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이상만 고용' 20년···구인난·지역소멸·노인빈곤 세 토끼 잡은 日

나카쓰가와·요코하마=임진혁 기자 2023. 10. 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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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소사이어티 일본을 가다]
■'계속 고용' 당연한 일본 기업 가보니
가토제작소, 고령자 친화 환경개선
조명 밝히고 낙상 예방 화장실 청소
유연근무 보장, 안전운전 교육까지
실수 줄이려 단순 단일 작업만 부여
"젊은 외국인 근로자보다 시니어"
양판점 노지마, 채용조건 나이 삭제
혼다는 정년 연장으로 생산성 개선
일본 기후현 나카쓰가와시에 위치한 가토제작소의 커다란 입간판에 ‘1888년 개업’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나카쓰가와=임진혁기자
[서울경제]

※편집자 주 - 일본이 고령화사회(65세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7% 이상)로부터 초고령사회(20% 이상)에 접어들기까지 35년이 걸린 반면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2025년까지 불과 25년 걸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저출산과 결합된 빠른 고령화, 이에 따른 저성장 우려 등 두 나라의 고령화 양상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일찌감치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고령층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함으로써 관련 산업과 시장까지 육성해왔습니다. 게다가 고령자들의 다양한 수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제품과 서비스도 풍성합니다. 라이프점프는 이같은 일본의 성공 사례와 시행착오를 현지 취재, <에이징 소사이어티 일본을 가다> 시리즈를 통해 소개합니다.

일본 기후현 나카쓰가와시 나들목을 빠져나와 왕복 2차선 시골길을 5분가량 달리니 번화가 초입 사거리에 ‘가토제작소’라고 적힌 3층 높이의 파란색 입간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옆면에 적힌 ‘SINCE 1888’ 문구에서는 대장간으로 시작해 135년을 이어온 자부심이 느껴졌다.

가토제작소는 20년 전 내건 구인광고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로 일본은 물론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령화에 인력 유출이 심한 지방 중소도시에 자리한 탓에 가토제작소는 일손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고령자 채용이라는 전례 없는 실험은 사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고령자 채용은 숱한 과제를 낳았다. 눈이 침침한 고령자들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더 밝은 조명을 갖춰야 했고, 낙상사고 예방을 위해 계단을 경사로로 바꾸는 공사가 뒤따랐다. 화장실 바닥 물기 제거도 중요한 점검 항목이었다. 운전해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에게는 안전 교육을 제공하고, 작업대의 높이를 조절해 허리가 좋지 않은 고령자 직원의 어려움을 최소화했다. 60~70대가 80~90대 부모를 돌보는 게 일반적인 일본사회 특성을 고려해 근로자들의 유연 근무도 적극적으로 보장했다. 고령자 직원만을 위한 별도 직무는 없었지만 되도록 단순·단일한 작업을 부여했다. 책임자는 정년 이전의 젊은 직원들이 맡고, 고령자는 지시를 따르도록 했다. 가토 게이지 가토제작소 대표는 “환경 개선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지만 고령자에 좋은 환경은 일반 직원에게도 안전하고 편리한 만큼 투자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파트타임이고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맡기는 고령근로자 특성상 일반 직원보다 적은 인건비를 들였지만 결과물(생산성)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회사 입장에서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던 것.

가토 게이지 가토제작소 대표가 고령자 고용 정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나카쓰가와=임진혁기자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토제작소의 구인난은 여전하다. 지방 중소도시에 있다 보니 젊은 직원들이 통 오지 않아서다. 최근 필리핀 등에서 넘어온 외국인 직원들도 여럿 채용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고령자 직원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 외국인 근로자는 젊지만 언어의 장벽을 무시하기 어렵고 비용 면에서도 거주비와 소개료 등을 고려할 때 뚜렷하게 낫다고 보기 어려워서다. 가토 대표는 “(고령 근로자의 업무가 단순해)실수도 젊은 직원들이 더 많다”며 “고령 근로자는 회사로서도 최적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가토제작소의 고령자 고용 정책이 자리 잡기까지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고 적지 않은 적응 기간이 소요됐다. 무작정 고령근로자를 뽑는다고 가토제작소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코자카이 타케오 공장장은 “시니어 근로자와 함께 하려면 환경 개선부터 젊은 직원과 세대 차이 극복까지 신경쓸 일이 많다”며 “우리 회사는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전했다.

요코하마에 본사를 둔 가전제품 판매사 ‘노지마’에서도 노익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회사 8700여명 전직원의 평균 연령은 약 30세로 젊은 조직이지만, 65세 이상 직원이 70명을 넘고 이 가운데 3명은 팔순이 지났다. 후카와 아츠코 노지마 홍보담당자는 “시니어 직원들은 모두 매장에 배치돼 (다른 직원처럼)똑같은 월급을 받고 일한다”며 “제품 지식도 풍부하고 고령자 고객들이 더 편하게 생각해 단골도 많다”고 설명했다.

노지마 매장의 직원이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노지마

노지마가 고령 근로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가토제작소와 다르지 않다. 취재진이 시니어 근로자를 채용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채용 과정에서 연령을 보지 않는 것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사람이 실제로 가진 능력을 나이라는 ‘숫자’로 규정할 수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명제가 일본에서는 확실히 자리 잡는 듯 했다.

물론 일본 기업들이 이들 두 회사처럼 모범적으로 시니어 고용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고용노력 확보 조치에 고용 연령 자체는 65세로 늘었지만 기업에 따라 저성과자를 계속 고용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직무가 명확하지 않고, 회사에 꼭 필요하지 않는 경우라도 문제다.

일본의 인사(HR) 기업 ‘퍼솔’의 자회사 퍼솔 캐리어컨설팅은 주요 기업들의 위탁을 받아 퇴직한 근로자의 재취업을 지원한다. 다양한 직무교육과 더불어 커리어디자인도 한다. 기존 직장에서 일을 연장하는 것과 달리 재취업은 일본 역시 과제다. 퍼솔의 한 관계자는 “근로자들의 희망이 꼭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회적 의미가 더 큰 비영리기구나 재단 같은 곳으로도 고령 근로자가 많이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근로자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어린 상사와 일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20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일본은 고령 근로자 채용을 위한 체력을 다져왔고 그 성과는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혼다다. 혼다는 처음에는 65세까지 근로자를 연장해서 고용하는 데만 주력했다. 그 결과는 기업은 비용만 지출하고 근로자들 역시 기업이 제시한 직무나 태도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시간 때우기 식 근로로 끝마쳤다. 혼다는 2017년 정년 자체를 65세로 연장하기로 했다. 돈을 더 주고 그만큼 더 많은 생산성을 가져오겠다는 취지다. 김명중 닛세이 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 내 단순 고용 확대 기업 비율이 80%에서 70%대로 낮아졌다”며 “고령자고용확보 조치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나카쓰가와·요코하마=임진혁 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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