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02] 올리브 가지를 물고 온 흰 비둘기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3. 10.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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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의 묘비석 중 여인과 비둘기, 4-5세기,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의 국립 박물관 소장.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봤던 독자라면 푸른 하늘로 가슴 벅차게 날아오르던 평화의 상징, 흰 비둘기 떼를 기억할 것이다. 귀소본능을 가져 멀리서도 신통하게 제 집으로 돌아오는 비둘기는 고대로부터 여러 문명권에서 신의 전령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흰 비둘기가 특히 평화의 상징으로 정착한 건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다.

구약성서 중 창세기에 의하면 하느님이 타락한 삶에 빠져버린 인류를 멸망시키려 대홍수를 일으켰고, 미리 계시를 받았던 노아만이 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짐승들의 목숨을 건졌다. 40일간 내린 비로 높은 산까지 모두 물에 잠긴 뒤 오랫동안 물 위를 떠돌던 노아가 어느 날 방주에서 흰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왔다. 마침내 마른 땅이 있음을 알게 된 것. 물론 지중해 지역의 대표적 산물인 올리브 또한 고대로부터 평화를 상징했지만, 기독교에서는 올리브 가지를 물고 나는 흰 비둘기가 땅 위에 평화가 내리고 인간들에게 자유가 왔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였다.

로마 시대 무덤인 카타콤에서 묘비석으로 사용된 작은 돌판 위에 망자(亡者)인 여인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Χριστός’의 머리말 ‘X’와 ‘P’를 옆에 두고, 올리브 가지를 문 비둘기를 맞이하는 장면이 간소하게 새겨져 있다. 올리브 가지를 문 흰 비둘기는 이처럼 313년, 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활발하게 제작된 기독교 미술과 건축 중에서 특히 묘비석에 자주 등장한다. 당시 평범한 이들의 삶이란 세상을 떠난 다음, 내세에서야 비로소 평화와 자유를 바랄 수 있을 만큼 고생스러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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