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프론티어' JYP 박진영, 007작전 '비닐의상'까지

조성진 기자 2023. 10. 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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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비범성+프론티어 정신 엿볼 수 있는
1994년 MBC ‘토토즐’ 통해 첫 선
김종진 PD의 숨막히는 007작전
MBC 발칵 뒤집어놨지만 34%란 역대급 시청률
박진영, 톰 크루즈 내한때 리포터로도 활약
인터뷰어로서도 순발력+역량 발휘
아티스트를 팀별로 분화, 선진화된 엔터시스템 최초 시도
“연습생 부모님께 죄송할 일 하면 안 된다”란 명언 남겨
여전히 춤추고 노래하는 유일한 현역 엔터 수장
박진영이 SBS 인기가요(1995년 2월 19일 방송)에서 '날 떠나지마'를 노래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마이클 잭슨 하면 '문워크'가 먼저 떠오르듯 박진영 하면 '비닐의상'이 오버랩된다.

1994년 당시만 해도 방송에서 노랗게 염색한 머리나 귀걸이 착용이 금지됐다. 온갖 방송 규제가 심한 그즈음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 물론 젖꼭지까지 노출될 만큼 선정적인 비닐 의상은 파격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박진영은 당시로선 가장 앞서가는 트렌드의 음악을 하려 했고 '남다른' 무대의상을 통해 프론티어로서 그의 의지를 담으려 했다.

당시 국내 음악계에서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비닐패션은 박진영이란 걸출한 아티스트의 아이디어와 비범한 뮤지션십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게 처음 세상에 나오기까진 007 제임스 본드를 연상케 하는 대작전이 필요했다. 그러한 007작전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이 당시 MBC 인기 예능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토토즐)'의 김종진 PD였다(사진참조 : MBC '토토즐' 해당 영상은 자료가 없는 관계로 타 방송사에 출연할 당시 박진영의 비닐의상을 사진으로 게재한 점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1994년 당시 신인이던 박진영은 연세대 지질학과를 휴학하고 음악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 최고의 음악예능 프로그램인 MBC '토토즐'에 출연하고 싶어 하던 그는 이를 위해 오디션을 보러 왔다.

박진영의 첫인상에 대해 김종진 당시 '토토즐' PD(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큰 키에 고릴라 같은 인상이라 종래의 연예인 이미지와 달랐다""그러나 막상 오디션에서 춤과 노래를 하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고 말했다. 김종진 교수는 "이미 몸을 놀리는 것부터 당시 그 어떤 국내 유명 가수들과 달랐고 감각이 너무 뛰어났음은 물론 끼도 넘쳐서 보는 내내 감탄했다"고 덧붙였다.

김종진 PD는 신인 박진영을 보며, 국내 대중가요계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라고 확신한 것이다. 그리고 이 풋풋한 신인을 위해 무려 6회의 출연 기회를 주며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토토즐'에 편성했다.

당시 '토토즐'MBC를 대표하는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인 만큼 스튜디오를 2개나 배정해 제작할 정도였다. 다양한 내용을 소신껏 제작해보라는 방송국의 적극적 배려를 볼 수 있는 단면이다. 본방은 토요일이었지만 목요일에 사전녹화를 했는데, 바로 이날 박진영이 비닐로 옷을 제작한 화제의 패션을 입고 '날 떠나지마'를 녹화한 것이다.

녹화를 위해 박진영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스태프 모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젖꼭지가 다 보이는 파격적인 비닐 의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종진 PD는 충격이기 이전에 멋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박진영의 비닐의상에서 반사되는 조명이 너무 좋았고 따라서 여기에 스튜디오 내의 조명만 제대로 활용한다면 더욱 멋진 그림이 나올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현장을 총괄하는 프로듀서의 동물적 직감이었다.

그러나 녹화가 시작된 지 얼마 후 MBC가 발칵 뒤집어졌다. 국장이 직접 내려와서 노발대발하며 절대 방송에 내보낼 수 없다고 녹화 중단을 통보한 것이다. 김종진 PD는 일단 "알겠습니다"라고 했고 국장이 보는 앞에서 녹화는 중단됐다. 국장이 녹화 스튜디오에서 나가는 걸 보고 김종진 PD는 기술 스태프에게 "모든 건 내가 책임질 테니 국장실로 가는 CCTV 회로를 끊어달라"고 요청하고 박진영의 방송 녹화를 진행했다. '항명'의 순간이었다.

이렇게 해서 '토토즐'의 박진영 꼭지가 완성됐다. 그러나 007작전은 계속되어야 했다.

토요일 오후 7시부터 방송이 시작되는 관계로 5시 전까지는 완성본 테이프를 주조정실에 넘겨야 한다. 방송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오리지널과 함께 복사본을 만들어 놔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송 시작 2시간 전엔 원본 테이프가 주조정실에 넘어가야 함에도 김종진 PD는 주조정실에 테이프를 보내지 않았다. 주조정실 기술 스태프가 테이프 빨리 보내라고 닦달했음에도 김종진 PD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6시가 넘어서야 테이프를 보냈다. 1시간짜리 분량의 원본 테이프이므로 카피를 뜨기 위해서도 1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방송 시작 1시간이 안 남은 상황에서 원본을 받아 든 주조정실 입장에선 이걸 복사하기엔 늦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끝까지 국장실로 가는 모든 채널/정보 차단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7, MBC '토토즐'은 이후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박진영과 문제의 비닐의상이 함께 하는 역사적 방송을 전국으로 송출했다.

박진영이 SBS 인기가요(1995년 2월 19일 방송)에서 '날 떠나지마'를 노래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캡처]

기자들에겐 조회수가 중요하듯 방송 PD 및 관계자들에겐 시청률이 당면과제다. 주말 프로인 '토토즐'은 매주 월요일 오전에 시청률 결과가 나왔다. PD들 입장에선 초조하게 시청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MBC 대표 인기 프로인 만큼 '토토즐'은 보통 24~28%대 시청률을 기록해 왔다. 당시 예능으로선 대단한 수치다. 그런데 박진영이 첫 출연한 '토토즐'은 무려 34%가 넘는 시청률이 나왔다. '토토즐' 역대 10위권 안에 드는 대단한 수치, 한마디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매주 시청률 결과와 함께 회의하는데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장이 김종진 PD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항명'을 했으므로 '짤릴'수도 있는 중대 사안인 만큼 국장의 발걸음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을 철렁거리게 하고 있었다. 국장은 김종진 PD 쪽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추곤 그의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때리며 "잘해, 앞으로!"라고 짧게 한마디만 했다.

"그때처럼 누구한테 한 대 맞으며 희열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잘해, 앞으로!"라는 한마디는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항명이었음에도 (용서하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것과 "잘했다" "하지만 앞으로 말 좀 잘 들어라"라는 다의적인 의미가 내포된 것이기도 하다.

김종진 PD는 영화 '서편제(감독 임권택)'가 최고의 화제가 될 땐 '서편제' 패러디에도 박진영을 출연시켰다. 이처럼 매회 아이템을 달리해 박진영의 무한 '포텐셜 파워'를 알렸다. 박진영 또한 김종진 PDKMTV로 회사를 옮겼을 때 프로에 출연하며 감사와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박진영은 톰 크루즈 내한 때 리포터로도 활약했다. 당시 톰 크루즈는 세계에서 가장 핫한 할리우드 스타였던 만큼 인터뷰를 하려고 몰려든 국내 매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매체별 5분씩 배정한 인터뷰였는데, 유독 박진영만 톰 크루즈와 30분 넘게 인터뷰하고 나와 눈길을 끌게 했다. 이에 대해 김종진 PD는 이렇게 회상했다.

"박진영은 톰 크루즈에게 '나는 대한민국의 연예인,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했어요. 그리곤 '당신 와이프도 연예인 아니냐? 내 개인적으로도 니콜 키드먼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문을 열었는데 이 말에 톰 크루즈가 너무 좋아하며 마음을 열고 많은 얘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결국 대본에 없는 얘기까지도 다채롭게 인터뷰해 전혀 예기치 않던 특종을 만들게 된 겁니다."

박진영의 순발력, 재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일화다.

박진영은 또한 자신의 무대만큼은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다. 2000년대 초반 김종진 PD가 무대를 총괄할 당시에도 제작비가 많이 들어 시도하기 힘든 무대를 그 자신이 자비로 부담하겠다며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과 아이템을 구현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무대가 얼마나 탁월하게 잘 만들었나 하면, 당일 리허설을 하는 와중에 HOT를 비롯한 다른 아티스트들마저 "우리도 저렇게 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기존의 엔터테인먼트사는 A&R, 홍보팀, 마케팅팀 등으로 구분하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박진영은 트와이스팀, 2PM팀 등 각 아티스트를 팀별로 분화시키는 업무방식을 국내 최초로 JYP에 적용했다. 각 팀내 A&R 및 관련 팀을 하나로 묶어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진영의 JYP는 국내 최초로 가장 선진화된 엔터시스템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한국 엔터사에서 JYP가 시도한 남다른 점에 대해선 추후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을 통해 더욱 자세히 특집으로 다룰 예정이다.

곡을 쓰는 현역 엔터 CEO는 있지만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까지 하는 메이저권의 현역 엔터 CEO는 박진영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한 TV 예능에 출연해 JYP 연습생 식당의 식단을 공개하며 "저 연습생들의 부모님께 죄송할 일을 하면 안 된다"란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박진영은 데뷔 때부터 현재까지 프론티어 정신을 잊지 않고 실천하고 있음에도 '책임'이라는 게 뭔지 아는, 여전히 멋지게 나이를 먹고 있는, 흔치 않은 '어른' 엔터테이너음악가인 것이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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