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 코앞인데… 폭우 폭염에 속 썩은 배추, 출하량 70% 줄듯

강릉/조유미 기자 2023. 10. 30.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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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 앞두고 시름 깊어진 농가
박수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이 27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의 한 가을배추 밭을 방문해 김장철 대비 가을배추 생육 상황 및 공급 여건을 점검하고 있다. 2023.10.27./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지난 2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송정동의 238만㎡(약 72만평) 밭에는 푸릇푸릇한 배추가 빼곡했다. 8월 파종해 10월 말부터 수확하는 ‘가을 배추(김장 배추)’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올해 배추 작황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고 묻자 농민 조병주(61)씨는 “대부분 속이 빈 ‘꿀통’”이라고 했다. 비가 내린 뒤 갑자기 기온이 뛰면 배춧속 빗물 온도가 오르며 속부터 썩는다고 한다. 속이 녹아 내린 배추를 ‘꿀통’이라고 불렀다.

배추를 벌리자 속잎이 누렇게 말라 있었다. 여물지 못하고 잎이 풀어진 배추도 보였다. 올해는 파종 직후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뿌리가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기온도 평년보다 크게 높았다. 정작 비가 와야 할 때는 가물었다. 이달 강릉에는 29일까지 4일간 총 26.1mm의 비가 내렸다. 평년 강수량인 113.9mm의 23%에 불과했다. 반면 지난 8월에는 평년 강수량(229.3mm)의 2배가 넘는 520.8mm의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더니 9월 평균 기온은 평년의 20.5도보다 2도 가까이 높은 22.4도까지 치솟았다. 조씨는 “이런 날씨라면 올해 출하량이 예년보다 70~80%는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올해 폭염과 폭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배추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전국 평균 기온은 22.6도로 4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후 변화가 심해지자 농민들은 “배추 농사 못 짓겠다”고 했다. 작황이 좋지 않는데 정부가 ‘물가 잡겠다’며 비축한 물량을 풀면 겨우 생산한 배춧값마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농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고 했다.

들춰보니 ‘속 빈 배추’ - 지난 25일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 배추밭에서 본지 조유미 기자가 수확을 앞둔 가을 배추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올해 폭염과 폭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무름병에 걸리고, 속이 녹아내려 썩은 배추가 상당수였다. /독자 제공

올해 폭염과 늦더위는 고랭지 배추에 직격탄이 됐다. 배추는 15~20도의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름철 낮 기온이 30도까지 오르면 노지(露地) 재배가 어렵다. 그래서 9월 말 출하가 마무리되는 ‘여름 배추’는 주로 해발 800m 이상의 고랭지에서 재배된다. 올해는 폭염과 폭우가 반복됐고, 배추를 물러 썩게 만드는 ‘무름병’이 번지는 환경이 됐다. 고랭지 밭이 많은 강원도 태백시의 경우 올해 여름 배추를 한창 출하할 9월 평균 기온이 18.2도로 최근 10년 새 가장 높았다. 평년 기온은 16.2도다. 비가 내린 날도 평년 12일에서 올해 15일로 늘었다. 고온과 습도가 겹치면서 ‘무름병’이 돌았고 다 키워놓은 배추가 못 쓰게 됐다. 최근 배춧값이 포기당 6000원 안팎으로 평년보다 20~25% 정도 높았던 대표적 이유가 여름 배추 산지인 고랭지 작황이 나빴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달 말부터 전남 해남 등에서 가을 배추가 본격 출하되면 배춧값도 안정세를 찾을 전망이다.

기후 변화로 피해를 입은 건 배추뿐이 아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사과와 배, 단감, 포도 등 주요 과일 생산량이 전년보다 모두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잦은 비와 고온’ ‘고온다습한 기온이 부른 병해충’을 원인으로 꼽았다. 전국 단감 생산량 1위인 경남에선 지난 21일 기준 전체 단감 재배 면적 5800ha 중 41%인 2403ha가 탄저병 피해를 입었다. 탄저병에 걸린 단감 열매는 흑갈색 반점이 생기며 썩는다.

올해 사과 생산량도 43만5000t으로 전년의 56만6000t보다 23%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이상 고온으로 꽃은 일찍 피었는데,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며 냉해 피해를 입어 열매 자체가 많이 맺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덕교 고랭지채소강원도연합회 회장은 “기후 변화와 재해가 해마다 심해지면서 공들여 키운 농작물이 못 쓰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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