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무름병 확산에 수확량 뚝…“김장철 앞두고 눈앞 캄캄”

김윤호 2023. 10.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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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배추 주산지 농가 ‘시름’
잦은 비·고온다습한 날씨 원인
미결구 많아 상품가치 떨어져
수확량 예년 절반 못 미치기도
농가 “이상기후로 발생한 재해
정부가 앞장서 대책 마련해야”
강원 평창군 봉평면 원길리의 한 배추밭에서 수확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무름병이 퍼져 수확을 포기한 배추가 곳곳에 보인다.

“심한 데는 예년의 절반 정도를 겨우 건지는 수준입니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한창 수확기인데 눈앞이 캄캄하네요.”

가을배추 주산지인 강원 평창·홍천과 충북 청주, 경북 문경 지역의 배추농가들이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배추밭에 무름병이 돌면서 수확량이 예년에 비해 30∼40%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8월초 정식기에 잦은 비가 내려 배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데다 이후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되자 이를 버티지 못하고 무름병이 확산된 것을 주원인으로 꼽고 있다. 농가들은 밭에 쓰러진 배추를 보며 너나없이 한숨짓고 있다.

◆급감한 수확량에 농가 울상=19일 오전 가을배추 산지인 강원 평창군 방림면 일대를 찾았다. 해발 400∼600m 준고랭지인 이곳의 배추 재배면적은 200㏊(60만5000평)를 넘는다.

이곳에서 6.61㏊(2만평) 규모로 배추를 재배하는 정순용씨(63·계촌리)는 “평생 배추농사를 지었지만 성한 배추를 이 정도로 찾기 힘들었던 건 처음”이라며 “올여름 우박을 맞아 배추밭을 한번 갈아엎고 다시 가을배추를 심었는데, 가뜩이나 농산물 시세도 없는 마당에 병해로 상품 가치까지 잃어 농사짓기가 겁난다”고 망연자실했다.

괜찮은 배추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며 수확작업에 나선 봉평면의 한 배추농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칼로 배추 밑동을 자르는 농민의 얼굴에선 수확의 기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가가보니 밭 곳곳에 물러진 배추가 나뒹굴고 있었다.

평창군농업기술센터 관계자도 “무름병도 문제지만 9월 생육기에 비가 많이 온 탓에 일조량이 부족해 결구 자체가 잘 안된 배추도 많다”며 “보통 991㎡(300평)에서 5t 윙바디 트럭 한대분 정도를 수확하는데, 올해는 3305㎡(1000평)에 한 트럭 분량이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수확량이 뚝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대관령원예농협(조합장 이준연)에 따르면 올해 가을배추 계약재배 면적 약 33㏊(10만평) 가운데 40% 가까이에서 무름병 현상이 나타났다.

신영주 대관령원협 채소사업소장은 “진부면·방림면·봉평면·대화면 등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전체적인 작황이 좋지 않다”며 “띄엄띄엄 배추가 살아 있어도 이 정도면 수확작업 자체가 비효율적이라 작업반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천군 내면에서 2.31㏊(7000평) 규모로 배추농사를 짓는 정시명씨(71·광원2리)는 “7월말 배추를 파종하고 두달여 애지중지 길러 수확에 나섰는데 80% 이상이 망가져 5t 트럭 두대분을 겨우 채웠다”며 “성장기에 비가 자주 온 데다 기온까지 높았던 게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하소연했다.

인근 다른 배추농가는 “이상기후로 인한 재해인 만큼 정부가 앞장서 피해 원인과 면적을 조사한 뒤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충북·경북 등 다른 지역도 피해 속출=19일 충북 청주에서 만난 최영회씨(65·미원면 구방리)는 “25년 넘게 배추농사를 지었지만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 겪는다”며 “바이러스에 무름병·노균병이 창궐해 건질 배추가 하나도 없을 정도”라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2만6400㎡(8000평) 규모의 배추밭은 멀리서 보면 푸른빛을 띠어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밭으로 들어가 가까이 살펴보면 결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뿌리를 단단히 내리지 못해 조금만 건드려도 옆으로 쓰러졌다. 또한 밑동은 무름병으로 흐물흐물 썩어가고 잎은 갈색 반점이 생기며 말라가고 있었다.

최씨는 “8월 상순·중순에 정식한 배추가 고온다습한 날씨 때문에 무름병 등 병해가 심하게 왔다”며 “예년 같으면 이달 초에 수확을 마쳤어야 하지만 올해는 90% 넘는 배추가 피해를 입어 손을 아예 놓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동안 비닐·농약·인건비 등 4000만원을 투입했는데 올해는 한푼도 건지지 못하고 빚만 늘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인근 농가 정도형씨(65)도 “지난해는 10월초부터 12월초까지 1t 트럭 80여대에 배추를 실어 나르느라 새벽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올해는 10%도 수확을 못할 것 같다”며 “인부를 사서 기껏 수확하더라도 상품성이 떨어져 제값을 받기 어려워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경북 문경에서 3만3057㎡(1만평) 규모로 배추농사를 짓는 김중서씨(48·농암면 연천리)는 “8월15일 이전에 정식한 배추는 상태가 많이 안 좋다”면서 “8월말부터 9월 중순까지 잦은 비와 한낮 기온이 30℃에 육박하는 고온이 지속된 탓”이라고 설명했다.

농암지역의 경우 포장별로 심한 곳은 60∼70%에서 무름병이 발생했다. 이달 들어선 갑자기 낮과 밤의 기온차가 너무 커 후반기 결구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김원동 경북 서안동농협 풍산김치가공공장 구매 담당은 “8월말 가을배추 정식 이후 잦은 비와 한낮 고온현상 등 이상기후로 잔뿌리 활착이 잘 안됐고, 이후 생육과 결구 등에 악영향을 미친 듯하다”며 “가을배추 산지인 문경·안동·영양 등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름병 발생이 예년보다는 확실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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