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김재규가 박정희 쏜 그날, 궁정동 안가에 무슨 일이…10.26 목격자들의 증언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6일 방송된 '궁정동의 목격자들 - VIP: 할아버지'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김광규, 모델 이현이, 래퍼 넉살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VIP 할아버지와 총격 사건
때는 1978년, 서울에 사는 이정오 씨. 정오 씨는 요리사야. 집안이 어려웠던 정오 씨는 17살에 상경해서 '요정'에서 일을 했어. 일종의 유흥업소지. 정오 씨는 성실하고 솜씨도 남달랐어. 그렇게 10년 만에 5성급 일류 호텔의 주방장이 돼. 그러던 어느날, 35살이 된 정오 씨에게 스카우트 제안이 왔어. 종로에 신장개업하는 집이라는데, 조건이 너무 좋아. 호텔보다 월급도 세고, 사원 아파트도 제공한대. 호텔보다도 조건이 좋은 이 곳으로 직장을 옮긴 후, 이 때부터 정오 씨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거기서 이제 사건이 생기는 거죠. 그게 크게 잘못된 거죠.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아마 이민도 안 왔겠죠. 이민 안 오고 거기서 좋은 조건으로 은퇴할 수 있을 기회였는데. 그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전 저대로 밀려 나온 셈이죠."
-이정오, 당시 요리사
어떤 사건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는 정오 씨. 일류 요리사가 고국을 등지고 이민을 가야만 했던 이유가 뭘까.
정오 씨는 새로운 직장에 잘 적응했어. 1년쯤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라는 VIP 고객이 예약한 날이야.
"설명 들을 것도 없이 그냥, '할아버지' 오신다고 그러면 그분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올 때도 있고 자주 오시는 날은 한 2번 정도 오시나요."
-이정오, 당시 요리사
일주일에 한번 이상 오는 '할아버지'라 불리던 VIP 손님. 정오 씨는 평소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메뉴들로 상을 차렸어. 준비한 음식이 다 나가고 난 후에 한숨 돌리려는데, 그 때 어디선가 '탕!' 총소리가 났어. 그러더니 주방 전기가 나갔고, 얼마 후에는 주방으로 총탄들이 날아와. 정오 씨는 급히 머리를 숙였어. 하지만…
"갑자기 등허리를 각목으로 치는 느낌이 있었어요. 허리를 만져보니까 뜨끈뜨끈하게 피가… 내가 그때 허리에 총을 맞은 것 같더라고요. '이제 죽었구나' 생각한 거죠."
-이정오, 당시 요리사
허리를 관통한 총알 때문에 피가 쏟아져. 정오 씨는 겨우 일어나서 앞치마로 상처를 꽉 묶어 지혈했어. 그리고 쥐 죽은 듯 다시 바닥에 엎드렸어. 언제 또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총소리가 멎었어.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동료들이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어.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났어.
총격이 일어난지 한시간 후. 한 남자가 집에서 전화를 받았어. 바로 이 분이야.
이름은 김병수, 직업은 의사야. 총상 환자가 있다고 급히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이야. 김 원장은 병원으로 달려갔어. 병상 위에는 체구가 작은 한 남자가 누워있어. 흰 셔츠 위에 붉은 피가 흥건해. 총상을 두 군데 입었어. 오른쪽 가슴 쪽을 관통한 총상 하나, 그리고 머리. 총알이 오른쪽 귀를 뚫고 머릿속에 박혀 있었어.
소생 가능성은 없어. 김 원장이 사망 판정을 내려야 하는데, 환자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얼굴을 수건으로 덮어 놓은 거야. 김 원장이 수건을 벗기려 하자, 웬 양복 입은 남자들이 막아 섰어. 그러더니 환자의 신원을 알려줄 수 없대. 환자 얼굴도 안 보고 누군지도 모른 채로 어떻게 사망 선고를 하라는 거야.
"'어차피 사망진단서 내가 끊어야 한다. 내가 확인을 해야 되겠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아래 위로 쳐다보는 겁니다. 그러더니 확인하라 그러면서 확인을 시켜주는데 어떻게 시켜주냐 하면, 덮여 있는 수건의 한쪽만 열고 보여주는 거예요. '다 봤어요?' 그렇다니까 그럼 또 이렇게 (반대쪽을) 보여주는 거예요. 당시 환자 상태도 별로 안 좋았고, 반쪽 얼굴만 가지고는 사실 어떤 사람도 판단하기 어려워요."
-김병수, 당시 병원 원장
김 원장은 얼굴을 못 본다면 몸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억지를 부려 시트를 걷고 환자의 몸을 확인했어. 환자의 배꼽 아래 희끗한 반점이 보였어. 그 순간, 김 원장은 지난 여름 만났던 환자가 생각났어. 김 원장에게 이 점을 보여주며 없애는 방법이 있냐고 물어봤던 그 사람, 지금은 주검이 되어 병상에 누워있는 이 남자.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어.
오늘 이야기는, 1979년 10월 26일에 일어난 사상 초유의 대통령 살인사건. 바로 '10.26' 이야. 그날,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야.
▲ 궁정동 안가
이 사건은, 청와대 바로 옆에 있는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에서 일어났어. 요리사 정오 씨가 스카우트된 새 직장이 바로 이 궁정동에 있었어. 일명 '궁정동 안가'. '안가'는 '안전가옥'의 줄임말이야.
박 대통령은 이 종로에만 5~6군데의 안가를 갖고 있었어. 정부 고위직 중에도, 안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대. 밖에서는 고급 주택처럼 보이지만, 안에 뭐가 있는지 몰라. 그만큼 비밀스러운 공간이야.
바로 이게 궁정동 안가의 '나동' 건물의 내부를 구현한 모형이야. 이 저택의 안쪽에는 연못 같은 양어장도 있고, 대통령이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거나 은밀하게 술을 마시는 대통령 전용 연회장도 있어. 궁정동 안가를 관리한 곳은, 국정원과 안기부의 전신, 중앙정보부야.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 일명 '중정'. 어떤 사건도 만들어내고, 멀쩡한 사람도 간첩으로 만드는 공작 정치의 본부. 당시 이 중정의 최고 권력자는, '남산의 부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야.
김재규 부장이 직접 안가를 관리했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도 전부 중앙정보부 소속이야. 심지어 요리사 정오 씨도 중정 소속이야. 그날 그곳에 있었던, 중정 직원 한 명을 '꼬꼬무'가 어렵게 만났어. 당시 궁정동 안가를 지키던 유석술 씨야.
"소속은 우리가 중앙정보부로 소속되어 있고 그 안에는 철저히 보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 나가면 입을 막아야 돼요. 밖에 나가서도 절대 이야기 못하게 하는 거죠."
-유석술, 당시 안가 경비원
석술 씨는 군대에서 하사로 전역한 후에 특채로 중정에 입사했어. 나머지 직원들도 최소 육군 하사나 해병대 출신이야. 무술 유단자에 사격 실력자들도 많았대. 거기에 경비원들은 권총, 수류탄, M16 소총까지 들고 있어. 그야말로 철통보안이야. 이 경비원들이 순찰을 마치고 경비실로 돌아오면, 삼삼오오 모여 자식 자랑을 하는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들이야. 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고 있거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죠. 쉴 때는 같이 이야기도 하고 놀고. 그 당시에는 다 집도 없고 셋방살이하는 사람들이죠. 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
-유석술, 당시 안가 경비원
석술 씨는 특히 동갑내기 경비원 이기주 씨, 중정 운전기사였던 유성옥 형님이랑 친했어. 하지만 궁정동 안가에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
▲ 운명의 그날
10월 26일 그날, 박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했어. 새로 지어진 대북방송 중계소도 시찰하고, 아산에서 점심을 먹은 후 청와대로 복귀했어.
한편, 궁정동 안가의 아침. 유성옥 형님이 쭈뼛거리며 품에서 뭔가를 쓱 꺼냈어. 청첩장이였어. 운전사 성옥 형님은 이미 애가 둘인데, 중정 8년차인데도 형편 때문에 결혼식을 못 올렸어. 뒤늦게 이제라도 결혼식을 올리려는 거야.
오후 3시쯤. 청와대로 돌아온 박 대통령은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였대. 박 대통령은 "오늘 저녁은 궁정동에서 하겠다"고 말했어. 연락을 받은 궁정동 안가는, 비상이야. 갑자기 잡힌 스케줄이니까. 이날은 '대행사'야. 대통령이 혼자 오시면 '소행사', 다른 손님들과 여성까지 동석하면 '대행사'야. 안가 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어.
대통령이 좋아하는 집의 막걸리를 준비했어. 예비신랑 성옥 형님은 동대문 시장에 가서 장어, 갈비, 전복, 송이, 수삼 등 고급 재료들을 한가득 사왔어. 요리사 정오 씨도 정신이 없어.
그리고 바쁜 남자가 또 하나 있어. 안가의 경비원들을 지휘하는 책임자, 박선호 과장이야. 박 과장은 전화기를 계속 붙잡고 있어. 박 과장의 주요 업무는, 여성 참석자들을 섭외하는 일이야. 여성들이 술자리에 들어가기 전, 보안 각서를 작성하게 하고 접대하는 방법도 교육해.
한편, 경비원 석술 씨는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 VIP가 도착한다는 연락이 무전기로 오면, 그 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차량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해. 대통령이 안가에 도착한 건, 저녁 6시 5분. 이날 대행사에 참석한 사람은, 박 대통령을 포함해 총 6명이야.
우측부터, 박정희 대통령,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 경호실장 차지철, 중정부장 김재규야. 이들은 모두 군인 출신이야. 김계원은 별 4개, 군대에서 제일 높은 계급인 대장이야. 김재규는 별 3개, 차지철은 중령에 나이도 10살이나 어려. 이 시절의 실세는, 중정부장인 김재규야. 그런데 차지철한테도 엄청난 스펙이 있어. 차지철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으킨 5.16 군사 쿠데타의 공신이야. 그렇다보니, 차지철의 입김도 만만치 않았어. 지금 대한민국 권력의 최고 권력자 4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거야.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차지철은 오른쪽, 김재규와 김계원은 맞은편에 앉았어. 6명 중 2명은, 여성 참석자야. 데뷔 1년만에 국민 여동생이 된 가수 심수봉, 그리고 연기를 전공하던 대학생 신재순 씨였어.
박선호 과장이 통화한 사람이 바로 심수봉 씨였어. 그날 수봉 씨는 박 과장한테 TBC 방송국에서 중요한 녹화가 있어서 참석이 곤란하다고 거절했어. 당사자가 못 간다고 했지만, 결국 수봉 씨는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됐어. 어떻게?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설마 했는데 역시 박선호 과장이었다. 'TBC 사장 통해서 아예 오늘 녹화 일정을 전부 취소해 버렸으니 그리 아십시오. 기타 가지고 오시고 윗분 모시는 자리니 신경 좀 써 주세요' 어느새 우리를 태운 차는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궁정동의 한 솟을대문 집, 즉 '안가'에 도착했다."
-심수봉 자서전 '사랑밖에 난 몰라' 中
대행사를 위해 방송국 녹화를 취소해버린 박 과장. 수봉 씨는 그렇게 궁정동 안가에 도착했어. 술자리는 이미 한창이야. 수봉 씨는 연회장 옆 대기실에서 기타를 챙기고 있는데, 안에서 남자 둘이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어. 수봉 씨는 눈치를 보면서, 연회장으로 조심스레 들어갔어. 그런데 박 대통령은, 수봉 씨를 쳐다도 안 보고, TV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어. 그런데 표정이 언짢아 보여. 정권을 비판하던 야당 지도자 김영삼이 뉴스에 나온 거야.
"7시 뉴스를 굉장히 보려고 하시더라고요. 박 대통령께서. 그 다음 장면이 김영삼 대통령께서 그때 총재에서 밀려났을 때였어요. 그 분에게 어떤 외국 귀빈이 찾아와서, 신민당 총재로 만나는 장면이 나왔어요. 그 뉴스 내용이 나오니까 박 대통령께서 '총재도 아닌 사람을 만나러 가느냐' 그런 대화도 하고…. 김재규 씨하고 김계원 비서실장 두 분이서 표정이 너무 경직돼 있어서 무서웠어요. 왜 저렇게 경직이 돼있나, 두 분이 로봇 같은 얼굴이더라고요."
-심수봉, 당시 연회 참석자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수봉 씨가 기타를 잡았어. 수봉 씨 노래에 분위기가 좀 풀렸어.
"제가 부르고 난 뒤에, (김재규, 김계원) 두 분은 너무 무서우니까 차지철 씨한테 그 다음 차례 하시라고 했더니, 노래를 하셨어요."
-심수봉, 당시 연회 참석자
박 대통령도 기분이 풀렸는지, 박수로 박자를 맞췄대. 다음 노래 차례는 대학생 재순 씨. 그런데 계속 음이탈이 나는 거야. 기타 반주를 하던 수봉 씨가 땀이 날 정도였대. 그 순간, 김재규 중정부장이 갑자기 바지 주머니에서 권총을 빼들어. 그리고 "차지철 이 건방진 놈!"하며 차지철을 쐈어.
"보니까 손목에 구멍이 뻥 뚫리더라고요. 피가 막 나니까 '피!' 하더니 화장실로 가시더라고요."
-심수봉, 당시 연회 참석자
그리고 김계원 비서실장도 놀라서 복도로 뛰어 나갔어. 방안에 남은 건, 박 대통령과 심수봉, 신재순, 그리고 김재규 부장이야. 김재규는 엉거주춤 일어서더니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말하고는 박 대통령의 가슴을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어. 그리고 김 부장이 다시 장전을 하려 하는데, 안 되는 거야. 당황한 김 부장은 밖으로 뛰어 나갔어. 그 순간, 주변이 깜깜해졌어. 요리사 정오 씨가 주방에 있을 때 정전 됐던 거, 그게 바로 이 때야. 기관공이 총소리가 전기합선 소리인 줄 오해하고 전원을 내린 거야. 잠시 후 다시 불이 켜지고, 수봉 씨는 너무 놀라서 숨이 멎을 거 같았어.
"대통령을 쐈어요. 근데 대통령 쏜 걸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왜냐면 박 대통령께서는 총을 맞고도 그냥 계셨었어요. 속에서 목까지 그르륵 끓는 소리가 계속 나요. 가래 끓는 것 같이. 계속 그 소리가 크게 들려서 부축을 했는데…"
-심수봉, 당시 연회 참석자
박 대통령이 총을 맞고도 꼿꼿하게 정자세로 앉아 있었어. 그런데 숨소리가 이상했어. 이미 뜨거운 피가 등을 적시고 있어. 박 대통령은 테이블 위로 쓰러졌어. 바로 그때, 김재규 부장이 돌아왔어. 손에는 새로운 총을 들고. 그리고는 장식장 뒤에 숨은 차지철 경호실장을 향해 총을 쐈어. 그리고 박 대통령을 향해 걸어갔어. 두 여성은 방에서 도망쳤어. 혼자 남은 김재규 부장은, 이미 쓰러져 있는 박 대통령의 머리를 향해 마지막 발사를 했어.
이게 사건 직후의 모습이야. 사건이 벌어진 후 다음날 아침에 찍었대. 그 자리에서 사망한 차지철 경호실장. 선혈이 낭자한 현장. 그렇게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정부장이 쏜 총에 사망했어. 궁정동 안가에 있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어.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부장은 누가 봐도 정말 끈끈한 사이였어. 두 사람은 모두 경북 구미 출신이야. 육군사관학교 2기 동기이기도 해. 학연과 지연이 엮었으니, 끈끈할 수 밖에 없지. 또 김재규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준 사람도 박정희 대통령이야. 23년동안의 군 생활을 마친 김재규에게 비료회사 사장 자리를 주기도 하고, 국회의원에, 심지어 건설부 장관도 시켜줬어. 그러다 권력의 2인자 자리,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한 거야. 그런 김재규가, 도대체 왜 대통령을 쏜 걸까.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볼게.
▲ 궁정동 안가에 있던 사람들의 '그날'
김재규 부장이 그날 궁정동 안가에 도착한 건 오후 4시 20분쯤이야. 김부장은 도착하자마자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7시에 보자고 했어. 육군참모총장이면, 육군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자리야.
그런데 대통령과 저녁 식사가 예정된 상황에서, 김재규 부장은 육군참모총장과 이중으로 약속을 잡은 거야. 김재규는 그 후 자기 사무실에 가서 금고를 열고 권총을 점검하고 대통령과의 연회에 참석했어.
정 총장은 도착하고 나서야, 김재규가 연회장에 가있는 걸 알았어. 김재규는 7시쯤 중간에 나와서, 정 총장한테 미안하다며 "각하와의 자리가 끝나면 올 테니까 식사하고 계셔라"고 말한 후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40분 후, 총성이 울린 거야.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연회장에 총성이 울렸으면, 경호원 대기실이 바로 앞방에 있는데, 왜 아무도 안 왔을까. 경비원 석술 씨의 '그날' 이야기를 들어볼게.
석술 씨는 저녁 7시쯤 동갑내기 이기주, 새신랑 유성옥 형님과 함께 옆건물 경비원 대기실에 있었어.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고, 심수봉 섭외 전화를 했던 박선호 과장이 와서 이기주와 유성옥을 불러냈어.
"그때 들어와서 이기주, 유성옥을 불러서 M16 소총을 준비해서 나오라 그래요. 둘이 나갔는데, 한 10~20분 있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다시 권총으로 바꿔서 갔어요. 박 과장이 직접 와서 둘을 데리고 나가니까, '이상하다 왜 총을 들고 나가지?' 싶었죠."
-유석술, 궁정동 안가 경비원
두 사람은 불려 나가서 박선호 과장에게 "안에서 총소리가 나면 즉시 경호원들을 몰아붙여"라는 지시를 받았어. 대체 무슨 일이냐 물으니 박 과장은 "잘 되면 진급될 거다"라고 말했어. 총소리가 들리면 청와대 경호원들을 쏘라는 거야. 명령을 받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
충격적인 건, 지시를 내린 박선호 과장도 불과 20분 전에 상관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거였어. 바로 김재규 부장한테. 김재규 부장은 박흥주 대령과 박선호 과장을 몰래 불러내서 "나라가 잘못되면 자네들이나 나나 죽는 거야. 오늘 저녁에 내가 한다"면서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경호원들을 처치해"라고 명령했어. 박선호 부장은 조심스럽게 "혹시 각하까지 입니까?"라고 물었어. 김재규 부장은 "그렇다"고 대답했어.
사건 직전 받은 명령. 그날 안가에 온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원은 총 4명으로, 경호원 대기실에 2명, 주방에 2명이 있었어. 저녁 7시 40분, 김재규의 총성이 울렸어. 박선호 과장은 그 소리를 듣고, 경호원 대기실에 있던 경호원 둘을 쐈어. 두 경호원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 동시에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은 주방 쪽을 맡았어.
그때 요리사 정오 씨가 총에 맞게 된 거야. 결국 총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어. 그래서 경호원들이 총소리에도 연회장에 갈 수 없었던 거야.
대통령을 쏜 김재규가 이제 부하들에게 뭘 지시할 거 같아? 현장을 수습하고 정권을 장악하거나, 군부를 장악하거나, 뭐든 해야지. 근데 범행 직후 김재규의 태도는 여러모로 이상했어. 석술 씨를 포함한 안가 직원들은 아무것도 몰랐대.
"총소리가 나고 나서, 우리는 누가 누구를 쐈는지는 몰랐죠. 안에는 총소리가 다 나고 사건이 일단 끝났기 때문에 남은 직원들이 '근무라도 서자' 해서 자진해서 근무를 선 거예요."
-유석술, 당시 궁정동 안가 경비원
대통령의 사망 소식도 모르고 근무를 선 경비원들. 왜냐면 김재규 부장이 별다른 지침도 안 주고 그냥 떠나버렸거든. 박대통령은 김계원 비서실장이 병원으로 옮겼고, 박선호 과장이 안가 내부를 수습했어. 다친 요리사 정오 씨도 병원으로 보내고, 사건을 목격한 두 여성도 돌려 보냈어. 평소처럼 사례금 봉투까지 쥐어주면서.
이상한 건 또 있어. 양말과 사탕. 김재규는 사건 직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차에 태우고 떠났어. 아까 그 총소리가 뭐냐고 묻는 정 총장에게, 김재규는 박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알리면서도, 자신이 쐈다고는 밝히지 않았어. 그리고는 입이 마른다며 사탕을 까서 먹었어. 정 총장이 보니까, 김재규는 구두도 신지 않은 양말 차림이야. 제정신이 아닌 상태인 거야.
잠시 후 이들이 탄 차량은 아주 중요한 갈림길과 마주 했어. 차가 그대로 쭉 가면, 김재규가 수장인 남산 중앙정보부야. 정 총장은 김 부장한테, 남산으로 갈지, 육군 본부로 갈지,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어. 근데 김재규는 결정을 못 내려. 그때 정 총장이, 일단 육군본부로 가자고 했어. 각하가 돌아가셨으면 계엄령을 내려야 할 거라고. 그렇게 남산으로 향하던 차는 유턴을 해서, 용산 육군본부로 향했어.
육군본부로 간 김재규는 비상회의에서도 자신의 범행을 숨겼어. 하지만 그 비밀은 오래 가지 못했어. 그날 방에서 도망쳤던 김계원 비서실장이 뒤늦게 모든 걸 밝힌 거야. 결국 범행 6시간 만에 김재규는 육군본부에서 체포됐어. 김재규는 의외로 순순히 체포를 받아들였대. 그를 체포한 건, 김재규 본인이 궁정동으로 불러들인 정승화 총장이었어.
1979년 10월 27일 새벽, 궁정동 안가. 경비원 석술 씨한테 동갑내기 이기주가 뭔가를 들고 다급하게 왔어.
"이걸 가져와서 정원에 감춰 놓으라고 그러더라고요. 권총 한 자루와 탄피 몇 개, 그리고 슬리퍼 였어요. 김재규 부장이 신고 있던 슬리퍼를 가지고 왔어요. 이기주 씨가. 설마 이 총이 부장님이 각하를 쏜 총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죠. 밤이기 때문에 다른 도구도 없고, 그냥 대충 (손으로) 덮어 놓은 거예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죠."
-유석술, 당시 궁정동 안가 경비원
▲ 김재규는 왜 대통령을 쐈나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사이에 우발적인 충돌사태가 일어났으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발사한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계엄군에 의해서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라디오 속보 中
석술 씨는 아침 뉴스를 듣고서야 박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걸 알게 됐어. 전날밤 자신이 들었던 총성에 대통령이 사망했다니, 얼마나 놀랐겠어. 바로 그날, 석술 씨는 헌병대에 연행됐어. 그리고 증거은닉죄로 피고석에 섰어.
또 박흥주, 박선호, 이기주, 유성옥 모두 군사법정에 세워졌어. 뒤늦게 범행에 가담한 김태원까지. 혐의는 내란 목적 살인 및 내란 미수 혐의야.
그런데, 법정에 선 김재규는 아주 당당해.
"대통령 각하의 무덤에 올라설 정도로 아직까지 내 도덕관은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김재규의 법정 진술 녹취
김재규는 정권을 잡기 위한 쿠데타가 아니라고 주장했어. 그리고 "각하를 제거할 시도를 여러 번 했었다"라며,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폭탄 발언을 해.
이 사진은 건설부 장관 임명장을 받던 날이야. 그날에 대해 김재규가 남긴 말이 있어.
"건설부 장관으로 사령장을 받는 자리에서는 45구경 권총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들어갔습니다. 그때 유서를 5장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각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제 마음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7차 공판 진술 中
김재규가 건설부 장관에 임명된 건 1974년 9월이야. 이미 오래 전부터 박 대통령 제거 계획이 있었다는 거야. 심지어 이때도 처음이 아니래. 1971년부터 8년동안 총 4번의 거사 계획이 있었다고 말했어. 김재규는 박 대통령을 제거한 범행 동기를 1972년 10월에 발표된 '유신헌법' 때문이라 밝혔어.
"대통령은 국회의원 1/3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과 긴급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횟수에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다. 또한 국민의 직접선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제로 바뀌었다. 유신체제는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모두 쥔 대통령이 종신 집권하도록 설계한 대통령제였다."
-두산백과 '유신헌법' 설명 中
박 대통령은 이미 3번이나 대통령을 연임한 상태였어. 그 뒤에 또 유신헌법을 만든 거야. 김재규는 박정희가 영구 집권을 하려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 유신헌법을 기획할 때부터 대통령 제거 계획을 세웠다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자기를 키워준 대통령을 왜 제거까지 하려 했을까. 어떤 사건이, 10.26의 방아쇠가 됐어. 10.26이 발생하기 열흘 전에, 유신헌법을 비판하던 야당 총재 김영삼을 국회의원직에서 제명해 버렸어. 그로 인해 부산, 마산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어. 이른바 '부마항쟁'이야. 당시 김재규가 부산으로 직접 내려갔는데, 거기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 시위의 규모가 어마어마 했거든. 김재규는 바로 대통령한테 보고했대. 그런데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반응이 상상초월이야.
"현지에 내려가서 보니까 시위하는 사람과 시민들이 완전히 의기투합해서 일어난 사태입니다. 그대로 각하에게 보고드렸습니다. 보고 드렸더니 각하 말씀은 '이제부터 사태가 악화되면 내가 발포 명령을 하겠다. 대통령인 내가 명령하는데 누가 날 총살하겠냐' 그 다음에 차지철 경호실장 같은 사람들은 '캄보디아에선 300만 명이나 희생시켰는데 우리 대한민국은 1~200만 명 희생한다고 그까짓 거 문제될 거 있냐'고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김재규의 법정 진술 녹취
이게 사실이라면 경악할 만한 발언이야.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총을 발포하려 했다는 거니까. 김재규는 "야수가 된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했어. 18년 독재정권을 자기 손으로 직접 끝내려 했다는 거야. 이런 김재규의 말은 진심이었을까. 사형을 면할 수 없으니 자신을 포장한 걸까. 영원히 알 수 없을 김재규의 진심. 그는 국부를 죽인 파렴치한일까, 오랜 독재자를 몰락시킨 혁명가일까. 그 논쟁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그때 법정에 선 김재규와 부하들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어. 가족들이야. 박흥주 대령의 가족들, 결혼식을 3주 앞둔 경비원 유성옥의 아내와 어린 아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아버지가, 대통령을 살해한 내란 미수범이 됐어.
"우리는 세칭 10.26 사건의 가족들입니다. 우리들의 남편들은 아내와 자식에게조차 자기의 직업과 직책을 말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직업에 대해 비밀을 지켰으면 또한 청렴했습니다. 우리에게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가장입니다. 남편들의 생명만은 지켜줄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엎드려 비옵나이다. 오직 우리는 그것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만약 처형해야 한다면 그들을 하늘같이 믿고 살아온 우리들도 함께 죽음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목놓아 호소하는 바입니다."
-가족 호소문 中
▲ 수상한 재판
재판이 시작됐어. 사상 초유의 사건. 그런데 재판이 뭔가 이상해. 재판부가 속도를 너무 내는 거야. 보통은 공판과 공판 사이 2주 정도 간격이 있는데, 밤까지 공판하고, 다음날 아침 바로 다음 공판이 진행돼. 공판을 매일 하는 거야. 거기다가 재판 과정 중 묘한 움직임이 보여.
"법정에 재판관들 들어오는 문이 있잖아요. 그 문으로 누가 하나 들어와서 쪽지를 전달하고 갔다니까요 늘. 그래서 처음엔 쪽지가 저렇게 드나드나 했는데, 날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당시 법무감이. 그래서 법무감실에 가니까, 안개가 자욱해요. 여러 사람이 앉아 있어요. 합수부에 파견된 검사, 판사, 그리고 육군본부 실장이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중앙에 앉아있더라고요. '뭐 국선 변호가 그렇게 열심히 해', '너 혼 좀 나봐야겠어' 이러더라고요. 그러고 있는데, 마이크 소리가 들려요. 개정한다고. '여기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구나' 법정 상황을 전부 모니터링 해서 지시사항을 쪽지에 써서 보내는 거예요. 이런 재판이 어딨어요."
-안동일, 당시 이기주, 유성옥 변호인
당시 재판정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는 거야. 그 보이지 않는 손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었어.
이때만 해도 권력 서열이 50위 안에도 못 들었는데, 10.26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으면서, 서열이 수직상승했어. 그리고 박 대통령 사망 약 두 달 후인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일으키지. 바로 '12.12 신군부 쿠데타'. 대한민국 권력의 1,2,3,4 순위가 동시에 사라졌잖아. 이 때 공중에 붕 뜬 권력을 낚아챈 거야. 그래서였을까. 판결은 속전속결로 진행됐고, 대법원 판결까지 5개월 밖에 안 걸렸어.
"그렇게 초고속으로 진행했어요. 12.12 이후에는 그냥 완전히 초고속이에요. 뭔가 신군부의 시간표가 있는 거죠.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거예요."
-안동일, 당시 이기주, 유성옥 변호인
그렇게 나온 최종 대법원 판결.
"내란 목적 살인, 내란 수괴 미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미수, 증거 은닉, 살인... 피고인 김재규,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을 각 사형에 처한다. 피고인 유석술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대법원 선고 있는 날, 법정에서 나오는데 후배가 쫓아 나오더니 '지금 피하세요. 사무실도 가지 마세요. 체포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피했죠. 공중전화 박스에서 '재심신청서 빨리 제출해라' 통화만 하고. 왜냐면 재심신청서를 내면, 재심 판결이 날 때까지는 사형 집행을 안해요. 그게 관례야. 냈는데…"
-안동일, 당시 이기주, 유성옥 변호인
결국 사형이 집행돼. 사형 집행은 최종 판결 4일 후였어. 그리고 재심신청서는 1980년 8월에 기각됐어. 박흥주 대령은 현역 군인이라, 딱 한번의 재판만 받고 3월에 사형이 먼저 집행됐어. 그리고 김재규 박선호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다섯 사람의 사형은 한날에 집행됐어.
"그 다음날 새벽에, '가셨습니다' 그렇게 전화가 왔더라고요. 수화기를 들었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수화기가 얼굴을 때릴 정도로 떨리더라고요. '설마 그렇게 빨리 죽이겠나' 그렇게 생각했었죠. 오빠가 마지막으로 '내가 죽거든 내 부하들하고 같이 묻어달라' '내 앞에다가 묻어달라'고…"
-김정숙, 故김재규 여동생
"끝으로 제가 재판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제 부하들은 양과 같이 착하고 순합니다. 너무 착하고 순하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 명령에 복종해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극형을 내려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극형만은 면해주시도록 말씀을 드립니다."
-김재규의 법정 진술 녹취
부하들도 잘못은 인정하지만, 다시 그 순간이 온다 해도,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얘기했어. 김재규는 유신의 심장을 쏘면 독재가 끝나고, '80년의 봄'이 올 거라 믿었어.
"난 오늘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놨다. 이런 자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못 봤다 뿐이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나는 웃으면서 갈 수 있습니다."
-김재규의 법정 진술 녹취
하지만 그 후에도 한동안 봄은 오지 않았어. 전두환이라는 또 다른 독재정권이 기다리고 있었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많은 마음이 모였을 때, 비로소 봄이 찾아왔지.
그 후, 궁정동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요리사 정오 씨를 비롯해서 직원들은 모두 실직자가 됐어. 재취업도 쉽지 않아서, 정오 씨는 결국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해. 그리고 법정에 섰던 사람들 중 사형을 면한 딱 한 사람, 권총을 숨겼던 경비원 유석술 씨.
"정치범은 독방에 가두니까요. 혼자 생활을 한 거죠. 큰 사건에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 좋죠. 친구들한테 미안하고. 위에서 시켜서 그렇게 한 건데, 사형까지 당하고 나니까 참... 마음이 이루 말할 수도 없어요. 매일 보던 사람들인데… 그게 벌써 4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이 나요.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유석술, 당시 궁정동 안가 경비원
한국 현대사에서 아주 큰 사건인 10.26. 박정희 대통령, 그를 총으로 쏜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그 밑에 부하들의 이야기는 잘 몰라. 사건보단 사람에 집중하게 된 오늘의 이야기였으면 좋겠어.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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