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9일 이태원, 희생자 이름 지운 저널리즘

한겨레 2023. 10. 1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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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미디어 전망대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집중 추모주간을 선포하고 시민추모대회에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어느덧 한해가 지나갔다.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한다지만, 돌아온 10월의 끝에서 159명이나 되는 안타까운 죽음이 실시간으로 중계됐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각별한 마음의 준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특히 그날의 안타까운 기억 중 내가 다시 각별한 마음으로 돌아보고 싶은 것은 우리 언론에서 이태원 희생자를 끝까지 익명화했다는 사실이다. 10월29일 밤 사고 첫날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긴급 상황에서부터 이후 추모의 시간까지 대부분 우리 언론은 희생자의 이름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대부분의 언론에서 사고 희생자의 명단이 공개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 언론에서도 그동안은 희생자 명단이 공개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물론 대형 사고에서 희생자 명단 공개가 정당한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정보 보호의 중요성과 함께, 한편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보도가 사고의 심각성을 파악하게 하는 공익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대형사고 상황에서 피해자 가족에게 즉각적 정보 제공 통로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명단 공개가 정당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희생자 명단 공개를 쉽게 패륜적 행위로 매도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런데 지난해 시민언론 ‘민들레’가 참사 16일 만에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 이는 쉽게 매도되었고 곧바로 고발과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한동안 대부분 언론 보도에서 이태원 희생자는 마치 실재하지 않았던 존재인 것처럼 이름과 얼굴도 없이 그저 숫자 159명으로 다뤄졌고, 다른 사고와 달리 유가족의 눈물과 고통 어린 호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꽤 시간이 지난 뒤, 라디오 프로그램 ‘김종배의 시선 집중’에서 이태원 희생자 유가족의 인터뷰를 시작했고 희생자들이 우리 옆에 있던 평범한 아들·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목소리를 아직까지 매주 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새벽녘 어디에서도 아이의 이름을 찾을 수 없어 미친 듯이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는 유가족의 사연을 들으며, 과연 우리 언론이 그 이름을 그렇게 꼭꼭 숨겨놓으며 보호했던 것이 정말 희생자의 명예와 존엄을 위한 것이었을지 다시 묻게 된다.

우리 언론이 그토록 이태원 희생자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열심이었다고 믿어 주고 싶지만, 그 진위와 무관하게 우리 언론에서 너무나 쉽게 이런저런 이름을 감춰 왔기 때문에 간단히 수긍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언론에 그토록 빈번하게 등장하는 익명의 ‘관계자’는 이름이 감춰진 이유로 무엇이든 얘기하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언론에서는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처럼 공적 책임을 갖는 취재원조차도 ‘관계자’로 쉽게 이름을 감출 수 있다. 익명 취재원에 대한 저널리즘 윤리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지만, 취재의 공적 가치와 투명한 보도의 책임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보도의 편의를 위해서는 쉽게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는 것이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애초 공개되지 않아서 기억할 수 없는 이태원 희생자의 이름을 다시 각별하게 떠올려보고자 하는 것은 혹시나 그 이름이 언론에서 보호된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위해 외면되고 감춰진 것은 아닌지 따져 봐야 하기 때문이다.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명패와 영정도 없는 분향소와 변변한 사과 한번 없었던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모독은 희생자의 이름이 공개되어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인 것처럼 이름을 숨겨 놓았기에 마땅히 있어야 할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유가족에 대한 위로 대신 2차 가해와 모독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언론이 정말 보호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언론 스스로의 안위나 편의가 아니라 정말 희생자의 명예와 존엄이었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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