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61.속초유일 화방 영일화방

박주석 2023. 10. 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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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째 한자리’ 속초 화가·미술학도 마음의 고향
속초초·중 인근 1979년 개업
미술교사 권유로 화구 판매 시작
전공자·동호인 등 필수방문 코스
“고객 요청 반영 미술지식 습득
화방서 놀던 막내딸 미대 진학”
온라인 주문 대세 학생 손님 줄어
“단골·취미 수집가 방문에 감사
지역 유일 화방 자부심 지킬 것”
속초 영일화방문구는 각종 붓, 컬러 도화지, 유화 물감 등 일반용에서 전문가용 제품까지 다양한 미술용품을 판매한다.

속초에서 그림 꽤나 그린다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있다.40여년째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속초 유일의 미술 용품 전문 화방인 ‘영일화방문구(대표 고수길·80)’가 그 주인공이다.

영일화방문구가 문을 연 지난 1979년부터 한결 같은 마음으로 화방을 운영중인 고수길 대표를 만나봤다.

속초에서 태어난 고 대표는 20대 시절 양복점에서 재단 기술자로 근무했다. 이후 1972년 부인인 김기자 씨와 결혼 후 아내의 권유에 따라 1979년 12월 속초초교와 옛 속초중학교 인근인 현재의 자리(속초시 중앙로 56-1)에서 ‘영일문구’를 열었고 이듬해인 1980년부터는 당시 속초중 미술교사의 권유로 각종 붓, 컬러 도화지, 유화 물감 등 일반용에서 전문가용 제품까지 다양한 미술용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영일문구’에서 ‘영일화방문구’로 간판도 바꿨다.

당시만해도 전문적으로 미술용품을 취급하는 곳이 속초에 존재하지 않아 중·고교에 재학중인 미대지망생들은 속초보다 큰 도시인 강릉까지 멀리 원정을 가서 전문가용 미술용품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속초 영일화방문구는 각종 붓, 컬러 도화지, 유화 물감 등 일반용에서 전문가용 제품까지 다양한 미술용품을 판매한다.

고 씨는 “결혼 후 아내가 ‘학교 인근에 위치한 친척 어른 소유의 건물 상가가 비었으니 그곳에 문구점을 열자’고 권유해 시작하게 됐다. 문을 열 당시만해도 인근에 학교가 두 곳이나 있어서 문구만 팔아도 매출이 충분히 좋았다”며 “그러다 한 미술 교사가 ‘속초에 미술도구 살 곳이 마땅히 없다’고 말을 꺼내 본격적으로 화방을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때는 붓이나 캔버스 같은 그림을 그릴 종이도 파는 곳이 속초에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전문적인 미술도구를 사려면 강릉이나 서울을 직접 방문하거나 방문할 일이 있는 지인들에게 부탁을 해서 공수해 사용했다”며 “화방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의 수고를 덜게된 점도 이 일을 하면서 느낀 보람 중 하나”라고 했다.

‘영일화방문구’는 속초 지역에서 미술을 전공하거나 그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코스가 됐다. 운영이 한창 잘 될때는 속초의 인근 소도시인 인제, 고성, 양양에서도 많은 사람이 화방을 찾았다.

고 씨는 “예전에는 속초에 문구점이 많았지만 화방은 이 곳 이후에 한 곳이 더 생겨 단 두 곳 뿐이었기 때문에 수요가 많았다”며 “미술학원도 많았던데다 동우대가 있을때만 해도 아동학과 같은 곳에서 단체로 주문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초기에는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물품 주문을 하는데 어려움도 겪었지만 고객들이 직접 요청한 물품을 주문하다보니 생소한 용어도 어느새 익숙해지더라”며 “또 화방을 하다보니 아이들도 화방에서 놀면서 자연히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 세 자식 중에 막내딸은 미대로 진학해 디자인을 전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화방을 운영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골칫거리는 있었다. ‘바늘도둑’. 어린 학생들이 호기심에 화방에 들어와 문구와 미술도구를 몰래 들고가는 경우가 잦았다.

특히 요즘처럼 주문 다음날이면 문앞에 물품이 도착하는 택배 서비스가 없었던 당시에는 고수길 대표가 서울의 동대문시장 문구거리에 직접 올라가서 구매하거나 전화로 주문을 넣어도 물품이 도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터라 한번에 대량 구매해 전시해놨기 때문에 화방은 아이들의 ‘노림터’였다.

고 대표는 “하루는 한 학생이 재고가 떨어진 물건을 달라고 해 잠시 인근 문구점에서 가져오는 사이에 매대에 전시해놨던 필기구 한줄을 몽땅 가져갔더라. 물품이 너무 많아서 즉시 못알아챘는데 다음날 다른 학생이 알려줬다”며 “이후 그 학생을 불러 선생님께 이르겠다고 하니 물건을 다시 가져왔다. 그때만해도 학생들이 아직 순수할때라서 차마 경찰이나 학교에 알리진 못했다. 이제는 그것도 다 추억이다”고 웃었다.

영일화방 고수길 대표

그러나 최근 가게 사정은 좋지 않다. 지역에 학생 수 자체가 워낙 줄어든데다 온라인 주문이 대세다보니 매장을 운영하는 하루하루가 쉽지않다.

고 씨는 “학생수가 워낙 많이 감소한데다 지역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도 많이 줄었다. 지금은 주민센터 등에서 취미로 미술을 배우는 동호인이나 예전부터 화방을 이용했던 단골들만이 가끔 찾는 실정”이라며 “또 일부는 단종된 펜 등을 취미로 수집하는 사람들도 가끔 온다”고 했다.

다만 고 씨는 “아직까지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화방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지금까지 영일화방을 기억하고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들에게도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 그분들이 계시는 한 운영을 하려고 한다”며 “미술을 배우는 사람이나 하고 있는 분, 취미로 미술을 하고 싶은 사람 등 많은 사람이 앞으로도 화방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주석 jooseo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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