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연봉 150만원'의 돌풍 박다솜

정완주 기자 2023. 10. 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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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섭렵하며 늦깎이 출발
히다, 김세연 꺾고 생애 첫 4강…“올 시즌 포기할 뻔”
프로당구 선수 박다솜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청년을 일컫는 'N포세대'는 보통명사가 됐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연애, 취업, 결혼, 주택 구입 등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를 의미한다. LPBA 박다솜(33) 선수도 전형적인 N포세대 일원이었다. 생계를 위해 온갖 일용직을 마다하지 않았다. 27살에 처음 큐를 잡은 늦깎이 신인이지만 연습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당연히 성적도 바닥권을 맴돌았다. 생계를 위한 일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심신이 지쳐갔다. 결국 올해 시즌 등록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도전했다. 그리고 챔피언 출신인 히다 오리에(SK렌터카)와 김세연(휴온스) 선수를 연파하면서 생애 첫 4강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TM 그만두고 당구장 알바
선수와 일 병행하다 심신 지쳐

박다솜의 원래 꿈은 인테리어 전문가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성격은 남성처럼 털털한 편이다. 덜렁대는 면도 있다고 한다.

첫 직업은 충북 청주시에서 SKT의 텔레마케터(TM)로 시작했다. 전형적인 '감성 노동'이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기 어려운 직업인 탓이라 결국 그만두고 무작정 인천시로 올라왔다. 청주시 자체가 지역이 좁아서 일자리를 다시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직장을 찾던 중 우연히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당구와 인연을 맺을 때가 27살 무렵이었다.

"당구장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재미 삼아 당구를 치기 시작했어요.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는데 당구장 사장님이 눈여겨보다가 재능이 있다면서 당구를 배워보라고 권유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진지하게 큐를 잡았죠."

사장의 지도로 열심히 실력을 다듬던 중에 프로당구 PBA 출범 소식을 들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선수층이 얇아 동호인 선발전이 치러졌다. 3쿠션 입문이 늦어 당시 수지가 16점에 불과했지만 운 좋게도 선발전을 통과했다.

"막상 선수 등록을 하려다 보니 망설여지는 거예요. 제 실력이 선수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었고 사장님도 아직 선수로 나갈 시기가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등록을 안 했죠."

그러던 차에 얼마 후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개막식을 2~3일 앞두고 와일드카드 선수로 지명됐다는 것이다.

프로당구 선수 박다솜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사실 내키지는 않아서 고민을 좀 하다가 등록을 마쳤습니다. 당초 선수 등록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던 시기여서 연습도 거의 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경험 삼아 참가해보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 출전했지만 예선 초반부터 탈락이었죠."

박다솜은 선수 생활에 전념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생계 문제가 걸렸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집에다 손을 벌리기가 어려웠다. 이런저런 자리를 찾던 중 병원 내 약국 보조원으로 들어갔다.

"약국 보조원으로 야간에만 근무했어요. 그래서 한 달에 보름 정도만 일하고 남는 낮시간을 활용해 시합 스케줄을 얼추 맞출 수가 있었죠. 아무리 혼자 산다지만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상황이라 일을 쉴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연습 시간도 충분하게 가질 수가 없었죠. 일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니까 더는 버티기가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종일 당구를 치고 싶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심신도 지쳐갔다. 양단간 결정이 필요했고 결국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지난 시즌 중 벌어진 일이다. 퇴직금과 실업급여로 생활하면서 선수 생활을 연장했다.

생활고에 대한 압박감은 더욱 커졌다. 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은 탓이다. 일을 그만두고 약 6개월 동안 마음의 상처는 깊어졌다.

"당구 스승님이었던 사장님이 다시 당구장을 오픈해 그곳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했어요. 신설 당구장이다 보니 여러 가지로 힘이 들었나 봐요. 결국 지난 시즌 마지막 무렵에 일을 쉬기로 했죠."

올 시즌 포기하려다 재도전
연인 이상대 선수가 버팀목

박다솜은 이번 시즌 선수 등록도 포기할 생각이었다. 연습량도 부족했고 생계라는 현실의 한계 때문에 많이 지친 여파였다. 지난 시즌 상금으로 번 돈은 달랑 155만원이었다. '연봉 150만원' 선수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주변에 늘어놓으면서 자신감도 추락했다.

그때 그를 잡아준 이가 이상대(웰컴저축은행) 선수였다. 박다솜과 이상대는 올해 초부터 좋은 만남을 이어온 사이다.

"상대 오빠가 포기하지 말고 다시 도전하자면서 동호인과 게임을 치는 당구장 매니저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어요. 사실 게임 매니저 일은 처음이어서 불안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실전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거든요."

프로당구 선수 박다솜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박다솜과 이상대의 인연은 당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맺어졌다. 어느 날 이상대와 친한 김임권 선수가 박다솜이 일하던 당구장을 찾았다. 그리고 이상대와 연락해 그 당구장으로 오라고 한 것이다.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상대 오빠가 임권 오빠한테 저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고 하더라고요. 임권 오빠가 소개도 할 겸 식사를 같이하면 어떻겠냐고 묻길래 소개팅 형식이면 좀 부담스럽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자주 하다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기 시작했죠."

김임권의 소개로 박다솜은 PBA 노병찬 선수가 운영하는 킹 빌리어드 브레통에서 게임 매니저 일을 보고 있다.

"막상 새 시즌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두려운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보장된 것은 없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한 용기를 내자고 마음을 다잡았죠. 동호인 분들과 게임을 하면서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패색이 짙더라도 끝까지 추격하는 뒷심을 키웠고 다양한 경우의 실전을 준비하는 데도 큰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고 시작한 새 시즌은 박다솜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 2022~2023시즌 8차대회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에서 기록한 16강이 그의 최고 성적이었다. 박다솜은 16강에 올라가 데뷔 4년여 만에 처음으로 공식 세트제 경기를 경험했다. 이전에는 서바이벌 예선만 치르다가 탈락하기 일쑤였다.

그는 올 시즌이 시작하면서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성적에 연연하기보다 연습하던 대로 내 공만 치자는 일념으로 경기에 임했다. 올 시즌 4차대회인 '에스와이 LPBA 챔피언십'에서 박다솜의 파죽지세 행진이 이어졌다.

"마음을 비웠지만 첫 경기부터 잘 풀리지는 않았어요. 샷을 할 때 평소와 다른 거북한 느낌의 팔 감각 때문에 애를 먹었거든요. 겨우 승리를 잡아냈지만 바로 근처 당구장으로 가서 한 시간 정도 몸을 풀고서야 겨우 감각을 되찾았을 수 있었죠."

올리비아 리와 장혜리를 연파한 박다솜은 32강 전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로 레전드 반열에 오른 일본의 히다를 만나 첫 고비를 맞았다.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2대 1로 승리한 그는 16강전에서 LBBA 최강자 중 한 명인 김세연마저 2대 1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두 선수 모두 LPBA 개인리그 우승을 이룬 강자였지만 박다솜의 기세에 무너졌다.

"두 선수와 시합에서 1세트를 이기고 2세트에서 0점패를 당했어요. 처음에는 좀 당황했지만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면서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음 세트에서 잘 쳐서 이기면 그만이라는 각오를 다지니까 금방 잊어먹고 3세트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프로당구 선수 박다솜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8강에서 최연주를 물리친 그는 대망의 4강전에 올라섰다. 맞상대는 일본의 사카이 아야코(하나카드) 선수. 사카이도 4강 진출이 처음이었다. 결과는 박다솜의 3대 1 패배. 큰 성과이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4강전이었다.

"부모님도 응원하러 오셨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요. 실력으로 진 건 분명하지만 좀 더 연습을 많이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 때문인지도 모르죠. 막상 4강전만 이기면 결승에 올라간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담이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4~5세트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체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월드챔피언십 목표로 구슬땀
"김가영 선수와 붙고 싶어요"

미완의 대기인 박다솜은 롤모델로 이상대를 꼽았다. 연인이어서가 아니라 당구 선수로서 배울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구를 대하는 자세와 태도, 실력, 성실성 등 모든 점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상대 오빠 덕분에 임권 오빠는 물론이고 다른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일정이 바빠서 상대 오빠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보지만 그때마다 알려주는 레슨은 귀에 쏙쏙 들어오기 마련이죠."

박다솜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본기를 다지는 데 전념하고 있다. 스트로크, 발 간격, 허리를 낮추는 자세 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집중력이 저하되거나 불편한 배치를 받으면 어느 순간 자세가 흐트러지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파워를 싣는 공격에서 정확성이 떨어지는 점도 채우는 중이다.

"장시간 집중력을 높이려면 결국 체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헬스와 함께 다이어트로 시작했던 복싱도 다시 시도할까 싶어요. 체력을 보강해서 시드를 받아 월드챔피언십 진출을 이루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그는 LPBA 여제로 군림하는 김가영 선수와의 대결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기량의 선수이고 경기에 임하는 집중력 등에서 본받을 점이 많은 선수라고 봐요. 아직 한 번도 시합을 치르지 못해서 아쉬운데 제가 성적을 내면 올해 중이라도 맞대결을 하는 영광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프로당구 선수 박다솜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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