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도 저작권 인정… 창작적 설계 늘어나길” [차 한잔 나누며]
“국내에서 철거 명령은 처음
‘웨이브온’ 다양한 창작 요소
지식재산권 높게 평가 의의
사회적 인식 제고 계기돼야”
“카페를 철거하고 5000만원을 배상하라.”
최근 건축 저작권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 기장군 카페 ‘웨이브온’을 건축한 이뎀건축사사무소의 곽희수 소장이 한 건축사사무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결과다. 지난달 서울서부지법은 울산 A카페가 웨이브온의 건축 디자인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이같이 판결했다.
허 변호사에 따르면 저작권 문제로 건축물 철거 명령이 인용되려면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건축물이 저작물로 인정받고, 상대 건물이 저작물을 베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뒤에야, 마지막으로 상대 건물이 금전적 손해배상을 넘어 철거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건축물의 경우 첫 번째 단계인 ‘저작물 인정’ 통과부터 쉽지 않다. 창작자가 다른 저작물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정신활동을 투입한 창작물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건축물에서는 이를 충족하기 어려워서다.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건축물은 창작성이 발휘될 여지가 제한되고 기능성이 주요하게 고려된다. 대부분 건물이 비슷한 직사각형 형태로 지어지는 이유다.
그러나 저작권 침해가 인정돼도 그동안 판결은 대부분 손해배상에 그쳤다. 경기 용인에 있는 한 펜션의 디자인을 모방한 강화도 펜션은 1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강원 강릉의 유명 카페 테라로사를 모방해 건축된 경남 사천시의 카페에도 5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만 내려졌다.
원고가 모방 건축물의 철거 폐기를 요구해도 재판부는 철거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우려해 인용하지 않았다고 허 변호사는 전했다. 그는 “과거 대법원 판결 중 다른 건물의 설계도서를 베껴 건축 중인 건물의 공사 중지를 다툰 사건이 있었는데, (재판부는) 공사를 중단할 경우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는 취지로 철거를 인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허 변호사는 반대로 A카페 건물이 유지될 경우 발생하는 손실을 재판에서 꼬집었다. “복제물을 버젓이 거리에 놓아두는 것이야말로 사회경제적 손실”이라고 한 것이다. 웨이브온은 국내외에서 많은 상을 받을 정도로 건축계에서 인정받는 건축물인데, 이를 모방한 건물이 거리에 전시돼 있는 것은 ‘지식재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변화된 사회적 인식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쌍방 항소로 아직 재판이 종결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 판결만으로도 건축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허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건물에 대한 저작권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의의가 있다”며 “건물의 창작적인 설계가 활발해지고 인정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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