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인데 소아과 전공의 중도포기율 23%...왜?[김용훈의 먹고사니즘]

2023. 10.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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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확한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부가 의대정원을 늘리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환영할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정원은 2.6명(202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적습니다. 의대 정원이 2006년 이후 지금까지 3058명으로 묶여있던 탓이죠.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전까진 이보다 10% 더 많았지만, 의약분업 당시 정부는 의사단체 요구를 받아 정원을 줄였어요. 절대적인 의사 숫자가 적다보니 국민들의 불편은 계속 커져만 갔죠. 시민단체들이 “정부에 의대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것은 바로 그래서입니다.

다만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같은 일들을 막기 위해선 단순히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의대정원 증원이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흉부외과 등 이른바 필수진료과목 의사 수를 늘리는 것으로 직결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실제 의료정책연구원이 지난 2월 내놓은 연구보고서를 보면 지난 10년간 전문의 수는 연평균 3.3%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외과와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1.2~2.2% 늘어나는 데 그쳤어요. 또, 2017년 기준 전체 전공의 충원율이 96% 였는데 흉부외과는 54%에 그쳤고, 2020년에도 외과와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63~89%로 미달이었죠. 이런 추세는 더 심각해져 소아과 전공의 확보율은 2020년 71%에서 올해는 25.5%까지 급락했고, 소아과 전문의가 되기 전에 중도 포기하는 비율도 2017년 6%에서 지난해 23%로 크게 늘었어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진짜 의사들인데 이처럼 인기가 없는 건 왜일까요. 우선 ‘벌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의원급 의사 연봉은 소아과가 약 1억875만원으로 가장 낮습니다. 반면, 인기과로 꼽히는 피·안·성의 경우 피부과 약 3억263만원, 안과 약 4억5800만원, 성형외과 약 2억3210만원입니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겠죠.

왜 이렇게 소득에 차이가 날까요. 그 이유는 국민건강보험 적용 여부입니다. 건보 적용 질환은 ‘급여’ 대상으로 분류가 돼 환자가 부담하는 돈이 적습니다. 그 대신 각 병의원들은 국민건강심사평가원의 심사를 거쳐 건보당국이 정해둔 만큼의 ‘수가’를 받죠. 대부분 ‘필수진료과목’ 전문의들이 다루는 질환은 이름 그대로 ‘필수진료과목’이기 때문에 거진 다 ‘급여’ 대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복지가 선진화될 수록 필수진료과목 전문의들은 벌이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예컨대 올해 3월 질병관리청은 생후 2~6개월 영아에 대한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렇게 되면 각 동네 소아과에서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접종수당(시행비)이 건당 ‘1만9610원’으로 고정돼 이 백신으로 벌 수 있는 수익이 전보다 40%가량 줄어들죠. 다수의 환자들이 부담없이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됐지만, 각 동네 소아과의 경영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반면 건보 적용이 되지 않는 질환은 ‘비급여’로 분류가 돼 ‘부르는 게 값’입니다. 예컨대 같은 쌍꺼풀 수술이라도 성형외과마다 그 비용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죠.

서울 시내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 폐업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서울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통계'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개인병원 중 소아청소년과는 456개로 2017년 521개보다 12.5% 줄어들었다. 5년 전보다 수가 줄어든 개인병원 진료과목은 총 20개 중 소아청소년과와 영상의학과(-2.4%)뿐이다. [연합]

그 뿐인가요. 필수 인건비 지출은 오히려 필수진료과목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소아과는 신생아나 어린 아이가 많아 의사가 진료를 할 때 ‘붙 잡아’ 줘야 하는 간호인력이 더 필요합니다. 산부인과의 분만 역시 적어도 3명 이상의 인력이 산모 1명에 달라 붙어야 하죠. 이러다보니 ‘적자’를 견디지 못해 폐업하는 소아과가 늘고, 분만을 기피하는 산부인과도 크게 증가했어요. 실제 지난해 전국 동네 소아과 개업 대비 폐업률은 65%를 기록했는데, 동네 소아과 3곳이 문을 열 때 2곳은 문을 닫은 셈입니다. 또, 올해 7월까지 전국 산부인과 10곳 중 8곳은 분만 수가를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어요. 분만을 해봐야 건보공단에서 받을 수 있는 수가는 50만원이 전부인데, 분만환자를 받을 수록 경영난은 더 심각해지니 산부인과인데도 불구하고 분만을 포기한 것이죠.

인력 충원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악순환은 필수진료과목 전문의들이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부작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의료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필수의료과를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의사 응답자들은 “온콜 당직 또는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인해 직업 만족도와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며 “높은 의료사고 위험에도 의사들에 대한 법적 보호 조치가 부재하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건 이해가 가는데, 법적 보호 조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이 이야기는 2017년 소위 ‘이대 목동 병원 중환자실 신생아 사망 사건’에서 비화된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가 사망하면서 소아과 수련의 7명이 기소된 사건이예요. 이 의사들은 모두 무죄를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3명이 구속되면서 의대생들이 소아과 전공을 기피하는 계기로 작용했어요. 이 일이 터지자 당시“소아과 수련의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사건”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어요.

아무튼 전문가들은 낮은 소득과 이에 반비례하는 높은 근로강도, 법적 분쟁의 위험성 등을 고려하면 의대정원을 늘린다고 필수진료과목 전문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 이미 폐업을 한 소아과 전문의는 “소아과 전문의가 돼 개업을 하면 시작과 동시에 폐업을 걱정해야 하지만 ‘비급여진료’가 대다수인 진료과를 선택하면 그럴 걱정이 없다”면서 “진료시 대부분이 급여로 이뤄진 필수의료분야는 결국 손해이기 때문에 필수의료 분야에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지원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는 특히 “이번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대책 발표 중 수가 인상 내용이 ‘병원급 신생아실, 모자동실 입원료 50% 인상’, ‘소아 중환자실 입원료 개선, 일반병동 입원 시 만 1세 미만 가산 30→50% 확대’라는 것에 대해 “‘소아과 오픈런’이 일어나는 이유는 ‘동네 소아과’가 경영악화를 버티지 못해 발생하는 것인데, 국립대병원과 2차·전문병원에 대한 지원만 강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어요. 동네 소아과를 살리는 것이 전체 필수·지역의료 생태계를 살리는 첫 걸음이라는 것이죠.

※[김용훈의 먹고사니즘]은 김용훈 기자가 정책수용자 입장에서 고용노동·보건복지·환경정책에 대해 논하는 연재물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느껴질 때면 언제든 제보(fact0514@heraldcorp.com)해 주세요.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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