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설] 골프 대회에 웬 ‘복면’인가? '자외선 차단'이라지만 볼썽사납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2023. 10.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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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동안 골프 선수들이 마스크를 쓴 채 시합을 했다. 언제부턴가 캐디들은 마스크 대신 검은 또는 흰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복면은 방역 수칙에 맞는 마스크 대용품도 아니었다. 방송 중계와 경기 진행 요원들까지 복면을 썼다. 마스크 의무 착용이 끝났으나 숫자는 크게 줄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이 끝난 지금도 적지 않다.

뜨거운 햇볕의 중동은 물론 미국, 일본, 영국, 태국, 중국의 어떤 대회 중계방송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골프 대회에서나 있을 것 같다. 골프에는 까다로운 복장 규정이 있지 않은가? 골프협회나 방송사가 막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 골프 옷차림은 자유가 아니다

캐디 등이 복면을 쓰는 것이 왜 문제인가?

골프는 선수들이 일상의 자유 복장으로 경기에 나서는 유일한 스포츠. 운동선수들의 상징인 유니폼이 없다. 개인 경기든 단체 경기든 유니폼은 그 자체만으로 스포츠의 매력이다. 색상이나 디자인이 큰 화제가 된다. 유명 선수나 팀의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린다. 유니폼은 관심을 모으고 관중들을 끌어 들이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러나 골프는 선수들 저마다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차림으로 멋을 부리며 경쟁을 하는 독특한 스포츠. 그 자유에는 엄격한 제약이 따른다. 한국이든 어느 나라든 골프협회는 ‘복장 규정’을 두어 까다롭게 관리한다. 규정은 선수들뿐 아니라 캐디에게도 적용한다. 관중들에게까지 옷차림의 상식을 원한다.

선수들은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 관중들은 “점잖으면서도 분별 있는” 옷차림을 해야 한다. 누구도 청바지를 입고 골프 코스에 들어갈 수 없다.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대회의 상당수는 관중들의 청바지 차림 관람은 허용한다. 하지만 “청바지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고 주의를 준다. 웬만하면 입고 오지 말라는 뜻이다. 관중들에게 티셔츠조차도 삼가서 입도록 권고할 정도다. 골프의 성지라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류스는 방문객들에게도 꾀죄죄하거나 찢어진 옷을 입지 말라고 한다.

■ 캐디복장도 까다롭게 통제한다

골프는 도우미와 함께 경기를 하는 유일한 운동이다. 어떤 종목도 선수 이외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들어가거나, 경기 중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다. 하지만 골프는 골프채와 공 등 선수들이 무거운 장비를 직접 짊어져야 하는 부담을 없애기 위해 ‘캐디’란 이름의 도우미를 두기 시작했다. 이제는 짐을 대신 지는 단순함을 벗어나 캐디는 선수들에게 경기 중 조언도 한다. 전문인이다.

다른 스포츠와는 너무 다른 특수성이다. 그런 만큼 골프협회는 캐디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규제한다. 캐디들이 경기를 지배하지 않도록 한다. 경기 흐름이나 분위기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한다.

캐디들의 복장과 관련, 미국의 프로골프 전문가는 “캐디는 골퍼처럼 보여야 한다. 다만 선수보다 더 잘 차려입지 않아야 한다”고 캐디가 지켜야 할 선을 그었다. 선수들보다 더 세심하게 캐디의 옷차림이 통제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스터스 대회의 캐디 복장. 점프수트 착용이 규정이다./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의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에서 캐디들은 모두 아래위가 통으로 된 흰 ‘낙하산 복(점프 수트)’을 입어야 한다. 그 전통은 1933년부터 시작되었다. 골프장 회원들은 인근 가난한 사람들인 캐디들이 더 말쑥해 보이도록 그런 옷을 입도록 했다. 1983년부터 오거스타는 모든 선수들이 자신의 캐디를 동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캐디들의 옷차림 전통은 바꾸지 않았다. 한국에도 캐디들이 흰색 낙하산복을 입도록 하는 대회가 있다. 미국과 한국 모두 캐디들의 복장 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 복면은 분별 있는 차림이 아니다

복면은 옷이 아닌데 무슨 문제냐? 마스크와 무엇이 다르냐고 할지 모른다. 복면은 “청바지”나 “꾀죄죄하고 찢어진 옷”보다 훨씬 더 불쾌함을 일으킬 수 있다. 혐오감을 줄 수도 있다. 복면은 그만큼 나쁜 이미지가 강하다. 누구도 일상생활에서 함부로 복면을 쓰지 않는다. 복면은 마스크가 아니다. 가면과도 다르다.

다음은 국어사전의 설명이다. ‘가면’은 얼굴을 묘사하여 만든 것. 특정 표정과 인상이 나타난다. 축제나 무도회에서 사용한다.

‘복면’은 얼굴을 가리는 데 사용되는 물건일 뿐이다. ‘복면강도’나 ‘복면자객’ 등 법이 금지하는 일을 할 때 사용된다.

도둑이나 강도짓을 하는 사람들은 복면을 많이 쓴다. 납치범들은 인질들에게 복면을 씌워 고문이나 처형하는 모습을 공개한다. 영화·드라마에서 복면강도나 복면 쓴 인질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벌어지면서 자동소총을 맨 검은 복면의 하마스 전사들이 무더기로 언론에 나온다. 섬뜩한 모습이다.

코로나 사태 때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강제로 마스크를 착용케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스크 사용을 피했다. 마스크 거부감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 서양인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을 범죄자나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복면을 쓰고 나타나면 흉악범으로 여길 것이다.

LPGA 캐디./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 복면을 왜 그대로 두는가? 한국 문화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선수는 안 그러는데 왜 캐디나 진행요원들은 복면을 고집할까? 햇빛을 막기 위해?(실제로 자외선 차단으로 많이 쓴다)얼굴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어떻든 복면은 “점잖으면서도 분별 있는” 옷차림을 요구하는 골프의 복장 예의나 규정에 전혀 맞지 않는다. 사전과 현실 속 모두에서 나쁜 인상이 가득한 복면이 신사의 스포츠라는 골프에서 오래 동안 허용되고 있음을 납득하기 어렵다.

골프협회나 방송사의 무신경, 무관심이 놀랍다. 그들은 관중·시청자들의 기분·감정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골프의 인기 유지에는 문제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자만이다. 여자골프의 인기나 관심은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세계를 주름잡던 여자골프가 미국과 일본에서 고전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별 생각 없는 협회나 방송사가 인기 추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KLPGA 캐디 관리규정은 캐디들에게 “짧은 반바지, 찢어진 청바지 등과 같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복장은 허용하지 않는다.” 위반 시 벌금까지 물린다. 이런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복면은 당장 사라질 것이다.

◆손태규 교수는 현재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스포츠, 특히 미국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매주 마이데일리를 통해 해박한 지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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