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쎈여자 강남순', 글발 쎈 작가 백미경의 파라다이스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2023. 10. 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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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사진=JTBC

JTBC 주말드라마로 방송 중인 '힘쎈여자 강남순'은 대본을 쓴 백미경 작가의 '파라다이스'와 같다.

그는 괴력을 가진 세 모녀처럼, 드라마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전지전능'한 자세로 시도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쩌면 모든 인간의 DNA에 깊게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모계사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드라마 대본에 도전한 지 10년이 된 백미경 작가의 역사를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

2017년 JTBC에서 방송된 '힘쎈여자 도봉순'의 스핀오프격인 이 작품은 그가 '품위있는 그녀' '우리가 만난 기적' '날 녹여주오' '마인' 등에서 쌓아온 공력들이 6년 만에 다시 터지는 작품이다. 그러한 힘을 모아온 역사가 있기에 성적도 꽤 좋다. 2017년 당시 기세는 좋았지만,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 코리아 집계로 전국 가구 시청률 10%를 넘기지 못했던 '힘쎈여자 도봉순'에 비해 '힘쎈여자 강남순'은 4회 방송에서 10%에 근접한 성적을 올렸다. 닐슨 수도권의 경우 4회는 10%를 넘기는 성적도 냈다. 이는 항저우아시안게임의 여파를 넘겨 얻은 결과로 향후 전개에 따라서는 더 높은 시청률을 기대해볼 수 있는 결과다.

사진=JTBC

'힘쎈여자 강남순'은 '힘쎈여자 도봉순'의 스핀오프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확장판이기도 하다. 6년 전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작고 여리여리한 외모, 사회의 주류에서 이탈한 것 같은 스펙의 도봉순이 사실 괴력을 갖고 어려운 이를 돕는 히어로였던 것처럼, 이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는 그 히어로의 계보를 만들고 가족을 만들었다. 김해숙이 연기하는 외할머니 길중간부터, 김정은이 연기하는 엄마 황금주 그리고 이유미가 연기하는 강남순까지 주인공들은 각자의 정의를 행하고 필요하다면 힘을 합치기도 한다. 

백미경 작가는 늘 작품에서 습관처럼 복합장르의 미덕을 구현했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히어로물이었지만 로맨스물이기도 했고 코미디였다. 그의 출세작으로 불리는 '품위있는 그녀'의 경우는 치정이나 불륜 등을 다루는 통속극이면서도 미스터리 코드와 스릴러의 구성도 들어있었다. 주인공 남자들의 영혼이 바뀌는 판타지 성격이 가미된 '우리가 만난 기적'이나 냉동인간의 해동을 다루는 공상과학 요소가 있는 '날 녹여주오' 등도 그랬다.

이러한 작품 구성에서 알 수 있듯 백 작가의 일대기 그리고 캐릭터는 드라마 시장에서 굉장히 이질적이다. 그는 기존 드라마 작가를 양산하는 시스템에 거부감을 느껴 스스로 이 대열에서 이탈한 경험이 있으며,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는 흔히 은둔을 좋아하고, 노출을 꺼리는 것 같은 드라마 작가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으며, 스스로의 생각을 드러내거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 생각을 흔쾌히 말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사진=JTBC

그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몰두하던 주제들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상위층, 주로 부자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허위'에 관한 것들이다. 이는 '품위있는 그녀'를 통해 구현됐으며 '마인'을 통해 재현되기도 했다. 이는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부활한다. 세 명의 모녀 히어로들에게는 정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변우석이 연기하는 류시오다. 하지만 백 작가가 더 집중하는 것은 류시오가 만드는 마약이 유통되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유통을 원하는 사회고위층의 욕망이다.

그리고 약자,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다. 이는 '힘쎈여자~' 시리즈가 시작된 원인이기도 했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진 여성의 지위는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나 '힘쎈여자 도봉순'의 경우처럼 고졸 출신의 취준생, 작은 체형의 여성이 믿어지지 않는 일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품위있는 그녀'에서는 어린시절부터 가난에 발목이 잡힌 주인공이 등장하고, '마인'에서는 성소주자의 서사가 자세하게 다뤄졌다. 

그가 이번에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노년의 로맨스'다. '힘쎈여자 강남순'의 길중간 캐릭터와 서준희(정보석)의 로맨스에서 그려진다.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한 길중간은 서준희에게 마구 플러팅을 날리는데, 이러한 과정을 힐난하는 딸 금주에게 중간은 노년 로맨스의 정당성에 대해 설파한다. 어쩌면 사회적 약자인 노인에게 괴력이 주어진다는 자체가 전복의 설정이다. 드라마는 거기에 그 노인이 20대 못지않은 뜨거운 사랑을 한다는 설정을 넣어,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는 인간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백미경 작가, 사진=에이스토리

그리고 코미디다. 코미디는 백미경 작가가 주제의식을 마치 쓴 약에 단 설탕을 둘러싸 먹이는 '당의정'처럼 그가 드라마 전쟁에서 가장 잘 휘두르는 칼이기도 하다. 결핍이 있는 캐릭터들과 이 캐릭터들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나오는 코믹한 상황들이 여러 작품을 통해 구현됐다. 물론 코미디가 앞선 작품은 치정이 앞선 작품보다 흥행 면에서는 뒤지기도 했지만, 이번 '힘쎈여자 강남순'의 호조 속에 그 선입견마저도 전복될 태세다.

'힘쎈여자 강남순'에는 백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사회지도층, 즉 돈과 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과 그에 반해 가지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 그리고 그 모든 주제를 쉽게 소화할 수 있게 하는 코믹의 요소가 모두 섞여 있다. 단순한 히어로물이라 볼 수도 있는 이 작품은 사실 풋풋한 20대의 사랑, 이혼 후 다시 성숙해지는 40대의 사랑, 20대 못지않게 뜨거운 60대의 사랑 등 세대별 사랑이 담긴 로맨스다.

또한 모녀 사이의 그리움과 애증, 모계에 비해 부실한 부계를 떠받치면서 그 쓸모를 연구하게 하는 가족극이기도 하면서, 힘을 가진 사람이 그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휴먼드라마이기도 하다. 심지어 작품에서는 '힘쎈여자 도봉순'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세계관의 통합 또는 확장을 기대하게 하기도 한다. 백미경 작가는 작가 구력 10년에 맞춰 만들어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10년 동안 골몰하던 주제의식을 유연하게 합치는 데 성공했으며, 그 결과물은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그가 계발한 드라마의 '파라다이스'에서 괴력을 펼치는 세 모녀. 백미경 작가는 그 중간에서 누구 못지않게 행복한 '성취의 파라다이스'를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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