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성관계' 군대선 '성추행'…이젠 아니다[세상을 바꾼 법정]㉗

구진욱 기자 2023. 10.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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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법원 1·2심 유죄→대법 "추행 아니다"…14년 만에 바뀐 판결
'군 형법 92조 6항' 헌재 3차례 '합헌' 결정에도 위헌 논란 여전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2022.4.2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구진욱 기자 =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이 있다. 대법원도 '동성애의 부도덕함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은 결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꾸준히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같은 발언이 지속되는 이유는 바로 '군형법 92조의6항 추행죄'에 대한 2008년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대법원은 병사의 성기를 때리고 양 젖꼭지를 비튼 혐의로 군형법 추행죄로 기소된 중대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뤄진 행위이므로 비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군형법상 추행죄는 그동안 비정상적인 행위로서 '동성애 성행위'를 명시하며,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등 도덕 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만을 한정해 판단해왔다.

군대 내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을 재생산해 온 해당 판례는 1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뒤바뀌게 됐다.

지난해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군형법 추행죄로 기소된 두 군인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며 "동성 간의 성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추행'이 된다고 본 종래의 해석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다"고 판시했다.

새로운 판례가 14년만에 나왔지만 여전히 위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오랜 기간 군 형법 92조 6항에 대해 3차례에 걸쳐 합헌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이날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뤄진 동성군인 간 성관계는 군형법 제92조의6에서 정한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 조항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022.4.2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군사법원 1·2심 "동성 군인 간 성행위도 추행이다" 유죄 판단

사건의 발단은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이 2017년 성소수자 군인들에 대한 정보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수사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과거 행위들이 수사 대상이 돼 A중위와 B상사를 포함한 군인 10여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A중위와 B상사는 2016년 근무 시간이 아닌 때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서로 합의하고 성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앞선 2008년 사례와는 달리 성 소수자인 두 군인 사이에서 일어난 추행인 점에서는 궤가 달랐다.

육군에선 이들이 '군인 등에 대해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 형법 92조의 6항(추행)을 위반했다고 봤다.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동성 군인 간 성행위를 추행으로 판단하고 처벌할 수 있느냐였다.

처벌 근거인 군 형법 92조는 1962년 군 형법 제정과 함께 만들어졌다. 미국 전시법에 나오는 '소도미(sodomi : 수간을 포함한 비자연적인 성행위)'를 처벌한 국방경비법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보통군사법원이 진행한 1심은 군 형법대로 A중위와 B상사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성행위 증거가 있고 현행 군 형법이 '영외에서 자발적으로 합의해 이뤄진 행위'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자백을 보강할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점을 반영해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A중위에게는 징역 4개월에 집행 유예 1년을 선고했다. B상사는 징역 3개월의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 2심도 해당 판결을 유지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민원실 건너편에서 성소수자 차별 조장하는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14일 국방부의 동성 간 성행위를 징계 사유로 규정하는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과 관련해 성폭력 관련 징계 조항이 별도로 있음에도 (사적 공간에서의 자발적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행위를 징계 사유로 규정하는 것은 명백한 성소수자 차별이자 시대 역행이라고 주장하며, 군인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2023.2.7/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대법"동성 군인간, 사적 공간 성관계 처벌 할 수 없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전원합의체에서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 등 11명이 무죄 의견(동의 3명 포함)을 내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당시,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해 4월 21일 군형법상 추행 혐의를 받은 A중위와 B상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동성 군인 사이의 항문 성교나 이와 유사한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뤄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현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반대도 있었다. 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이 규정은 강제성, 시간과 장소 등에 대한 제한 없이 남성 군인 사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라고 봐야 한다"며 "다수의견 해석은 문언 가능한 범위를 넘어 법원에 주어진 법률해석 권한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바른군인권연구소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군형법 제92조 제6항 합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군형법 제92조 제6항에 따르면 군인 또는 준군인은 동성 간 성행위가 금지된다. 위반시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동성애 단체의 요구로 군형법 92조 6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진행 중이다. 2016.7.13/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헌법재판소 3차례 '합헌' 결정…대법 판단에도 불구 여전한 '위헌'논란

뒤바뀐 대법원 판례가 14년만에 나왔지만 여전히 위헌 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판결의 쟁점이 된 사건이 '병영 밖'에서 일어난 것이기에 사적 영역으로 한정한 대법원 판결이 법률 전체의 위헌성까지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오랜기간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형법 92조 6항을 2002년, 2011년, 2016년에 3차례 합헌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당시 합헌 의견을 냈던 재판관들은 "해당 조항은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위한 것으로 동성 간에 폐쇄적으로 단체 생활을 하는 군의 특성 등을 고려할 때 '그 밖의 추행'은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행위에만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평등 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서도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 행위로 군기를 침해하는 것만을 처벌하는 것은 군의 특수성과 전투력 보존을 위한 제한으로 합리적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앞두고 배석해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뤄진 동성군인 간 성관계는 군형법 제92조의6에서 정한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 조항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남성군인 A씨와 B씨는 근무시간 외에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서로 합의 하에 성행위 등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22.4.2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1년6개월 지난 지금도 바뀐 것 없어 法 존치…해외 처벌 조항 無

대법원 판단이 나온지 1년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군형법 92조6항은 그대로다. 현재도 성 소수자 군인이 기소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 지금도 바뀐 건 크게 없다"며 "헌법재판소에서도 몇 년째 심사 중이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위헌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 국내에 반해 동성애 군인을 처벌하는 조항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선진국들은 성소수자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박 변호사는 "동성애를 죄악시 여기는 이슬람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서유럽이나 아시아에서도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하는 나라가 없다"며 "근처 일본과 대만, 중국만 하더라도 동성애자라고 특별히 처벌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kjwowe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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