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았는데”…살충제도 소용없는 강력한 ‘빈대의 귀환’

송복규 기자 2023. 10. 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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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랑스 등 전 세계 빈대 확산에 ‘비상’
빈대, 살충제 적응해 유전자 돌연변이 일어나
외형·행동까지 바꿔가며 살충제 적응
프랑스 파리 근교 한 아파트에서 지난달 29일 발견된 빈대./로이터 연합뉴스

40년 가까이 보기 힘들었던 빈대가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구와 인천, 경기 부천에서 빈대 신고가 잇따르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빈대 유행과 관련해 빈대가 그동안 사용해온 살충제에 맞춰 진화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빈대는 납작한 타원형 몸통에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크기 6~9㎜의 곤충이다. 자기 몸집의 2.5~6배에 이르는 동물의 피를 빤다. 모기와 비교하면 7~10배 많은 피를 빨 수 있다. 사람이 빈대에 물리면 피부가 붓고, 좁쌀처럼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심한 경우에는 흡혈로 인한 빈혈과 아나필락시스(특정 물질에 대한 과민 알레르기 반응), 고열 등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최근 빈대 확산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다. 파리 내 학교와 기차, 병원, 영화관 등에서 빈대 신고가 잇따르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빈대에 대한 우려가 퍼졌다. 특히 학교 17곳에서 빈대가 발견돼 7곳이 휴교령을 내리는 등 정부 차원의 대처도 나선 상태다.

빈대가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대구 달서구 계명대 기숙사와 인천의 한 사우나, 부천의 한 고시원에서 빈대가 발견됐다. 한국은 빈대 방역체계가 정착하기 이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빈대가 흔했다. 이 때문에 ‘후진국 해충’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다만 2009년부터 꾸준히 한국에서 빈대가 보고됐고, 북아메리카나 유럽에서도 빈대가 자주 발견됐다.

이달 19일 오전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와 기숙사 관리직원들이 빈대 박멸을 위해 기숙사 내부를 소독하고 있다./뉴스1

문제는 빈대도 인간의 방역시스템에 맞춰 진화한다는 것이다. 워런 부스(Warren Booth) 미국 털사대 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미국에서 발견된 빈대가 살충제에 쓰이는 피레스로이드에 대한 저항성을 갖는 형태로 진화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해충 과학 저널(Journal of Pest Science)’에 지난해 4월 발표했다.

연구팀은 2005~2009년과 2018~2019년에 걸쳐 미국 전역에서 빈대를 수집해 디옥시리보핵산(DNA)을 분석했다. 수집된 빈대 사이에서는 인간의 신경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나트륨 채널을 변화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신경은 뉴런 세포막 내부에 있는 나트륨 이온이 체내로 흐르면서 전달된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나트륨 채널에 변화가 일어나 살충제 성분이 체내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2005~2009년 수집된 빈대들은 36%가 나트륨 채널 유전자에 대한 단일 돌연변이를, 50%는 두 개의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18~2019년 수집된 빈대는 84%가 두 개의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어 살충제에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논문들을 살펴보면 이란과 프랑스, 호주 등에서 발견된 빈대에서도 모두 살충제 저항성을 갖는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부스 교수는 “돌연변이 빈대들은 피레스로이드 등 살충제에 수백 배의 저항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직접 잡을 수는 없다”며 “일반적인 살충제로 빈대를 죽이려 한다면, 안타깝게도 죽일 수 없는 빈대를 번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빈대가 살충제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외형과 행동 양식을 바꿨다는 주장도 있다. 부스 교수는 “빈대는 땅바닥에 평평하게 붙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며 “몸을 표면에서 떼지 않고 살충제와 접촉하는 신체 부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빈대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도겟(Stephen Doggett) 호주 시드니대 의료곤충학과 교수팀은 빈대가 살충제에 저항성이 높을수록 외부 껍질이 두껍다는 연구 결과를 2016년 공개했다. 평균 10.13㎛(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의 껍질을 가진 ‘저항성 빈대’는 살충제에 반응하지 않지만, 평균 8.73㎛ 껍질의 보호를 받는 ‘비저항성 빈대’는 50분 만에 살충제 효과가 나타났다.

빈대 확산을 막기 위해선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 뉴욕이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시는 집주인이 거주자와 예비 거주자에게 전년도에 발생한 빈대 침입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빈대 예방을 위한 원칙을 건물의 모든 거주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 결과 2014~2020년 뉴욕시의 빈대 신고 건수는 월평균 875건에서 440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윌리엄 헨틀리(William Hentley) 영국 셰필드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인간과 함께 진화한 빈대를 줄이기 위한 최선은 연구자와 해충 방제 전문가가 그들을 죽이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이고, 빈대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Journal of Pest Science, DOI: https://doi.org/10.1007/s10340-022-01505-4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DOI: https://doi.org/10.3390/ijerph18020407

Pest Management Science, DOI: https://doi.org/10.1002/ps.3861

Parasites and Vectors, DOI: https://doi.org/10.1186/s13071-021-04962-5

PLoS ONE,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153302

PLoS ONE,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6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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