 타면서 산 그 자체에서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봤다. 자연 지형뿐만 아니라 그 봉우리 하나하나마다 이름을 붙인 조상들의 삶까지 느꼈다.

그는 서해안 400km 일시 종주 후 몇 주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발바닥이 아팠다고 한다. 인터뷰 후인 지난 9월 11일, 그는 남은 서해안 135km를 마저 걸어 동남서해안 총 3,202km를 완주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2019년 12월 겨울 깜깜한 오밤중에 청옥산~두타산~댓재 구간을 지나다가 왼쪽 무릎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장경인대 증후군이었다. 신씨는 "청옥산에서 두타산까지 간 기억이 지금도 깡그리 사라졌다"며 "통증이 너무 심했던 것도 있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서가던 배 방장님이 꾀병부리는 줄 알고 독려차원에서 빨리 가야 된다고 소리 질렀어요. 저는 진짜 아픈데. 그래서 어떻게 간신히 따라잡으니 닭똥 같은 눈물이 절로 나더라고요. 그래도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하는데 속도가 너무 더뎠죠. 결국 119를 부르려고 했는데 배 방장님이 막더라고요. '우리 좋다고 하는 일인데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면서요. 나중에 들으니 '무작정 119를 부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누구를 불러서 어떻게 조치할지 다 계산하고 있었다'고 했고요."

결국 끝까지 자신의 두 발로 모든 통증을 극복했다. 댓재에 내려서서 시커멓게 들어선 다음 산을 본 순간을 "인생에서 제일 잘한 순간"이라고 했다.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가 이겨낸 건 청옥산도, 두타산도, 장경인대 증후군도 아닌 오롯한 자신이었다.

서해안길 종주 중 갯벌에 빠지지 않으려고 기어서 통과하고 있다.

코리아 둘레길 아닌 '해안'을 걷다

다음은 한국 둘레를 걸었다. 최근 걷기꾼들 사이에서 유행인 '코리아 둘레길(동해안의 해파랑길, 남해안의 남파랑길, 서해안의 서해랑길과 DMZ 평화의 길을 합쳐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그 GPS 기록이 좀 남다르다. 정말 해안선만을 따라 걸었다. 정부에서 고시한 코리아 둘레길은 안전을 위해 해안에서 가까운 도로나 임도를 주로 따르도록 돼 있는데 신씨는 정말 바다에 딱 붙어서 걸은 것이다. 단순히 해수욕장을 좀 걸은 것이 아니라 험난한 바위 구간, 갯벌을 전부 뚫고 갔다. 때로는 바다에 뛰어들어 걷기도 했다. 그것도 많이 걸었다. 적게는 50km, 가장 많이는 400km를 한 번에 걸었고 평균적으로는 100km 선이었다.

"엄청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이 길은 한 번에 길게 걷는 게 합리적이라서 그랬어요. 생각해 보세요. 지금 코리아 둘레길은 1개 코스가 20km 정도 됩니다. 서울에 산다고 가정하면 한참을 대중교통 타고 땅 끝까지 내려가서 달랑 1개 코스 걷고 또 한참 올라와야 되는데 그걸 수십 번을 해야 됩니다. 심지어 길조차 생각보다 바다가 잘 나오지 않아서 안 예쁘고 지루해요. 그러니 한 번에 최대한 많이 걷고 오는 게 좋죠. 물론 법적으로 출입이 금지된 구간은 우회하고요."

"그렇군요. 근데 왜 편한 코리아 둘레길이 아니라 해안길을 택하신 건가요?"

"저는 남들과 다르게 하는 걸 추구하는 성향이에요. 모두가 안전하게, 쉽게 걸어간 길을 똑같이 걷는 것에 대해 재미를 못 느껴요.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에 이런 글귀가 있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딱 그겁니다."

코리아 둘레길과 달리 해안길을 고집했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안 절경들을 다수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선문답이 있다. '산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에 관한 것이다. 산을 보러 가려면 산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산 밖에 있어야 잘 보인다는 것이다. 신씨는 "우리 땅의 가장 끄트머리들을 돌았으니 그만큼 우리 국토를 잘 봤다고 할 수 있다. 오르고 싶은 산도 많이 생겼고, 특히 서해안에선 절벽과 파도로 곳곳에 감춰진 환상적인 비경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백화점 보석코너에 온 줄 알았다. 공룡능선, 그랜드캐니언에 버금간다"고 했다.

해안길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서 걸을 수 있는 구간이 바뀐다. 그러니깐 매번 다른 길이 되며, 그러므로 똑같은 길을 걸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다.

"서해 무안 갯벌을 가로질러 가보겠다고 네 발로 기어서 탈출하기도 했고, 방조제 길이 풀로 꽉 차올라서 딱 한 뼘 간신히 딛을 수 있는 공간만 있어 곡예하듯 지나기도 했어요. 또 밀물 시간을 체크했는데도 생각보다 물이 빨리 차올라 바닷물에 가슴 깊이까지 빠져 걷고, 벼랑을 아슬아슬 걸어 지나가기도 했고요. 정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길인데 그만큼 정말 보물 같은 길이었어요.

그런데 간척으로 우리나라 갯벌이 해마다 1%씩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너무 안타까워요. 사실 다른 유명 산길보다 이 길을 먼저 걸었던 것도 이 이유가 큽니다. 해안이 더 자연 그대로일 때 걸어보고 싶었어요."

운행 복장의 신은경씨

한 번에 천리를 걷다

동해안과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으로 올라오던 그는 최근 마지막 남은 535km 중 400km를 한 번에 걸었다. 그러니깐 '천리행군'이다. 발바닥에 수많은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또 잡히는 강행군이었다.

"한여름 땡볕 장거리를 제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 한 번 붙어보고 싶었어요. 다들 궁금하지 않나요? 내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또 내 체력이 어디까지 있고, 또 어디까지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지요. 물론 발바닥이 아팠지만, 부러진 것도 아니고 충분히 움직일 수 있으니 가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사람이 할 수 있다고 마음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지옥의 가시밭길도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380km 지점이네요. 제가 그 지점이 400km 지점이라고 착각하고 걷고 있었어요. 그래서 5, 4, 3, 2, 1km씩 카운트다운하면서 신이 잔뜩 나서 걸었죠. 앞으로 100km는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도착하고 긴장이 딱 풀어지고 난 상태에서 20km를 더 걸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말 온 몸과 마음이 지쳐서 다시 출발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마비됐던 발의 통증도 다시 되돌아왔고요. 그걸 꾹꾹 참으면서, 기합으로 간신히 마저 길을 이을 수 있었죠."

만나는 길손에게 나누기 위해 막대 사탕을 들고 다닌다.

"다 걸어보니 어떤가요? 그런 장거리 운행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전에는 상처가 생기는 걸 두려워했어요.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그런데 이제는 그런 상처가 훈장이란 걸 알게 됐고 더 이상 개의치 않게 됐습니다. 또 이게 내 몸이 힘들 때 만나는 '나'가 있어요. 정말 힘들 때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면 인생을 사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어느 정도까지 아프거나 지친 걸 견딜 수 있는지 내구도도 알 수 있고요. 모든 일에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자신감도 생기죠."

"힘들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참아야죠. 처음에는 저만 산행이 힘든 줄 알았어요. 주위에 정말 잘 걷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속으로 '저 사람들은 힘들지 않나?' 생각했죠. 근데 아니더라고요. 제가 힘들 땐 그분들도 다 힘들었어요. 그래도 그냥 참는 거죠. 그걸 아니까 저도 참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별다른 노하우가 있다고 하지 않았다. "장거리는 노하우가 쌓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쌓아 참는 양을 늘리는 과정"이란 설명이다. 그는 "빗속에서 400km 국토종주한 선배의 발을 본 적이 있다"며 "비를 맞아서 발 피부가 흐물흐물한데도 완주한 걸 봤기 때문에 걸어지면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해안에서 주운 작은 부표를 기념물로 달고 다닌다.

또 그의 배낭은 평범했다. 갈아입을 옷과 식량 정도다. 다만 다소 과했다. 스틱 꿀부터 홍삼팩, 막대사탕을 포함한 다양한 사탕과 빵과 물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혼자 먹기에 너무 많이 챙긴 것 아니냐"고 묻자 "너무 많이 챙긴 것이 맞다"고 했다.

"고독하게 혼자 걷는 것보단 길에서 만난 분들에게 베풀고, 소통하고, 정을 나누려고 노력해요. 물이나 음식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죠. 만약 동네 마을회관에서 라면이라도 끓여 주면 꼭 현금으로 보답하고요. 그래야 거기서 오래 사신 그분들의 이야기도 들어서 더 풍성한 걷기가 되죠. 또 제가 남긴 산행기를 보고 누군가 이 길을 똑같이 지날 여행자들을 위한 일이기도 해요. 이 분들이 저희의 기억을 떠올리며 더 따뜻하게 맞아주겠죠? 미국 장거리 하이킹 코스에 나타난다는 '트레일 엔젤'과 같은 역할을 해주시는 거죠."

"마지막으로 과거의 본인처럼 거친 산행을 꿈꾸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너무 고민하지 말고, 남 눈치도 보지 말고 하고 싶으면 일단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진짜 좋아서 하고자 나서면 신이나 자연이나 사람이 모두 도와줘요. 그리고 먼저 백두대간부터 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내가 장거리 산행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걸어 나갈지도 결정하는 게 쉬워집니다.

또 기왕 돈 써가며 걷는데 후기를 조금 정성들여서 썼으면 좋겠어요. 그 후기가 곧 걷는 데 들인 돈이 만든 자기 재산입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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