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든 생고기든 범했다”…400쪽 책을 자위 묘사로 꽉 채운 거장 [나쁜 책]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0. 2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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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책-16] 필립 로스 ‘포트노이의 불평’
[금서기행, 나쁜 책]은 전 세계 현대의 금서를 여행합니다. 국가가 발행을 중단시킨 문학, 좌우 논쟁을 촉발한 논픽션, 외설의 누명을 쓴 예술, 동서고금의 필화 스캔들을 다룹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난데없이 금서로 지정된 소설이 있습니다. 호주에서도 ‘음란법’에 따라 수입이 전면 금지됐던 책입니다.

필립 로스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Portnoy’s complaint)’입니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온 매체가 앞다퉈 보도했고, 상황이 심각해지자 작가가 한동안 은닉해야 했던 논란 많은 책입니다.

호주 한 유명 출판사는 지역 인쇄소에서 이 책을 찍어 유통하는 ‘비밀작전’을 수행했다가 검찰에 기소됐습니다. 일부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위해 해적판(복제 출판물)을 제작했습니다.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은 400쪽 책 한 권 전체가 전부 소년의 수음(手淫·자위행위) 이야기로 꽉 채워진 작품입니다. 영미권을 발칵 뒤집은 이 소설은 왜 금서였을까요.

세계 최고의 지성(知性) 필립 로스 작가의 모습. 26세 때 발표한 첫 소설로 미국 최고 권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필립 로스는 퓰리처상, 맨부커상, 백악관 문화예술훈장,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 골드 메달 등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전부 휩쓴 거장입니다. 한동안 노벨문학상 수상이 유력했지만 2018년 눈을 감으면서, 결국 노벨상‘만’ 못 받았습니다.
필립 로스의 논쟁작 ‘포트노이의 불평’ 1969년 초판과 현재 판매되는 영문판, 그리고 2014년 출간된 한국어판. 표지에 적힌 영어단어들이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다 큰 아들의 대변을 검사하려는 ‘결벽증’ 모친
책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제2의 아인슈타인’ 별명이 뒤따랐던 소년 포트노이는 전 과목 성적이 ‘A’,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은 천재 소년이었습니다.

25세 때 미국 하원에서 법률고문직을 맡은 포트노이는 엘리트 변호사로 성장합니다. 30대 중반에 뉴욕시 한 위원회의 부감독관까지 올랐습니다. 포트노이는 겉보기에 너무 매력적인 엄친아였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포트노이의 광기에 가까운 성도착증을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포트노이는 결벽증에 강박장애를 가진 유대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포트노이의 모친은 그가 누나를 ‘똥’으로 불렀다는 이유로, 아들의 입을 갈색 빨랫비누로 벅벅 닦았고, 포트노이가 하굣길에 패스트푸드를 먹었다고 의심해 아들의 대변을 검사하려 했습니다.

포트노이는 그럴수록, 화장실을 자기만의 탈출구 삼았고, 변기 위에서 혼자 자위행위에 몰입했습니다.

필립 로스는 종교·윤리적 이유로 자행되는 사회구조의 억압이 어떻게 개인의 병증으로 이어지는지를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사진은 유대교 전통 모자인 키파를 쓰고 학습 중인 아이들. 위 사진과 기사는 직접적 관련 없음. [매경DB]
(※아래 기사에는 성적인 문장과 혐오적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쾌감을 느끼실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하오니 원치 않는 경우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시기 바랍니다.)
“오, 빅 보이. 바셀린만 있다면 괜찮지 않아?”
이 책은 포트노이가 수음에 집착한 이유를 정신과 의사에게 고백하는 1인칭 문장으로 진행됩니다. 책 한 권 전체가 자위행위 묘사인데, 규범을 조롱하고 금기를 깨부수는 ‘블랙 유머’로 가득합니다.

포트노이는 의사에게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발기가 시작되면 중요부위에 손이 가는 걸 막을 수 없었고, 그래서 수업이나 식사중에도 화장실로 들어가 로켓을 발사해야 했다’고 말이지요.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며 비극적인 동작으로 배를 움켜잡는 거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로켓처럼 내 물건을 떠나 곧바로 머리 위의 전구를 향하더니 놀랍게도, 또 두렵게도 전구를 맞히고 거기 그대로 매달려 있습니다. 막 문을 열려는데 신발 앞쪽에 XX이 콧물처럼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33쪽)

필립 로스가 소년 시절 살았던 실제 집. [필립 로스 도서관 홈페이지 캡처]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되면 소년은, 어디에서든 바셀린을 바르고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소년은 사과, 우유병, 심지어 가족들의 저녁식사로 준비된 식재료까지 ‘범’했습니다.

상상 속에서, 포트노이는 자신을 “빅 보이(big boy)”라고 부르는, 가상의 환청까지 듣습니다.

“내 안에 쑤셔 넣어줘, 빅 보이.” 우스꽝스럽게 X을 박은 구멍 뚫린 사과는 그렇게 소리쳤습니다. “빅 보이, 네가 가진 걸 전부 내게 줘.” 쓰레기통에 감추어뒀던 빈 우유병은 내가 우뚝 선 XX에 바셀린을 바르고 미친 듯이 쑤셔대기 시작하자 애원했습니다. (중략) 어느 날 오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정육점에서 구입한, 믿거나 말거나, 성인식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에 광고판 뒤에서 범해버린 발광한 간 조각은 그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32쪽)

포트노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위에 몰두합니다. 이성을 못 만난 건 아니었습니다. 한 명의 레즈비언과 한 명의 매춘부와 ‘삼자 동맹’을 맺고 침대에 함께 눕는 기행이긴 했지만요. 수위가 아찔해서 고민이 됩니다만, 그나마 수위가 낮은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갑자기 내 인생이 몽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내 XX에 손을 댄 이래 내 머릿속에서 제작해온 그 모든 포르노 영화 속 스타의 XXX을 XXX요…. “이제 내 차례야.”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행을 하면 선행을 돌려받을 자격이 있지.” 선생님, 이 처음 본 여자는 X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놀라운 걸 배우러 특별한 대학에라도 다닌 것 같은 솜씨로 나를 XXX기 시작했습니다. (231쪽)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은 필립 로스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그의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자 그를 글로벌 작가의 반열로 올린 대표작입니다. 1969년 출간된 이 소설은 미국 일부 공립도서관에선 지금도 금서입니다. 자위행위에 대한 세밀하고 역겨운 묘사 때문입니다. [필립 로스 도서관 홈페이지 첫 화면 캡처]
이 무슨 변태자식의 정신나간 야설인가 싶으시겠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비평적으로 완벽한 성공을 거두며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비읍(ㅂ)과 지읒(ㅈ)으로 시작하는 성기 지칭 속어, 쌍시옷(ㅆ)으로 시작하는 성교 지칭 속어 등의 사용은 이 소설에서 ‘그나마’ 애교 수준입니다.

한국 오프라인 서점에서 제약 없이 구매 가능하고, 우리나라 공립 도서관에서도 대출되는 소설이지만 그러나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직접 인용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젊은 거장은 왜 ‘자위행위 소설’을 발표했을까
필립 로스는 1933년생으로, 이 작품을 발표했던 1969년 36세였습니다. 필립 로스는 이미 미국 젊은 거장이었습니다. 26세에 발표한 첫 소설로 미국 최고 권위 전미도서상을 받았으니까요.

따라서 그의 문학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나온 소설의 주요 소재가 하필 사회적 금기인 자위 얘기뿐이었으니, 논란이 당연했습니다.

필립 로스는 왜 자위에 관한 소설을 쓴 걸까요. 이해를 위해선 엘리트이면서 성도착증 환자로 묘사됐던 주인공 포트노이의 심리를 직시해야 합니다.

1980년경 작가 필립 로스의 사진. [Bernard Gotfryd·Wikimedia Commons]
주인공 포트노이의 자위행위 묘사는, 단순한 소년의 일탈이 아니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 행동의 한 상징으로 기능한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포트노이의 부모는 둘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예루살렘을 떠난 이후 디아스포라(특정민족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 떠도는 유랑)의 삶에 시달렸고, 나치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유대인 집단 학살)를 거치면서 삶의 모든 행동을 금지규범으로 도배했습니다.

이 때문에, 성경의 율법 조항(전통)과 핍박의 사회적 맥락(역사)에 의거하여, 포트노이의 부모는 아들의 삶을 ‘조심해라’ 그리고 ‘주의해라’라는 말로 차곡차곡 채워나갔습니다. ‘음수대에서 물 마시지 마라, 더우니 밖에서 야구 경기를 하지 말라, 햄버거는 안 된다, 세상은 병균이 뚝뚝 떨어지는 위험한 곳이다’ 등등 삶 전체를 ‘해서는 안 되는’ 일들로 이해하게 만들었지요.

부모는 논리가 빈약한 미신을 이유로 아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또 부모 개인의 경험에 따라 아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렸습니다. 그의 부모는 “난 뒷범퍼를 누가 들이박은 이후로는 한 번도 운전한 적이 없다”면서 아들이 차를 구매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난 웅덩이에서 넘어진 이후로 물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면서 범죄 가능성이 높은 도시 생활을 이어가는 아들의 생활방식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인공 포트노이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미국 뉴욕시장의 친한 동료 공직자 자리에 오른 고위층 인물이었는데도 말이지요.

이스라엘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고 있는 유대교 랍비의 모습. 이 소설은 유대교 집안에서 성장한 소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규범에 반하는 보편적 일탈의 은유로 읽힙니다. [로이터·연합뉴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라는 문구가 적힌 구약성경의 조항들. 왼쪽부터 출애굽기 23장 19절, 신명기 14장 21절, 출애굽기 34장 26절. 이 조항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않습니다. 어류의 경우 바닷가재와 같은 갑각류 등 비늘이 없는 생물의 섭취도 금지됩니다.
유대인 전통 식품인 코셔(kosher) 음식은 율법에 따라, 육류와 유제품을 함께 섭취해선 안 되는 금지규정이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 성경 구절에 기인하는데, 이 때문에 포트노이는 샌드위치 하나를 먹을 때도 죄책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포트노이는 역사적 맥락과 전통의 수호 때문에 욕망을 말살당해야 했던 그 시대 젊은 개인의 상징이 됩니다. 필립 로스는 바로 그 지점을 포트노이라는 인물의 성도착증을 통해 고발한 것이지요.

지금은 성적 욕구에 따른 소년의 자위가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이해받고 있고, 또 그것을 정신적 장애나 병적 행동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자위행위는 지극히 정당한 행위”라는 인식의 시작점에 바로 이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이 자리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0년 필립 로스에게 최고 권위의 국가인문학메달(National Humanities Medal)을 수여했습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필립 로스 앞애서 “많은 청소년들이 ‘포트노이의 불평’을 읽으면서 포트노이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라고 농담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고 전해집니다. 1969년 ‘포트노이의 불평’이 출간될 당시 오바마 대통령(1961년생)은 8세였습니다. [AP·연합뉴스]
금서 지정하자 밀매 시도, 검찰은 출판사 ‘기소’
‘포트노이의 불평’이 출간된 이후, 책은 미국 도서시장 전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릅니다. 문학성에 대한 찬사가 뒤따랐습니다.

이 작품을 즐기면서,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뉴욕타임스), “섹스에 관한 한 가장 쇼킹한 웃음을 주는 책”(가디언), “이 책은 상스럽다. 그러나 필립 로스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저속한 불평을 늘어놓음으로써 충격과 공포의 감정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보여준다”(타임) 등 찬사가 쏟아집니다.

‘개인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어떻게 이상행동으로 발현되는지’에 대한 작가로서의 심원한 사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은 그렇게 ‘역사와 전통’이 잉태한 전사회적 엄숙주의에 어퍼컷 한 방을 먹인 것이었지요.

1972년 개봉한 영화 ‘포트노이의 불평’의 포스터. 겉으로는 푸근한 미소를 가진 백인 남성이지만 그의 머리 속을 열어보면 온통 벗은 이성 생각뿐인 현대인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IMDb]
평단의 찬사와 상업적 성공 이면에서, 이 책을 거부하는 이들의 움직임도 바빠집니다. 일단 미국 일부 공립도서관은 이 책에 담긴 엄청난 양의 비속어, 그리고 자위행위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이유로 금서로 지정했습니다.

호주 최대 규모 출판사 펭귄북스는 이 책의 수입이 금지되자 ‘밀매’까지 시도합니다. 펭귄북스는 1970년 이 책을 호주 현지에서 7만5000부 인쇄했습니다. 관행대로라면 미국 출판사에서 인쇄한 책을 배로 들여오지만, 이 책은 검열 때문에 반입이 거부됐고, 금지령을 회피하려면 직접 찍어야 했습니다. 책이 유통되자 호주 검찰은 출판사를 기소합니다. 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검열에서 해제됐지만요.

호주에서 금서로 지정됐던 1970년대엔 ‘포트노이의 불평’ 해적판이 나기도 했습니다. 문학가들이 이 책 수백 부를 비밀리에 인쇄해 돌려봤습니다. 2022년 호주의 빅토리아 주립도서관에선 ‘포트노이의 불평 해적판’ 전시회가 열렸는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해적판 판본은 총 3권이라고 전해집니다.

“결국 진짜 내 거라고 할 수 있는 건, 내 XX뿐”
성도착증에 따른 병적인 자위행위를 소재로 다룬 영화나 문학 작품은 적지 않습니다.

영화 ‘셰임’에선 초상류층 주인공 브랜든(배우 마이클 패스밴더)이 하루종일 자위행위와 포르노그래피, 또 콜걸에 중독된 인물로 나옵니다. 그는 미국 도시의 전문직 종사자를 뜻하는 여피(yuppie)이면서, 쾌락에 중독돼 살아가는 현대인을 연기했습니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도 잡지사 직원 레스터 번햄(배우 케빈 스페이시)은 아침마다 샤워 도중 자위행위를 합니다. 딸의 친구에게 욕망을 품는 변태적인 상상력을 이어나간 논란의 작품입니다.

또 영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서 테드(배우 벤 스틸러)는 데이트 직전 긴장감을 풀고자 자위를 합니다. 테드의 귀에는 방금 그가 화장실에서 ‘배출’한 끈적끈적한 ‘그것’이 매달렸는데, 메리(카메론 디아즈)는 그게 ‘헤어젤’인 줄 알고 머리에 바릅니다.

자위행위를 주요 소재로 삼은 영화들. 왼쪽부터 뉴욕 최상류츠의 성도착증을 그린 영화 ‘셰임’, 아침마다 자위행위를 하는 평범한 남성이 딸의 친구에게 욕망을 품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아메리칸 뷰티’, 그리고 사이코패스 살인마 규환의 자위행위 장면이 충격적인 한국 영화 ‘공공의 적’.
한국 영화 중에선 ‘공공의 적’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규환(배우 이성재)의 자위 장면이 유명하지요.

규환은 샤워 도중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상상하면서 “XX년”이란 욕설을 남발하며 수음을 합니다. 그런데 샤워를 끝낸 직후엔 가정적인 남자로 돌변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선 강간살인 현장을 찾아간 레미콘 공장 노동자 조병순(배우 류태호)이 흙바닥에 브래지어와 여성 팬티를 내려놓고 자위를 하다가 형사에게 추적당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들 작품에 묘사된 자위행위 중인 남성은, 그 이상행동이 성도착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자위가 단지 개인 욕망의 분출이 아닌 사회적 병증의 한 형태임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조병순은 성폭행 살인 현장에서 한밤중에 자위행위를 하다 형사들에게 쫓깁니다. 병든 아내, 가난한 형편 때문에 성도착증을 앓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브라자, 비너스 브라자”라고 말하는 그의 변태적 음성이 아직 생생합니다.
한 변태의 개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 병증의 원인을 추적함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보편화된 것이었지요.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이 첫 번째 시작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포트노이의 불평’은 주인공의 자위가 단지 개인적 병증이 아니라 사회의 병증의 한 형태임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기술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변태의 해악’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태 탄생의 이유’를 첨예하게 사유한다는 점이 ‘포트노이의 불평’의 탁월한 성취입니다.

필립 로스는 포트노이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한 마디에 작가의 문제의식이 담겼습니다.

내가 가진 것 가운데 정말로 내 거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내 XX뿐이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불구로 만든 거죠? 누가 우리를 이렇게 병적으로 히스테리에 시달리는 약한 사람들로 만들었냐고요. 지금 우리 부모님의 삶을 그렇게 겁내게 만든 자는, 대체 누구일까요? (53쪽, 55쪽, 58쪽 발췌)

필립 로스는 생전에 자신이 책장에 있던 도서 7000권을 미국 뉴어크 지역의 한 공립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필립 로스 도서관은 2021년 개관했으며, 필립 로스에 관한 흔적이 가득합니다. [필립 로스 도서관 홈페이지 캡처]
문학 거장이 읽던 책, 특히 한 거장이 평생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책을 직접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미국 뉴어크 지역 필립 로스 도서관은 그 꿈같은 일이 현실화된 공간입니다. 한 명의 독자로서, 정말 부러운 모습입니다. [필립 로스 도서관 홈페이지 캡처]
검은 문 앞에서 ‘나’만의 열쇠 하나를 손에 쥐고
현대인의 억압을 그린 고전소설로는 프란츠 카프카의 유명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류 회사 영업사원이던 그는 어느 날 거대한 벌레로 변한 자신을 마주합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방 안에 갇혀서, 자신이 평생 부양했던 가족들의 멸시와 혐오를 견딥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의 여동생도, 모두 벌레가 된 그를 악감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요. 등허리에는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던진 사과가 박혀버렸습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결국 방안에서 죽고 썩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가정 내 개인의 억압이라는 주제의식의 공통분모로 볼 때, 필립 로스가 프란츠 카프카를 의식하고 있었으리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를 형상화한 그림. 아르헨티나 화가 루이스 스카파티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Wikimedia Commons]
카프카 소설 ‘변신’은 필립 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보다 약 50년 전에 발표됐습니다. 네 명의 이상적인 가족(아버지, 어머니, 누이, 그리고 ‘나’), 또 그 구성원끼리 주고 받는 ‘억압의 굴레’란 소재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두 소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족의 외면을 받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와 달리, 이 소설의 주인공 포트노이는 자신의 억압을 성(性)으로 분출했습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내면으로 침잠해야 했고 울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포트노이는 분노하고 증오하면서 자신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빗나간 ‘성도착증’이었을지언정, 개인의 심리적 항거로서 ‘그 어떤 순간에도, 역사와 전통 앞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현존으로서의 개인’을 주장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포트노이가 ‘쏟아낸’ 건 단지 음낭 속에 고여 있던 미지근한 정액만은 아니었으며, 자기 내면의 상처 속에서 나온 일종의 정신적 고름, 혹은 뜨거운 눈물에 가까운 ‘진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La Porte de l‘Enfer)’. 스위스 취리히 쿤스트하우스에 전시된 작품으로 2010년 촬영본입니다. [Roland zh·Wikimedia Commons]
주인공 이름으로 나오는 포트노이(Portnoy)는 프랑스의 오래된 성(姓)으로, ‘검은 문’을 뜻하는 프랑스어 ‘porte noir’에 어원을 둔다고 합니다.

포트노이란 인물 자체가, 내면 속에 그 누구도 열어선 안 될 ‘검은 문’을 가진 인간이란 함의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생각해보면, 누구든 심연의 터널 끝에 ‘검은 문’이 하나쯤은 숨겨져 있지 않았던가요. 그 문 안에 어떤 욕망이 도사리는지는, 그 문을 따고 들어갈 무형의 열쇠를 손에 쥔 ‘나’만이 알 겁니다.

검은 문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든지 간에, 그 욕망이 때로 외부에서 던져진 씨앗으로부터 발아하기도 한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해 보입니다. 함부로 타인의 문을 열려 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지요. 저 심연 깊숙한 곳의 검은 방은 모든 ‘나’만이 접근 가능한 절대적 골방일 테니까요.

이 기사는 다음 책과 외신기사, 웹사이트를 참고했습니다. ◎ 필립 로스, 정영목 옮김, 『포트노이의 불평』, 문학동네, 2014년. ◎ 필립 로스, 정영목 옮김, 『왜 쓰는가?』, 문학동네, 2023년. ◎ 필립 로스 타계 당시 부고 기사(https://www.npr.org/2018/05/23/613631354/philip-roth-you-begin-every-book-as-an-amateur) ◎ ‘포트노이의 불평’ 1970년대 금서 논란에 관한 영국 가디언 기사(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2/feb/02/the-extraordinary-life-of-an-copy-of-portnoys-complaint-its-a-terrific-australian-story) ◎ 필립 로스 도서관 홈페이지 (https://www.prpl.npl.org/)

※다음주에는 브렛 이스턴 엘리스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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