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대가로 수렁에 빠진 공공병원, 그리고 외면하는 정부

인천·포천/김연희 기자 2023. 10. 1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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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 기간에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복무했던 지방의료원들이 심각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6개월 회복기 손실보상금 외에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없다.
인천의료원 인공신장실. 신장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시사IN 조남진

인천의료원은 코로나19 ‘1번 환자’를 치료한 곳이다. 2020년 1월20일 중국에서 입국한 35세 여성이었다. 보름 가까이 입원했던 이 환자는 완치돼 병원을 떠나면서 의료진에게 손편지 하나를 남겼다. 그는 “당신들은 나에게 영웅이고 절대 잊지 않겠다”라며 “우리가 이 질병을 극복하는 날이 오면 내 고향으로 초대하고 싶다”라는 바람을 영문 편지에 담았다.

그로부터 2년이 넘게 인천의료원은 코로나19 의료 대응의 최전선에 섰다. 2022년 5월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해제될 때까지 인천 내 코로나19 입원환자의 약 70%를 이 병원 한 곳이 감당했다. 2023년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낮아지며 ‘1번’ 환자가 염원했던 “이 질병을 극복하는 날”이 공식적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신종 감염병과 맞서며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보루가 되었던 이 병원은 또 다른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9월21일, 접수·수납 창구가 있는 인천의료원 1층 로비는 한산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 꼭 통과해야 병원에 들어설 수 있었던 '체온 측정, 문진표 작성 부스'는 사라졌지만, 예전의 활기는 여전히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2019년 하루 평균 659명이던 외래환자 수는 올해 6월 기준 462명으로 30% 줄어들었다. 병상가동률은 절반(51.28%)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2019년 인천의료원은 3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의료원 역사상 최고치였다. 올해는 6월까지 누적된 적자만 해도 43억6000만원이다.

인천의료원이 코로나19 진료를 전담했던 780일 동안, 이 병원을 다니던 기존 환자들은 다른 의료기관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난해 5월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해제되고 정상 진료를 재개한 지 1년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떠난 환자들은 좀처럼 되돌아오지 않고 있다.

인천의료원만이 아니다. 공공병원으로서 감염병 대응에 동원되었던 전국 지방의료원 35개 대부분이 코로나19 여파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80.5%였던 지방의료원의 평균 병상가동률은 올해 6월 기준 46.4%에 그쳤다. 지방의료원 35곳 가운데 34곳에서 20~60%까지 병상가동률이 줄어들었다(〈그림 1〉 참조). 당연한 순서로 경영실적도 악화되었다. 2019년 17개 병원이 당기순이익 흑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6월 기준으로 지방의료원 거의 전부가 적자를 보고 있다.

의사 없어서 휴진한 진료과 37개

의료진 이탈도 심각한 상황이다. 2년 넘게 코로나19 환자만 보다 보니 다른 진료 과목의 의사들이 하나둘 공공병원을 떠나갔다. 의료계 전체적으로 의사 구인난이 심화되면서 더 높은 보수를 제시하는 민간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의사들도 적지 않다. 이는 종합병원으로서 지방의료원들의 진료 기능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9월1일 기준으로 의사가 없어서 본래 개설했던 진료 과목을 휴진하고 있는 병원이, 전국 지방의료원 35곳 중 23곳에 달한다. 휴진한 진료과로 따지면 2017년에는 남원의료원의 진단검사의학과 1개 과였지만, 올해는 정형외과·재활의학과·소아청소년과 등 총 37개 과로 급증했다(〈그림 2〉 참조).

주요 국가의 코로나19 의료 대응을 비교 연구하고 있는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책통계지원센터장은 “현재 상황은 한국의 감염병 대응 정책이 초래한 결과”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나라는 공공병원이든 민간병원이든 가리지 않고 코로나19 환자를 봤다. 반면 한국은 공공병원에 코로나19 환자들을 대부분 밀어주고, 민간 의료기관들은 기존 진료 기능을 유지하게 했다. 공공병원을 다니던 환자와 의료진이 민간병원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심화된 배경이다.”

한국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공공병원 비율은 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입원환자의 대다수는 지방의료원을 비롯해 공공병원을 거쳐갔다. 민간병원들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대거 참여한 것은 팬데믹 막바지인 2021년 말에 이르러서다(〈시사IN〉 제791호 ‘팬데믹에 헌신했지만 돌아온 것은 심각한 적자, 공공병원의 위기’ 기사 참조). 2022년 코로나19 유행주가 오미크론 변이로 바뀌며 감염자는 폭증하지만 입원 치료까지 필요한 중증 환자의 비율은 현격히 낮아졌다. 정부는 민간병원은 놔둔 채 2022년 5월 공공병원들부터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을 해제했다. 코로나19 병상은 환자를 받지 않고 비워만 두어도 손실보상금을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의 재활의학과는 현재 휴진 중이다.ⓒ시사IN 박미소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방의료원이 2019년 병상가동률까지 복구되는 데에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해제된 시점에서 4.3년(52개월)이 걸릴 것으로 분석했다. 한번 병원을 옮긴 환자는 쉽사리 발걸음을 돌리지 않는다. 자신의 병력과 치료 과정, 그동안 썼던 약제 등을 잘 알고 있는 의료진과 주치의 같은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지방의료원에 지급한 ‘회복기’ 손실보상금은 최대 기간이 6개월이었다.

2020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에 지급한 코로나19 손실보상금은 총 8조6544억원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같은 기간 전국 지방의료원에 지급된 손실보상금 합계가 1조5598억원에 그친다고 추산했다. 국립대학 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이 받은 손실보상금 규모는 보건의료노조의 계산에 포함되지 않아 전체 공공병원이 받은 예산은 알 수 없지만, 정부가 지출한 코로나19 손실보상금 가운데 상당한 금액이 민간병원으로 흘러간 것이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재난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코로나19 환자를 보는 동안에는 손실보상금이 나와서 그때는 지방의료원의 재정도 안정적이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존재감도 커졌으니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한국의 공공의료가 성장하겠구나, 기대감을 품었다. 천문학적으로 풀린 정부 예산 대부분이 민간병원으로 가서 우리 의사와 간호사들을 빼가는 데 쓰일 줄은 몰랐다.” 인천의료원은 코로나19 유행 기간 병원을 떠난 신장내과 전문의 자리를 1년6개월째 채우지 못하고 있다. 혈액투석기 35대가 들어선 인공신장실도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천안·서울·포천을 떠돌던 외국인 산모

이처럼 지방의료원들이 열악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지만 필수의료 공백이 심화되며 공공병원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9월19일 찾은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 병원 4층 원장실에 들어서자 벽면에 걸린 ‘대한민국 국무총리 단체표창’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상을 포함해 코로나19 유행 기간 포천병원이 받은 중앙정부 표창이 11개다.

9월19일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전날 태어난 아기를 돌보고 있다.ⓒ시사IN 박미소

영예 뒤에 찾아온 그림자는 짙다. 올해 9월 기준 병상가동률은 40% 내외, 한 달 평균 적자는 10억원가량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임금 체불 위기가 닥쳤지만 중앙정부가 지급한 6개월치 회복기 손실보상금과 경기도 지원금으로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왔다. 백남순 원장은 “올해를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이 종합병원을 다급하게 찾는 환자들이 생기고 있다. 한 달 새에도 두 건이 있었다. 하나는 32주 차에 조기 출산을 하게 된 외국인 산모 케이스다. 아내는 대구에서, 남편은 충남 천안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부부인데 분만할 곳이 없다며 천안의 의료기관에서 의뢰가 왔다.

대도시에서도 ‘산과’는 사라지고 ‘부인과’만 남고 있지만 포천병원은 적자를 감수한 채 분만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 산부인과마저 문을 닫으면 경기 북동부 지역에서는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출산 병원을 찾는 데 애를 먹는 이주노동자 임신부들은 경기도 안산 등지에서도 포천병원 산부인과를 찾아왔다. 이제는 그 반경이 천안까지 넓어진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 처지에서 처음 보는 임신부의 아기를, 그것도 오자마자 받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위”라고 백남순 원장은 말했다. 산전 진찰을 통해 임신부와 태아의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한 의료적 준비를 해둬야 하는데 응급 분만은 그럴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포천병원 신생아실에는 32주에 태어난 미숙아를 돌볼 신생아 집중치료실이 없었다.

2020년 2월25일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김진용 과장이 코로나19 병실 상황을 모니터로 체크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고심 끝에 서울의 규모 있는 병원으로 임신부를 보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 야간 분만, 응급 분만을 하지 않는다며 다시 포천병원으로 돌려보냈다. 결국 포천병원 의료진이 아침 7시 급하게 모여서 제왕절개 수술을 한 끝에 이 여성은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아기가 신생아실에 있는 동안에는 포천병원에 한 명뿐인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밤낮으로 병원을 지켰다. 다행히 열흘 뒤 아기와 산모는 건강하게 퇴원했다.

또 다른 케이스는 급성후두염 증세를 보이는 소아 응급환자였다. 급성후두염은 심각한 질환은 아니지만 신속하게 기도를 확보하고 호흡기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경기도 동두천에 사는 이 어린이는 우선 의정부에 있는 큰 병원들을 찾아갔지만 소아 응급환자는 진료가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아이는 20㎞를 달려 포천병원 응급실에 와서야 기본적인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백남순 원장은 “이 병원과 지역에 애정을 가진 의료진이 있어서 겨우겨우 해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 산부인과 과장은 포천병원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 이 지역에서 본인이 분만을 받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1년 365일 일한다. 소아청소년과 과장도 포천에서 오래 진료를 해온 분이니까 신생아실도 보고, 외래진료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공공산후조리원도 나가고 하는 일을 혼자서 도맡고 있는 거다.”

“정부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포천병원은 재활의학과 진료실이 6개월째 공석이다. 뇌경색을 앓거나 후유증이 생긴 환자들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요양시설과 고령인구가 많은 포천에서는 재활의학과 진료 수요가 높다. 그러나 연봉 3억원을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국립대 병원에서 의사를 파견받는 제도도 알아봤지만 포천병원까지 오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백남순 원장은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 파견 의료인력 인건비 지원사업의 맹점”라고 말했다. “그런 방식으로는 민간 재활병원이나 사설 운동치료실이 이미 많은 수도권과 대도시에만 의사가 채워진다.” 포천에 사는 장애인들과 노인들은 서울, 의정부의 병원을 찾아가거나 재활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3년 9월21일 접수·수납 창구가 있는 인천의료원 1층 로비가 한산하다. ⓒ시사IN 조남진

비단 의료 취약지에서만 공공병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천 같은 대도시에 공공병원이 필요한 이유를 묻자 인천의료원 조승연 원장은 “민간 의료기관만으로 국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를 보장하는 것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요즘 일명 ‘구급차 뺑뺑이’ 사건들이 잇따르는 건 영리적인 분야로 자꾸 의사들이 빠져나가서 중환자 치료, 수술, 응급실 운영처럼 비용과 인력은 많이 들어가는데 돈 안 되는 과목들은 진료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안정적으로 필수의료를 국민에게 제공하려면 이제는 공공병원이 지역 책임의료기관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역설적 상황이다. 공공병원에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반해, 지방의료원들은 경영난과 의료진 이탈 등 좀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운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뜩이나 취약했던 한국의 공공의료 기반도 나날이 침식되고 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의 임승관 원장은 긴급한 대책과 장기적인 계획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코로나19가 공공병원의 위기를 가속화시킨 방아쇠임에 틀림없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근본적 요인은 한국의 의료 환경 변화이다. 특히 의사 인력 시장의 불균형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증폭되었다. 우리 병원이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더 나아가 지역의료의 중추 역할을 하려면 휴진 중인 외과도 다시 열어야 하고, 한 명으로 근근이 버티는 정형외과 의사도 충원해야 한다.” 공공병원에 의사 인력이 유입되는 경로를 설계하고, 의대부터 수련의까지 의사 양성 과정과도 연계하는 긴 호흡의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공의료를 살려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은 공공병원들이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폭적인 보조금으로 시간을 벌어야 한다”라고 임승관 원장은 말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 역시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예전에 연간 20억원 정도 예산이 부족할 때는 인천시에서 보전을 해줄 수가 있었다. 지금은 매달 적자가 20억원이다. 지자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방의료원을 동원한 건 중앙정부였다. 6개월 회복기 손실보상금을 줬으니 그 뒤로는 망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식인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2024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중앙정부가 지방의료원을 지원하는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사업 예산은 6.3% 줄어들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공공병원에 지급되던 코로나19 회복기 손실보상금은 올해 모두 종료됐다. 지자체 보조와 손실보상금으로 폭탄 돌리기 하듯 막았던 경영 위기가 내년에 본격화할 거라는 우려가 지방의료원들에 감돌고 있다. 몰락하는 건 고작 5%에 지나지 않는 공공병원이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천·포천/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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