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 복지 끝장 내겠다” 아르헨 대선 유력 후보 ‘전동톱 사나이’

부에노스아이레스/서유근 특파원 2023. 10. 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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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근의 지구 반대편] 정부보조금 삭감 강조하며 톱 들고 유세
지난 12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살타주에서 하비에르 밀레이가 카퍼레이드 중 전기톱을 꺼내들며 지지자들에게 보조금 축소 공약을 약속하고 있다. /하비에르 밀레이 선거캠프

헝클어진 긴 곱슬머리에 검은 가죽 재킷 차림의 남성이 전동 톱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힘차게 흔들자, 군중 수백 명이 환호하며 그의 이름을 외친다. 마치 콘서트장에 선 록스타 같은 퍼포먼스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의 유력 대통령 후보인 하비에르 밀레이 하원 의원. 야권 후보인 그는 오는 22일(현지 시각) 대통령 선거 본선 투표를 앞두고 카퍼레이드 형식으로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이처럼 막바지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전동 톱이다. 카퍼레이드 때마다 전동 톱을 들어 올리며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주요 공약인 ‘정부 보조금 대폭 삭감’을 강조한다. 아르헨티나를 경제 위기에 빠뜨린 수십 년간의 ‘퍼주기 복지’를 전동 톱으로 단번에 잘라내 만성 재정 적자를 해소하겠단 의미다. 밀레이가 ‘전동 톱의 사나이’ 이미지를 각인하자 지지자 일부는 전동 톱을 들고 그를 따라다닌다. 일종의 ‘전동 톱 부대’다.

과격하면서도 선명한 주장으로 ‘아르헨티나 트럼프’ 이미지를 구축한 밀레이는 지난 8월 대통령 예비선거 1위에 오른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다만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특이한 성적(性的) 취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자국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유혈 독재 공산주의자들과 친한, 더러운 좌파”라고 평가하는 등 각종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밀레이의 상승세에 위기를 느낀 집권 페로니스트(대중영합주의자) 정부는 밀레이의 공약을 역으로 이용하는 다소 변칙적인 전략으로 유권자들을 공략하고 나섰다. 밀레이가 정부의 ‘퍼주기’를 근절해 국가 체질을 개선한다고 하지만 “그런 세상이 정말 오면 여러분의 삶은 더 팍팍해질 것”이라고 알리고 있다.

지난 16일 내놓은 새 교통 카드 정책이 대표적이다. 막대한 보조금 때문에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의 버스·지하철 탑승료는 60~80페소(약 100원)로 매우 싸다. 그런데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보조금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교통 카드를 원하면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며 “탑승료를 700~1100페소 내면 된다”고 발표했다.

요금을 10배 넘게 내고 이 카드를 쓰겠다는 사람은 당연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런 괴상한 정책을 내놓은 것은 유권자들에게 ‘밀레이가 당선돼 정부 보조금이 사라지면 내 돈이 이렇게 더 들겠구나’라고 인식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나라 ‘곳간’보다는 개인의 ‘지갑’이 중요하지 않으냐는 페로니스트들의 달콤한 유혹에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이 또 넘어갈지는 22일 투표함이 열리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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