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만으로 첫날 30만 …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0. 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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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개봉
시사회·광고도 없는 '無마케팅'
예매율 68% 극장가 돌풍 예고
친어머니 잃은 소년 마히토가
왜가리 따라 낯선 탑에 들어가
갈등과 성장 경험하는 이야기
하야오 감독 개인적 체험 녹여
관객 반응은 양극단으로 갈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 번복작'인 새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한 장면. 소년 마히토의 모험과 성장을 다뤘다. 지브리 스튜디오·대원미디어

포스터 한 장만으로 '첫날 관객 30만명'을 동원한 영화가 탄생했다. 일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복귀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국내에서 25일 개봉했다. 시사회도 없고, 인터뷰나 광고도 없이 작품성과 명성만으로 승부를 본 '무(無)마케팅' 영화다. 그럼에도 예매율(극장 총예매수 중 해당 영화 점유율) 68%에 관객수 30만5000명(25일 정오 기준)을 동원하면서 극장가를 장악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476만명), '스즈메의 문단속'(555만명) 등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유독 강세를 보인 2023년 한국 영화시장에서 늦가을 다시 일본 애니메이션 돌풍이 가능할까.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25일 오전 첫타임 영화관에서 미리 살펴봤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담당한 이번 신작은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세 소년 마히토에게 벌어지는 모험극이다. 투병 중이던 친어머니는 병원 대화재로 사망했고, 마히토는 새어머니 나츠코를 따라 시골 저택으로 이사를 간다. 새어머니 뱃속에선 동생이 자라고 있다. 잠든 소년의 꿈은 아버지를 겨냥한 증오심, 계모에 대한 반감 그리고 하늘로 떠난 모친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새로 이사온 저택 주변엔 왠지 불길한 왜가리 한 마리가 호수 주변을 맴돈다. 마히토는 왜가리를 사냥하려 직접 활을 만들지만 그날따라 왜가리는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때, 소년은 새어머니 나츠코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히토는 나츠코를 구하기 위해, 왜가리 녀석의 안내를 받아 그녀가 사라졌다는 숲속의 탑으로 들어간다. "여러 세계에 걸쳐 있는" 신비로운 탑. 그곳에서 마히토는 나츠코를 구할 수 있을까.

10년 전인 2013년 9월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번 신작으로 은퇴를 '번복'한 82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번 신작에 일생 동안 축적한 영화적 경험과 드러내고 싶었던 내면의 상처를 쏟아낸 느낌이다.

낯선 이계(異界)로의 모험, 그곳에서 만난 낯선 존재들과의 불화와 쟁투 그리고 세계와의 화해, 자아의 극복이라는 주제의식은 그의 기존 작품들과 공통분모를 형성한다. 수상한 터널을 지나 인간에게 금지된 세계의 문을 열며 벌어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녀 저주로 할머니가 된 소피가 거대한 마법의 성에 들어가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낙향한 주인공이 신비로운 생명체인 토토로를 만나는 '이웃집 토토로'와 맥락이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파시즘에 병든 인간들의 끝도 없는 전쟁('붉은 돼지'), 일상의 인간에겐 보이지 않는 전설의 성('천공의 성 라퓨타') 등의 소재도 감독의 전작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설립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과거 애니메이션과 달리, 이번 신작은 자아의 진솔한 총체적 경험을 녹여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기존 작품들이 주로 어린 소녀의 성장과 모험을 다루는 데 비해, 이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소년의 모험과 갈등을 다루고 있고, 특히 감독 자신이 성장기에 경험했던 일을 반추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러 장면이 눈에 띈다.

투병생활로 오래 누워지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 공습으로 인해 살던 집이 전소돼 거주지를 옮겨야 했던 유년의 위기, 반전주의자이면서도 전쟁 특수로 떼돈을 벌었던 기술자 아버지와의 대립 등 감독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작품에 녹여냈다.

영화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본 작가 요시노 겐자부로의 동명 소설('How do you live?')에서 따왔다. 1937년 출판된 책으로 15세 소년 앞에 놓인 불가해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로 200만부 팔린 스테디셀러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번 작품은 '소설의 영화화'와는 다소 무관하고, 유년 시절 감독 자신이 어머니에게 이 책을 선물받았던 경험이 영화 속에 놓여 있다.

작품의 영문 제목은 'The boy and the heron'으로 왜가리(heron)와 소년 마히토의 관계에 좀 더 집중된 느낌이다. 앞니부터 어금니까지, 사람의 치아를 가지고 인간의 말을 하는 영화 속 왜가리는 마히토에게 적대적 대상이지만, 결국 왜가리는 마히토를 이계로 안내하는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계모 나츠코와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낯설고도 새로운 존재들과의 충돌과 성장은 '세상은 혼자만의 관점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주제의식을 강화한다.

세계 최대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선 이 영화의 신선도 지수(평점)가 현재 '99%'로 사실상 만점이다. "지브리 스튜디오 팬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의심할 여지가 없는 걸작" 등의 평가가 뒤따랐다. 하지만 진행되는 줄거리에 자전적 요소가 많다 보니 내용이 난해하고 하나하나 의미를 곱씹으려다 길을 헤매게 된다는 혹평도 뒤따랐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팬들에게는 이 영화가 노장 감독이 전하는, 기쁨의 눈물 섞인 마지막 작별 인사로 추억될 만하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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