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로 17년 망명 버틴 위고, 글 속에 ‘사랑의 와인’ 흘러
와글와글, 와인과 글
괴테가 “나쁜 와인을 마시면서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고 예찬했다면, 위고는 “신은 물을 창조했을 뿐이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는 명언을 남겼다.
괴테가 20대 중반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쓰고 주인공이 마시다 남긴 포도주를 통해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슬픔을 전한 것처럼, 위고도 1831년 29살에 첫 출세작 ‘파리의 노트르담(Notre Dame de Paris)’을 발표한다. 위고는 이 소설에서 포도주를 통해 종지기 콰지모도의 애절한 감정을 전하고 있는데, 노트르담 성당 대피소에서 에스메랄다에게 빵과 함께 포도주를 건네는 장면이 그것이다. 욕망으로서의 와인, 결핍으로서의 와인이 아닌, 순수한 사랑으로서의 와인이었다. 중세유럽 교회에서 포도주는 생명수를 의미하니까.
위고가 태어난 곳은 브장송. 로마네 콩티 같은 최고급 와인이 생산되는 부르고뉴 지역과 가깝다. 포도주가 풍요로운 지역 출신답게 위고의 인생에는 언제나 포도주가 흘렀고, 그의 소설 속에서도 포도주가 자주 흐른다.
이 작품은 15세기 센강이 흐르는 파리 시테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배경이다. 성당 어두컴컴한 구석 벽에 새겨진 그리스어 대문자 ‘아난케(ΑΝΑΓΚΗ)’를 발견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숙명’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 신화 속 여신과 단어의 신비함,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몰입하게 만드는, 유혹하는 글쓰기의 달인이다. 저주받은 사나이의 사랑, 엇갈린 출생의 비밀은 흥미를 유인하는 요인이다.
미국에서 출간될 때 ‘노트르담의 곱추’라 번역되었던 제목 때문에 이 소설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에 대한 곱사등이 종지기 콰지모도의 애절한 사랑, 그녀의 미모에 눈이 먼 가톨릭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의 탈선 이야기 정도로 알려져 있다. 육감적인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앤서니 퀸이 열연한 영화 ‘노틀담의 꼽추’(1957)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이는 11장으로 이뤄진 대서사시의 여러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15세기까지 파리는 가톨릭 주교가 관할하는 시테섬, 대학 총장이 책임지는 센강 좌측 대학 구역, 정부행정기관이 담당한 강 우측 행정구역 등으로 나뉘었음을 알 수 있다. 시테섬과 노트르담 대성당 담장을 경계로 파리 시민의 삶이 나뉜 것이다. 성스러움과 속세, 아름다움과 추함, 전통과 변화라는 이분법 구도를 절묘하게 활용한 작품이다.
2019년 4월 15일 화재가 일어나기 전, 노트르담은 인기 관광지였다. 입구에선 원색 옷과 특이한 용모의 여인들이 관광객들에게 구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집시족이다. 유럽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질 집단이지만 작가는 집시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바꿔놓았다. 교수형 집행 직전 콰지모도가 종탑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에스메랄다를 구출한 뒤 성당 안으로 도망쳐 와인을 건넨다는 설정은 독자를 흥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영화와 뮤지컬, 오페라로 수없이 리메이크된 장면이다. 작품 막판에서 에스메랄다가 좋아했던 남자 이야기를 전하면서 냉소적 유머를 던지는 것도 흥미 포인트다. “페뷔스 드 샤토페르 역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결혼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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