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1주기]

주하은 기자 2023. 10. 27.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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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은 지난 1년간 진행된 이태원 참사 1심 재판을 모니터링했다. 행정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고, 인파 관리 대책은 부재했다.
1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가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증인들의 답변을 듣던 중 괴로워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언제, 어디서든 두 가지를 요구했다. 바로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이다. 그러나 참사 이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 목표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진상규명을 위해 국정감사를 했지만 밝혀진 진실은 충분하지 않다. 추가적인 조사 기구를 만들기 위한 특별법은 빨라야 내년에나 통과될 예정이다. 책임자 처벌을 위한 검찰 수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소한의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판은 1심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시사IN〉은 지난 1년간 이태원 참사 1심 재판을 모니터링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재판은 현재 네 갈래로 진행 중이다. 각각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명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경찰서 관계자 5명 △박성민 전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부장 등 경찰 정보 라인 관계자 3명 △최재원 용산구보건소장을 피고인으로 하는 재판이다.

그중 재난 대비와 참사 직후 대응에 직접 관련돼 있는 용산구청·용산경찰서 관계자의 재판 과정을 분석해 참사의 기록을 재구성했다. 검찰과 피고인 사이에 사실관계를 다투고 있는 사안은 제외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참사 TF를 만나 재판에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를 보충했다. 재판을 통해 드러난 사실과 피고인들의 변론은 두 가지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위험 요소로 가득했던 그날의 이태원을 두고 행정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으며, 재난을 막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

2017년 이후 이태원은 매년 핼러윈데이를 즐기러 오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제된 2020년과 2021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용산구청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2022년에도 핼러윈데이를 대비한 모임을 세 차례 열었다. 참사 나흘 전인 10월25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핼러윈데이 안전대책을 지시했고, 10월27일에는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각 부서에서 핼러윈데이와 관련해 수행할 업무를 지정했다. 10월26일에는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와 함께 방역·안전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인파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은 논의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2022년 시·군·구 안전관리계획 수립지침’을 하달하면서 각 자치구가 자체 실정에 따라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재난관리 책임기관으로서 용산구청이 수립한 안전관리계획에는 핼러윈데이와 관련한 대책이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참사 2주 전인 10월15일과 10월16일 개최된 ‘2022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대해서는 안전관리계획을 마련했다. 해당 계획에 근거해 용산구청은 구청 직원 150명 이상을 안전관리요원으로 투입했다. 인파로 인해 혼잡이 발생할 시 이를 해소할 방안과 안내 멘트까지 상세히 준비했다.

용산구청 피고인들은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을 경찰에 떠넘겼다. 이들은 자신에게 인파를 관리할 권한이 없어 이태원 참사를 막기는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인파 관리 및 질서유지는 경찰의 권한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핼러윈데이 기간에 이태원 일대의 위험성을 알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토록 자신들의 의무를 방기할 줄 몰랐기에 자체적인 대비책을 세우지 못했다고도 덧붙였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핼러윈데이와 관련해 안전관리계획을 마련하지 않았다. ⓒ시사IN 이명익

그러나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사전에 경찰에게 안전관리계획을 촉구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경력 배치 및 인파 관리 계획을 확인하기는커녕, 질서유지를 위해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조차 경찰에 보내지 않았다. 피고인 유승재(전 용산구 부구청장)는 지난해 10월27일 긴급대책회의에서 유관기관에 협조 공문을 보낼 것을 피고인 최원준(전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에게 지시했지만, 최 전 과장은 경찰에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에는 공문을 보내 “이태원 일대 방문자의 폭발적인 증가가 예상됨에 따라 사고 예방을 위하여 이태원 주변 역사에 대하여 안전관리 철저”를 요청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최원준 측은 공문을 보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용산경찰서에서 자체 보도자료를 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0월27일 용산경찰서는 “총 200여 명 이상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하여 핼러윈 시민 안전과 질서유지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보도자료를 믿고 별도로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승재 측도 유사한 주장을 했다. 최원준이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용산경찰서의 보도자료에 관한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인파 관리 대책 없었던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피고인들의 ‘믿음’과 달리 용산경찰서는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인파와 관련해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핼러윈데이에 관해 용산경찰서가 세운 계획에는 정보계와 경비과의 대책이 빠져 있었다. 정보계는 경찰 업무와 관련된 정보수집을, 경비과는 질서유지와 관련한 업무를 맡는다. 위험성을 예견하고 인파를 관리하는 데 두 부서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피고인 이임재(전 용산경찰서장)와 송병주(전 용산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는 정보계와 경비과가 핼러윈데이와 관련해 별도의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피고인 측에서 이에 대해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정보계와 경비과의 계획에 대해서 별도의 확인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용산경찰서는 인파 관리에 구체적인 대책이 없이 핼러윈데이를 맞게 되었다. 각 부서에 업무 연락을 보내고 회신을 취합해 계획서를 작성했던 용산경찰서 소속 정 아무개씨는 증인으로 공판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핼러윈데이는 다중 인파 중심이라기보다는 치안 유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매년 계획을 수립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경찰력에 한계가 있어 인파 관리보다 범죄 예방에 초점을 맞춰 지난해 핼러윈데이를 대비했다고 주장했다. ⓒ시사IN 이명익

당시 용산경찰서를 비롯한 경찰의 주요 관심사는 마약, 성범죄 등 형사 범죄였다. 실제로 지난해 용산경찰서가 작성한 ‘2022 핼러윈데이 관련 질서유지 확보 대책’에는 인파 관리에 대한 내용 없이, 무허가 클럽, 마약범죄, 모의총포 등 무기류, 과다 노출 등 경범죄 단속만 기재되어 있다. 이임재 측은 경찰력이 한정돼 있었기에 범죄 예방에 초점을 맞춰서 핼러윈데이를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론한다.

용산경찰서 피고인들은 ‘경찰이라면 누구나 질서유지 업무를 할 수 있다’고도 반박했다. 정보계·경비과에서 계획을 내지 않은 것이 이태원 참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증인으로 나선 용산경찰서 정 아무개씨 역시 질서유지 업무가 특정 부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경비대책이 수립되었다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역) 1번 출구 쪽에 경찰관을 배치하는 쪽으로 계획이 수립됐겠냐”라고 묻자, 증인 정씨는 “(계획 수립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용산구청·용산경찰서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을 예견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재난에 대비할 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전례 없는 사고였으며, 실외 공간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혼잡을 예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2020년 핼러윈데이 종합치안대책’에 “인구 밀집으로 인한 압사 및 추락 등 안전사고 상황 대비”라는 문구를 넣었던 용산경찰서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피고인들은 예견 가능성을 부인하기 위해 ‘피해자들도 참사를 예견하지 못해 이태원에 간 것이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참사를 예견할 수 없었다’는 논리를 펼친다. 피고인 송병주 측 변호인은 증인신문 도중 “우리 사회에서 핼러윈에서 돌아가시거나 다치신 분들에 대한 개인 책임을 운운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이 이런 사고를 예상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하는 이야기겠네요”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언뜻 피해자들을 향한 부당한 비난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소된 피고인을 포함한 ‘모든 개인’은 재난을 예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발언이었다.

이태원 참사 주요 책임자들은 참사가 예견 불가능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시사IN 이명익

1년이 넘도록 책임자 처벌 없어

피해자 측 변호인을 맡고 있는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이러한 ‘예견 불가능’ 논리에 대해 “야비한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피고인들이 참사를 예견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질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일반인의 인식이 아니다. 피고인들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행정기관 직원으로서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같은 업무와 직무에 종사하는 일반적 보통인’이 예견 가능성의 기준이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각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대법원 판례를 모를 리가 없음에도 피해자들을 끌어들여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라고 최 변호사는 말했다.

피해자들의 바람처럼 용산구청·용산경찰서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게 될까.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다. 두 재판의 주요 피고인들에게 제기된 혐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다(일부 피고인들은 허위공문서 작성·행사로 추가 기소됐다). 고의로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과실로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그만큼 입증하기가 까다롭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을 입증하기 위해선 4가지 범죄 요건을 모두 채워야 한다. ①구체적인 주의의무를 위반해야 하고 ②결과 발생에 관한 예견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③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던 가능성이 있고 ④과실과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용산경찰서 관계자 재판의 경우, 피고인들의 과실과 이태원 참사라는 결과 사이 인과관계가 얼마나 인정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인과관계를 부인하기 위해 변호인은 피고인들이 재난 대응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참사를 인지한 직후 피고인들이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다면 이들의 과실과 참사 사이 인과관계가 옅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고인들이 언제 참사를 인지했는지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졌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보석 석방된 다음 날인 6월8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박 구청장의 출근을 막아섰다.ⓒ시사IN 박미소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참사 인지 시각이 늦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참사 직후에는 제대로 된 경찰력 동원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인지 시각이 늦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그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경찰 무전 기록을 근거로 피고인들이 참사 사실을 비교적 빨리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혹여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들을 수 있는 환경에서 듣지 못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논리를 강화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들의 혐의 입증은 더욱 까다롭다. 경찰과 달리 인파 통제의 직접적 책임 주체가 아니며, 주최자가 없는 혼잡 상황에 대해 안전관리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명시적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재판에서는 ‘예견 가능성’이 주된 쟁점으로 떠오른다. 명시적 의무는 없다 하더라도, 재난이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면 재난관리 책임기관으로서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할 주의의무가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이태원 참사의 예견 가능성을 전면 부인한다. 핼러윈데이에 이번 참사와 같은 전례가 없었다는 점, 용산구청 내부에서 압사 가능성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는 점 등을 내세운다. 더 나아가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골목으로 사람들이 집중될 것이라는 점도 예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예견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논리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판례를 가져왔다. 삼풍백화점 판례에 따르면 결과를 정확히 예견하지 못하더라도, 결과에 대한 기본적 부분이 예견 가능하면 ‘예견 가능성’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2022년 용산구청의 핼러윈데이 대책을 보면, 적어도 ‘인파의 밀집’이라는 기본적 부분은 용산구청 관계자들이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위험을 통제하고 관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재판이 올해 안에 마무리될 가능성은 낮다. 현재 네 개 재판 중 용산구청·용산경찰서·경찰 정보 라인 관계자 재판을 서울서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배성중)가 전담하고 있다. 해당 재판부가 일반 형사사건도 함께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각 재판에 대한 공판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실정이다. 피해자 측은 빠른 재판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법원 사정상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판결이 늦어지는 사이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비롯해 구속됐던 피고인은 모두 석방됐다. 결국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은 채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도래했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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