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원석 前회장, 20세기 대역사 ‘리비아 대수로’ 신화 쓴 재계 풍운아

이성훈 기자 2023. 10.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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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前 동아그룹 회장 별세

‘재계의 풍운아’ 최원석(80) 전 동아그룹 회장이 2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총 길이 4000km가 넘는 송수관을 건설하는 ‘20세기의 대역사’라 불리는 리비아 대수로(大水路) 공사를 수주하며 동아그룹을 재계 10위로 성장시켰지만, IMF 외환 위기로 그룹이 공중 분해되는 아픔도 겪었다. 배우·아나운서 등 유명인과 4번에 걸친 결혼과 이혼으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말년에 동아예술대학교가 속한 학교법인 공산학원 이사장 직함만 유지한 그는 최근 유튜브에 나와 시한부 투병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최 전 회장은 동아그룹 최준문 창업주의 장남으로 한양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타운대학교를 졸업 후 1960년대 초반 동아건설에 들어갔다. 23세였던 1966년 동아콘크리트 사장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경영을 시작했다. 지역 기업이던 동아그룹은 1968년 대한통운, 1971년 대전문화방송 등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1979년엔 반정부 단체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이 활동 자금 마련을 위해 최 전 회장 집을 털었던 일도 있었다.

최 전 회장이 한국 재계에 이름을 남긴 사건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였다. 남부 사하라 사막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북부 지중해 해안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총 길이 4000km가 넘는 송수관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계약을 따내기 위해 최 전 회장은 직접 20여 차례 해외 출장을 다니며 리비아의 최고지도자 카다피를 면담했다. 결국 최 전 회장은 전 세계 30여 건설사를 제치고 1983년 33억달러(당시 환율로 약 2조6000억원) 규모 리비아 대수로 공사 1단계 사업을 따냈다.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10조4000억원) 4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최 전 회장은 1989년에는 53억달러 규모 리비아 대수로 공사 2단계 사업을 수주했는데, 이는 당시로선 역대 세계 최대 규모였다. 수주를 위해 최 전 회장은 경쟁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밤 비행기를 이용해 리비아를 오갔다. 최 전 회장은 카다피를 ‘카 선생’이라 부르고, 카다피는 최 전 회장을 ‘혜잔님(회장님)’이라고 부르며 친분을 쌓은 일화는 유명하다. 최 전 회장은 이를 계기로 건설과 물류를 주력으로 한 동아그룹을 1990년대 초에는 22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0위 기업으로 키웠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 당시 현장을 방문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현지 직원들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고인의 현장 모습을 담은 몇 안 남은 사진이지만, 정확한 촬영 시기와 장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공산학원

하지만 최 전 회장의 사업은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를 계기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성수대교를 지었던 동아건설의 부실 시공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업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논란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특히 최 전 회장은 1990년대 중반 김포 매립지와 인천 청라지구 등 수도권 주택 사업에 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한 상황에서 IMF 사태를 맞으며 급격히 몰락했다. 최 전 회장은 자신의 사재와 선영까지 회사에 털어 넣었지만, 2001년 그룹 해체는 막지 못했다. 훗날 최 전 회장은 “당시 정부가 사재를 넣으면 그룹은 살려준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서 파이프가 매설되는 모습. /조선일보DB

최 전 회장은 사생활로도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최 전 회장은 1964년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신도환 전 국회의원의 딸인 신정현씨와 결혼했다가 약 2년 만에 이혼했다. 두 번째 부인은 1960년대 유명 배우였던 김혜정씨, 세 번째 부인은 펄시스터즈의 멤버로 큰 인기를 누렸던 가수 배인순씨였다. 최 전 회장은 1999년에는 자신보다 스물일곱 살 어린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장은영씨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도 2010년 마침표를 찍었다.

최 전 회장은 약 4개월 전 한 유튜브 인터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 “사우디 가고, 리비아 갔던 때가 좋았다”며 “다시 태어나도 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유족으로는 아들 최우진, 최용혁, 최재혁, 딸 최선희, 최유정. 발인은 오는 28일 오전 7시 10분. (02)30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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