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주의와 급진주의 그 사이 어딘가에서[이주영의 연뮤 덕질기](12)

2023. 10. 1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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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뉴프로덕션 제공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타임’은 ‘낙관주의의 예술(The Art of Optimism)’을 표지로 뽑았다. 영화 <셰이프 오프 워터: 사랑의 모양>(2017)으로 유수의 영화제를 휩쓴 기예르모 델 토르 감독은 이 특집을 통해 “낙관주의는 급진적이다(Optimism is radical). 어렵고 용감한 선택이며 절망에 직면한 지금 가장 필요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연이은 팬데믹과 지구 각지의 전쟁을 예견한 듯 지속되는 절망 속에서도 담대하게 희망을 찾는 것이 진정한 낙관주의라고 해석했다.

시각장애학교 학생들의 갈등을 다룬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에서 두드러지는 ‘낙관주의’는 조금 결이 다르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앞이 보이는 것처럼 자유롭다. 지팡이 없이도 거침없이 계단과 문턱을 넘나들고 각종 스포츠도 자유롭게 즐긴다. 학교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무엇이든 일반인처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그들만의 낙원이다. 전학생 이그나시오가 “우리는 모두 불쌍한 시각장애인”이라며 ‘슬픈 (비장애인) 흉내 내기’를 거부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가 ‘희망에 반하는 희망(hope against hope)’을 선택하자 그들만의 완벽한 공간은 빠르게 무너져 내린다. 이그나시오가 경계하는 ‘바보 같은 낙관주의’는 현실을 가리고 작위적인 시스템에 가두는, 분별력 상실이다. 낙관주의(optimism)의 어근인 옵트(opt)와 옵티마(optima)는 각기 보다(視力)와 최선(best)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이를 직시해야 그다음이 가능하므로 급진적이고 담대하게 절망을 온전히 겪어내는 용감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스페인 극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가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완성한 초기작으로 1950년에 초연됐다. 국내외에서 꾸준히 연극은 상연돼왔으나 뮤지컬은 한국이 처음이다. 9명 배우의 시각장애인 연기는 작품에서 유일하게 앞을 보는 지배자적 위치의 교장이 오히려 진정한 시각장애인임을 드러낸다. 성종완 연출·각색 작품으로 ‘앞을 보는 것’이 대표적 넘버다.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하에서 무의식 조작 실험을 위해 인면수심의 고통을 겪고 기억을 삭제당한 아이들의 자아찾기를 그렸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해도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모두 필요하다. 성인이 돼서 다시 모인 아이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기꺼이 불행과 동행하겠다”고 선언하며 삭제된 고통을 되돌린다.

동화 <메리 포핀스>에서 착안한 서윤미 극작 및 작곡, 연출인 창작뮤지컬로 올해가 일곱 번째 시즌이다. 오프닝의 영화 같은 그림자극이 상징적인데,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와 상반되는 이야기임을 상기시킨다. 매 시즌 4명의 아이가 각자의 시선을 통해 재해석한 버전으로 변화를 준다. 올해 부제는 ‘안나의 방’이다. 기억을 온전히 찾은 안나의 내레이션을 통해 작품의 전체 맥락을 되짚는 완결 버전이다.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11월 26일, <블랙 메리 포핀스>는 12월 3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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