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구이·조림 전과목 A학점 ‘고등 생선’[이우석의 푸드로지]

2023. 10. 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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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가을 제철’ 고등어
뱃살 부분 두툼한 기름기에
구이·조림하면 감칠맛 풍성
염장한 안동 간고등어 유명
부산선 양념 바른 ‘고갈비’ 로
냉장 발달하며 생선상태 유통
제주도·통영 등선 회로 즐겨
제주 한림읍의 선술집 ‘월령작야 달의 객잔’의 숙성 고등어회. ‘워터에이징’ 방식으로 3일 이상 저온 숙성해서 낸다.

가을. 고등어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맛이 들어 상차림을 장식한다. 녹진한 지방 맛이 살점에 스며 고소하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가을 고등어는 며느리도 안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 맛있는 생선 얘기마다 등장하는 며느리 타령마저 고등어에 붙었다. 원래 맛있는 건 아들도 주지 않으면서 걸핏하면 죄 없는 며느리를 갖다 붙인다.

짭짤하게 간이 밴 고등어자반.

아무튼 고등어는 가을부터 제맛을 내는 것엔 틀림이 없다. 이와 더불어 가을에 인기가 많은 생선 중엔 삼치, 방어 등 ‘등 푸른’ 것이 많다. 육지의 단풍(丹楓)은 빨갛고 바다의 풍(豊)은 푸르다. 한반도 남동부 연안에서 잡히는 회유성 어종인 고등어는 명태와 더불어 가히 ‘국민 생선’ 칭호를 받는다. 국민 생선의 지위는 아무 생선이나 받을 수 없다. 맛있으면서 영양이 많고, 흔해서 값이 비싸지 않아야 한다. 고등어가 딱 그렇다. 비싸고 맛있기로야 여러 생선이 있지만 딱히 ‘국민’ 자를 붙이지 않는 이유다.

최고급 어종으로 꼽히는 참치와 가까운 친척 관계니만큼 맛이 아니 좋을 수 없다. 우리 밥상에 자반, 구이, 조림, 찌개로 환영받는다. 당연히 제수용 생선으로 예전부터 ‘고등’한 대접을 받았다. 우리 바다에서 잡히는 고등어는 태평양고등어(참고등어)와 망치고등어(점고등어)가 주류다.

21세기 들어 우리 식탁을 장식하고 있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대서양고등어다. 태평양고등어와 비슷하지만 등 쪽 무늬가 굉장히 진해 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수입되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크기가 국내산보다 크고 맛도 좋다. 특히 뱃살 부분이 두툼하고 기름기가 많아 구이나 조림으로 요리할 때 충분한 지방 맛과 감칠맛을 낸다. 덕분에 먹거리에 보수적인 한국 소비자들로부터 단숨에 인기를 꿰차고 지금껏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묵은지를 듬뿍 넣고 조려낸 고등어조림.

고등어는 옛말 고도리(화투놀이의 비속어가 아니다)에서 나온 이름이다. 당연히 한자 고등어(高等魚)도 아니다. 우리말 고도리를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여러 자를 음차했다. ‘자산어보’에는 고등어(皐登魚)라 적었으며 다른 문헌에는 고도어(古刀魚)라 하기도 했다. 작명 과정이야 어쨌든 맛 좋은 생선이니 그냥 고등어라 생각하고 먹는 것이 좋겠다.

잡아놓으면 바로 죽고 썩기도 잘해 시쳇말로 ‘성질 급한’ 생선이라 활어로 살려놓기 힘들어 얼음을 채운 선어로 주로 판다. 예전에는 무조건 염장을 해서 팔았다. 안동에서 유명한 간고등어가 바로 염장 고등어를 지칭한다. 물속에서도 정말 성질이 급하다. 고등어의 유영 속도는 약 20㎞/h에 이른다. 세계적 마라토너보다 더 빠르다. 군집을 이룬 상태에서 그 속도로 이동하니 수중 풍경이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이동 경로를 파악한 다음 올 곳에 미리 그물을 쳐서 단숨에 잡아야 한다. 작은 수생식물을 주로 먹는 육식 어종이라 멸치 떼를 따라 쫓아다니기도 한다.

고등어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가자미나 돔 등에 비해 지방이 많아 선도가 떨어지면 바로 비린내를 풍긴다. 게다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도 썩는다’는 말이 있듯 쉬이 선도가 떨어지는 어종이 고등어다. 그런 이유로 고등어는 생물 상태로 유통되기 힘들다. 요즘도 잡자마자 배에서 얼음을 채워 어창에 저장하는데, 옛날에는 바로 염장을 하거나 말리는 경우가 많았다.

간고등어를 곁들인 안동의 헛제삿밥.

부산에선 ‘갈비’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고등어에 양념을 발라 구워낸 것이 고갈비다. 대대로 최고의 식재료로 꼽히는 갈비의 명칭을 붙일 만큼 맛있었던 모양이다. 부산 시내에는 오랫동안 고갈비 안주를 팔아온 고갈비 골목이 있다.

자반의 일종인 안동간고등어는 염장한 고등어가 유통 과정에서 발효되며 짭조름하고 감칠맛을 내는 것에 주목해 인기를 끌고 있는 특산물이다. 내륙에 내다 팔 고등어의 산패를 늦추기 위해 소금 간을 세게 했는데, 짧지 않은 유통 과정에서 단백질이 변화해 감칠맛을 품게 된다. 자반으로 구워내는 안동간고등어가 생산지인 바닷가 마을보다 더 유명해진 이유다.

자반이란 ‘밥을 삼키는 것을 돕는 반찬’이라는 좌반(佐飯)에서 나온 말로 요즘으로 따지자면 ‘밥도둑’의 개념이다. 예전에 두루 쓰던 명칭이었지만 요즘은 주로 염장한 등 푸른 생선에 자반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염장하지 않은 선도 높은 물고기는 생선(生鮮), 보관을 위해 소금을 친 것은 자반, 소금을 더 넣고 발효시킨 것은 해(해)라 하는데 젓갈을 담근 것이다. 이 외에도 내장을 빼고 말려서 수분을 줄여 보존성을 극대화한 것은 포(脯)라 했다.

냉장 냉동 및 운송 기술이 좋아진 요즘은 고등어가 자반보다는 생선 상태로 유통되는 까닭에 회로도 즐길 수 있다. 특히 제주도나 통영 욕지도에서 생산해서 당일 소비되는 고등어가 가장 선도가 좋아 이들 지역에선 고등어회가 인기를 끈다. 기름진 고등어회는 고소하고 감칠맛이 좋아 횟감으로도 별미다. 선도와는 별도로 맛을 위해 초회(醋膾)로도 즐긴다. 고등어 초회는 일본에서 시메사바(しめ鯖)라 해서 살짝 달달하게 식초에 절여 먹는 방식이다.

고등어를 즐겨 먹는 일본에서도 가을 하면 계절 별미로 사바(고등어)나 산마(꽁치)를 내세운다. 참고로 꽁치는 아예 이름이 ‘가을 칼 생선’이란 뜻의 추도어(秋刀魚)다. 고등어 초회나 생 고등어회를 주로 먹고 숯불에 구워서 소바나 우동에 고명으로 얹기도 한다. 초밥집에선 가시를 제거한 고등어 살로 밥을 감싼 봉초밥을 만들어 먹는다. 김밥처럼 둥근 막대기를 닮았대서 보즈시(棒ずし)라는 이름이 생겼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나 인도와 스리랑카를 비롯한 서남아시아에서도 좋은 식재료로 여긴다. 주로 튀긴 다음 향신료 소스를 곁들여 먹는 방식이다. 먹는 생선 종류가 몇 안 되는 유럽에서도 고등어는 챙겨 먹는 생선이다. 많이 나고 맛이 좋은 까닭이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훈제 고등어, 고등어 파테, 오븐 그릴 요리로 고등어를 즐긴다. 고등어의 주요 수출국이자 수산업 국가인 노르웨이에선 대구와 함께 ‘국민 생선’ 취급을 받는다. 기름이나 칠리소스로 절인 통조림도 많이 판다. 튀르키예 해안가에선 고등어를 숯불에 구워서 빵에 끼워 먹는 발륵 에크멕(Balık ekmek)이 유명하다. 굽거나 쪄 먹는 것이다.

우리 고등어 요리만 한 것이 없다. 찌개를 끓이고, 그냥 굽고, 양념을 발라 고갈비로, 김치 넣고 찜을 하고, 무에 올려 양념 조림까지. 실로 다양하다. 세계를 다니며 한국인이 어디 가서 고등어 좀 먹었다고 자랑하면 그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황공하게도 모두 선조의 은공이자 이 계절의 덕이다. 전어야 몰라도 가을 고등어를 놓치면 두고두고 아쉽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고등어회 = 월령작야 달의 객잔. 시메사바는 원래 요리법이 아니라 보관법이다. 기름이 많아 상하기 쉬운 고등어의 특성상 소금과 식초로 염장, 초장하면 단백질이 서서히 발효해 독특한 감칠맛이 난다. 직접 만든 촛물에 담가 풍미를 돋운 시메사바를 파는 집. 큼지막한 1㎏ 이상 제주산 고등어만 따로 공급받아 직접 조리한다. 숙성회만 취급하며 고등어회는 숙성 고등어회, 즈케사바(고등어간장절임회), 시메사바(고등어초절임회) 등 세 종류로 낸다. 제주시 한림읍 월령3길 39-5. 2만8000원.

◇안동간고등어 = 일직식당. 간고등어 ‘간잡이’ 명인으로 알려진 고 이동삼 씨가 차린 집이다. 여느 고등어구이와는 달리 짭조름하고 쿰쿰하면서도 감칠맛을 담뿍 간직한 맛으로 ‘안동간고등어’의 표준이라 할 수 있다. 대개 밥도둑이란 별칭이 붙은 음식은 짠맛이 강하듯 간고등어야말로 짭짤해야 맛있다. 그냥 자반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니 여기선 반드시 간고등어를 먹었노라 해야 할 것이다. 1만2000원. 경북 안동시 경동로 676.

◇김치고등어조림 = 소문난식당. 살집 좋은 고등어에 잘 익은 묵은지를 듬뿍 넣어 자박자박 조려낸 조림에 갖은 반찬을 차려내는 집이다. 젓가락으로 촉촉한 고등어 살을 떼어내 새큼한 김치를 둘둘 말아 뜨거운 밥에 올리면 한 공기가 금세 쓱싹 사라진다. 하도 회전이 좋은 집이고 ‘김치가 다 했으니’ 비린내 따윈 사전에나 있는 말이다. 곁들인 찬도 뭐 하나 그냥 지나칠 것이 없다.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41가길 32-1. 1만 원.

◇고등어구이 = 해송회센터. 맡김 차림(오마카세)으로 갖은 해산물을 내는 집. 어찌 알고 손님들이 낡은 영등포 시장 안까지 찾아든다. 신선한 제철 해산물을 구해 와 회와 구이, 탕으로 차려낸다. 가격 대비 어찌나 푸짐한지 저녁이면 많은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사장님의 고향 서천에서 가져온 소곡주 향이 좁은 가게 안을 가득 메운다. 청어 간 등 희귀한 해산물도 준다. 요즘은 높은 확률로 고등어회나 고등어구이가 나올 때가 있다. 서울 영등포구 영중로14길 9. 5만 원.

◇보즈시 = 스시선명. 초밥 셰프가 운영하는 맡김 초밥.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인원은 8명이 전부지만 그만큼 손님 대접에 충실할 수 있다. 매일 새벽 장에서 선도 높은 생선을 구해 밑손질을 하고 제철 재료를 쓴 스시를 순서에 맞게 내준다. 가을이니 고등어. 고등어 초밥이나 살집을 밥에 감싸듯 말아낸 보즈시를 주는데 매일 있을지는 알쏭달쏭하다. 물론 다른 메뉴도 기대 이상이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동산1로1길 23-24 주택상가 1층. 5만 원.

◇모둠생선구이 = 덕미생선구이. 회유성이라 고등어가 사는 곳은 잘 모르겠지만 부산이 제2의 고향, 혹은 친정임에 틀림없다. 부산에서 먹는 고등어는 그 촉촉한 식감이 여느 고을과 다르다. 초량에 있는 이 집은 조기, 가자미, 갈치 등을 묶어 모둠생선구이로 파는데 그 맛과 양이 환상적이다. 대적할 길이 없다. 주문을 받자마자 구워내는 고등어는 껍질이 바삭하고 속살은 적신 듯 촉촉하다. 과연 고등어의 친정집에서 먹는 맛은 달라도 아주 다르다. 부산 동구 중앙대로221번길 32. 4인 기준 4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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