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인현왕후···왕릉 속 이야기 들리는듯

최수문기자 기자 2023. 10. 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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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숙종 임금님이 사랑하던 고양이고, 이름은 '묘묘'라고 해요. 여기서 살고 있죠. 물론 이상과 저승을 오가고 있어요. 제 말을 듣는 '사람'은 300여년 만에 처음이에요. 정말 반가워요."

묘묘는 "지금부터 저를 따라오시면서 재미있는 왕릉의 이야기를 즐겨 주세요"라고 말한 후 왕릉 쪽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묘묘가 첫 번째 안내한 곳은 숙종과 인현왕후가 모셔져 있는 명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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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 야별행' 가보니
고양이로 분장한 배우가 안내
춤·연극 등으로 '스토리텔링'
창덕궁·경복궁 이은 3번째 야행
22일까지···그림자극·조명 쇼도
희빈 장씨(장희빈) 무덤인 대빈묘 앞에서 혼을 위로하는 춤사위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 제공=문화재재단
[서울경제]

“저는 숙종 임금님이 사랑하던 고양이고, 이름은 ‘묘묘’라고 해요. 여기서 살고 있죠. 물론 이상과 저승을 오가고 있어요. 제 말을 듣는 ‘사람’은 300여년 만에 처음이에요. 정말 반가워요.”

어둠이 짙게 깔린 왕릉 입구에 ‘고양이’가 한 마리가 나타났다. 고양이 분장을 한 배우 직업의 안내자다. 묘묘는 “지금부터 저를 따라오시면서 재미있는 왕릉의 이야기를 즐겨 주세요”라고 말한 후 왕릉 쪽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신의 정원 길을 따라 살아있는 자의 발이 들어간다.”

고양이 ‘묘묘’가 관람객들을 서오릉으로 안내하고 있다. 사진 제공=문화재재단

16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서오릉에서 두 시간 가량의 ‘서오릉 야별행’이 진행됐다. 왕가의 무덤인 서오릉은 숙종(재위 1674∼1720)의 명릉을 포함해 경릉·창릉·익릉·홍릉 등 5기의 왕릉이 있고 여기에 희빈 장씨(보통 장희빈으로 불림)의 무덤인 대빈묘 등도 있다.

문화재를 활용한 야행(밤여행) 프로그램으로서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이미 ‘창덕궁 달빛기행’, ‘경복궁 별빛야행’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3번째로 왕릉 야행 프로그램까지 추가한 것이다.

‘서오릉 야별행’은 화려한 무대 장식과 함께 춤과 연극 등 스토리텔링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안내자로 일반 해설사가 아니라 배우를 등장 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묘묘는 실제 숙종이 살아생전 아꼈던 고양이 ‘금손’을 모티브로 했다.

오후 7시 반 야행을 시작하면서 헤드셋이 함께 배포됐다. ‘묘묘’의 목소리를 확실히 듣는 것과 함께 배경 대사나 음악 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기 위해서다. 서오릉 내에서는 사람들의 걷는 소리 외에 깜깜한 적막감이 유지됐다.

관람객들이 명릉의 홍살문을 들어서고 있다. 사진 제공=문화재재단
숙종과 인현왕후의 무덤을 스크린 배경으로 라디오극장이 진행중이다. 사진 제공=문화재재단

묘묘가 첫 번째 안내한 곳은 숙종과 인현왕후가 모셔져 있는 명릉이었다. 묘묘는 “1701년 인현왕후님이 먼저 오시고 이어 1720년 숙종 임금님이 옆으로 오셨죠”라며 홍살문과 정자각까지 명릉 구석구석을 설명했다. 이윽고 무덤을 스크린 배경으로 한 영상과 함께 한 편의 라디오 극장이 진행됐다. 숙종이 ‘오늘부로 중전을 폐할 것을 명한다’고 하자 신하들은 국모를 함부로 바꿀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람객들은 묘묘를 따라 이동하면서 대빈묘에 다다랐다. ‘서오릉 길 중에 가장 좁고, 볼품없는 데 굳이 오셨소’라고 건네는 말이 문득 헤드셋을 통해 들렸다. 무덤 앞에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녀를 표현한 춤사위가 펼쳐졌다.

경릉에서 정자각을 배경으로 진행된 그림자극. 사진 제공=문화재재단

이어 추존왕의 호칭을 받은 덕종(1438∼1457)과 소혜왕후의 무덤인 경릉에서 그림자극과 조선의 역대 임금들의 어진(왕의 초상화) 영상까지 볼 수 있었다.

익릉의 ‘빛의 숲’에서 숙종과 묘묘가 재회하고 있다. 사진 제공=문화재재단

서오릉 야별행의 마지막은 숙종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를 모신 익릉이다. 인경왕후가 20세에 사망한 것을 근거로 “인경왕후님은 젊은 나이답게 K팝 등 최신의 유행을 좋아하세요”라고 묘묘가 설명했다. 이번 야별행의 클라이막스로 익릉 주위에 반딧불이 조명과 레이저를 활용한 ‘빛의 숲’이 펼쳐졌다. 숲 앞에서 다시 묘묘와 ‘숙종’의 300년 만의 짧은 재회와 이별 장면이 연출됐다.

왕릉의 입구로 돌아온 시각은 어느덧 오후 9시를 훌쩍 넘겼다. 묘묘는 “이제 저승으로 돌아갈 때”라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아침에도 낮에도 서오릉은 참 좋다”며 “혹시 낮에 저를 볼 때 제가 아는 채 하지 않고 그냥 뛰어가면 그것은 화장실이 급해서일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서오릉 야별행 참가자들이 등불에 의지해 깜깜한 숲길을 걷고 있다. 사진 제공=문화재재단

행사를 주관하는 문화재재단 측은 “왕릉 야행은 스토리텔링을 많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며 “창덕궁·경복궁 등에 버금가는 문화유산 야간 활용 프로그램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오릉 야별행은 오는 22일까지 하루 3차례씩 참가자를 받는다. 같은 기간 서오릉 야별행을 비롯해 9곳의 조선왕릉에서 ‘조선왕릉문화제’ 행사가 이어진다.

최수문기자 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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