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동네 사랑방 되살린 방앗간…“깨 볶는 재미 쏠쏠하네요”

지유리 2023. 10. 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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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크리에이터] (8) 옥희방앗간 문지연 대표 <강원 원주>
서울서 고향 내려와 어머니 일 도운 게 시작
카페·갤러리 겸하는 공간으로 새로 문 열어
‘로스터리’ 도입…기호 맞춰 상품군 다양화
라테·아이스크림 등도 어르신께 ‘인기만점’
“들깨, 먹거리 넘어 지역문화로 자리잡기를”
강원 원주 옥희방앗간 문지연 대표는 깨를 ‘연하게’ ‘균형 있게’ 두가지 단계로 구분해 로스팅하고 착유한다.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들기름·참기름을 판매하는 것이다. 그 외 색다른 들깨음료도 선보이며 들깨 매력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어릴 때 방앗간에 놀러가면 마음이 편안했어요. 고소한 기름내가 진동하고 한편에선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풍경이 눈에 선해요.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있죠.”

강원 원주시 행구동에서 ‘옥희방앗간’을 운영하는 문지연 대표(32)는 그 전까진 서울서 여행잡지 기자로 일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잡지가 폐간하자 고향인 원주로 돌아왔고 기약 없는 백수 신분으로 호저면에서 어머니가 하던 방앗간 일을 도왔다. 남들이 보기엔 가시밭길 같았겠지만 문 대표는 당시가 참 좋았다고 기억한다. 인심 넘치던 방앗간의 가치를 몸소 깨달았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마트에 가면 기름·떡·고춧가루를 손쉽게 살 수 있게 됐으니, 방앗간을 찾던 사람이 줄었다. 결국 어머니가 운영하던 방앗간은 2021년 문을 닫았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문 대표는 같은 해 원주시 도심에 ‘옥희방앗간’이라는 간판으로 새로 문을 열었다. 이 방앗간은 기름집이면서 카페이고 때때로 갤러리로 변신하는, 강원도산 들깨의 매력을 알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강원도와 들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짝꿍이에요. 예부터 땅이 척박해서 생명력이 강한 들깨를 많이 재배했대요. 특유의 향이 산짐승을 쫓아줘 밭 가장자리마다 들깨를 심기도 했고요. 지금도 강원도 사람들은 들기름을 자주, 많이 먹어요.”

들기름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옥희방앗간 이름 앞에 꼭 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깨 로스터리’다. 강원도 들기름의 맛과 품질을 높이고 더 재밌게 알리기 위해 로스팅(Roasting) 개념을 도입했다. 로스팅은 볶는다는 뜻으로, 주로 커피 원두에 쓰는 말이다. 문 대표는 깨도 커피처럼 로스팅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봤다. 연하게 로스팅해 착유하면 산뜻하면서 본연의 향이 풍부해지고 중간 정도로 균형 있게 로스팅 후 착유하면 풍미가 묵직하고 감칠맛은 진해진다는 것.

“올리브유는 품종·생산방식·맛에 따라 제품이 세분화돼요.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골라서 먹어요. 비싼 값을 내기도 하고요. 우리 들기름·참기름도 못지않게 품질이 좋은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옥희방앗간은 들깨·참깨를 ‘연하게’ ‘균형 있게’ 두단계로 나눠 볶는다. 다양한 맛을 원하는 고객들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서다. 원재료는 국산만 쓴다. 특히 들깨는 강원도산만 고집한다. 지난해에만 강원도산 들깨를 3t가량 구입했다. 그중 일부는 재래종 들깨를 계약재배한 것이다. 문 대표 할아버지가 재래종 들깨농사를 짓는데, 이 씨앗을 무료로 농가에 나눠주고 전량 수매한 것이다. 재래종 들깨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참깨는 주로 경상·충청권에서 구입한다.

“옛날 방앗간은 온종일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그때는 방앗간이 곧 사랑방이었거든요. 옥희방앗간도 그런 장소가 되길 바랐어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데 카페만 한 곳이 없다. 게다가 카페는 젊은 사람들에게 들깨를 알리는 쇼룸으로도 제격이다. 착유실 밖을 카페로 꾸미고 들깨를 넣은 다양한 음료를 판매한다. 대표 메뉴는 ‘크림들깨라테’인데, 개발한 사연이 재밌다. 예전에 방앗간에 오신 할머니들이 들깻가루를 우유에 타 마시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단다. 크림들깨라테는 커피에 들깻가루를 넣어 고소한 맛을 더했다. 크림 위에도 볶은 들깨를 뿌려 내놓는데 커피와 깨향이 섞여 오묘한 매력이 있다. 들깨의 잎·기름·가루가 모두 들어가는 ‘들깨벌꿀아이스크림’도 있다. 의외로 어르신들도 자주 찾는단다. 한 70대 할머니는 들깨벌꿀아이스크림을 맛보러 일주일에 사나흘씩 방문한다.

“주 고객층은 50∼60대예요. 아무래도 방앗간에 익숙한 세대니까요. 카페에 오는 20∼30대도 많아요. 그분들이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기름을 사러 오는 모습을 보면 옥희방앗간이 세대를 잇는 공간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문 대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른 로컬크리에이터와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들깨를 주제로 한 굿즈(기념상품)를 제작해 판매하고, 깨 수확·타작 장면을 담은 사진과 일러스트를 영상으로 만들고 이를 옥희방앗간 내부에 프로젝트로 쏘아 선보이는 디지털 전시도 열었다. 올해는 들깨분양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지난 5월 참가자 100여명에게 들깨 모종을 화분에 심어 나눠줬다. 몇몇은 모여 인근 밭 330㎡(100평)에서 같이 들깨농사를 짓고 얼마 전 수확까지 마쳤다. 문 대표는 강원도 들깨가 먹거리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자랄 때는 들깨가 너무 익숙해서 특별한 줄 몰랐는데 이제 보니 그 가치가 무궁무진한 자원이더라고요.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 방앗간은 들깨를 알리는 전초기지이자 최후의 보루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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