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작가’ 봉쇄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논란

임인택 2023. 10. 1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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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투르 상에 아다니아 쉬블리
20일 시상식 ‘하마스 전쟁’ 이유로 취소
아랍권 출판계, 도서전 불참으로 반발
유럽 일부 “반유대 정서 작품” 비판
1974년 팔레스타인 갈릴리에서 태어난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 한국 작가들과도 활발히 교류 중이다. 2018년 ‘한겨레21’에 ‘내가 만난 베트남’ 주제로 글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세계 최대 도서전으로 꼽히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18일 개막)에서 상을 받기로 예정된 팔레스타인 작가의 시상식이 취소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이유로 팔레스타인 문학인의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조차 봉쇄한 결과다. 아랍권 출판사는 도서전 참가 계획을 철회했고, 전세계 수백명의 작가들이 반대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주요 외신과 프랑크푸르트 산하 기관 ‘리트프롬’(LitProm)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49)가 제75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3일차인 20일 ‘리베라투르’ 상(LiBeraturpreis)을 수상할 예정이었으나 시상 행사가 취소됐다. 이 상을 주관하는 리트프롬은 지난 13일께 “하마스가 일으킨 전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수백만명이 고통받고 있다”며 시상식 연기 소식을 알렸다. 상은 유효한 상태다.

리트프롬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회장인 위르겐 부스가 이끌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이번 도서전을 두고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특히 더 잘 드러내기 위한” 행사를 계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리베라투르 상은 아시아·아프리카·아랍·남미권 등 제3세계(글로벌 사우스) 여성작가를 대상으로 ‘창의적 모범’이 되는 독일어권 번역 작품을 선정해 장려·홍보하고자 1988년부터 매해 주어져 왔다. 상금은 3000유로다. 쉬블리의 장편소설 ‘사소한 일’은 이스라엘의 중동전쟁 승리 뒤인 1949년 8월 한 남부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강간 사살된 아랍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사건을 쫓는 21세기 한 여성(주인공)의 잘고 치밀한 심리 전개는 ‘지도에서 사라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것을 은유하고, 말미에 이르러 이 여성도 이스라엘군의 총부리에 겨눠진다.

‘사소한 일’은 지난 6월 추려진 6편 최종후보(1차 후보 13편) 가운데 선정됐다. 리트프롬은 “경계의 힘, 폭력적 갈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관계를 언어적으로 엄격하게 다뤘다. 이면에 숨겨진 (팔레스타인인의) 오래된 상처를 엿보게 하는 소소한 것들을 대단히 조심스럽게 응시한다”며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 소설의 독일어 버전(번역 퀸터 오르트)도 높이 평가했다. ‘사소한 일’은 2020년 영어로 번역되어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후보에, 2021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아다니아 쉬블리의 리베라투르 상 시상식을 취소한다고 알린 리트프롬. 공지 아래엔 쉬블리가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누리집 갈무리

리트프롬은 누리집의 선정결과 공지 상단에 시상식 연기 소식과 함께 “이후 시상식 행사에 적합한 형식을 찾고 있다. 아다니아 쉬블리에게 상을 주는 건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리트프롬은 일부 언론을 통해 작가와 소설에 제기된 비난과 명예훼손은 근거 없는 것으로 단호히 거부한다”고 덧붙여뒀다. 영국신문 가디언 등은 쉬블리와 “공동 결정”해 시상식이 연기되었다고 리트프롬이 밝혔으나 실제 쉬블리는 동의한 적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당초 쉬블리의 선정 소식과 함께, 유럽 일부 매체들은 반유대인 서사가 강한 작품의 수상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해 왔다. 앞서 이 상 심사위원인 독일 언론인(울리히 놀러)도 수상 결정에 항의해 사퇴했다.

세계 각국 작가들은 “팔레스타인 작가들이 이 끔찍하고 잔인한 시대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 문학에 대한 성찰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책임이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아일랜드 소설가 콜름 토이빈, 리비아계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히샴 마타르, 영국 역사학자 윌리엄 달림플 등 16일 현재 600명 이상이 연대서명했다.

샤르자를 포함한 아랍에미리트 등 아랍권 출판사들도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참가일정을 철회하고 나서 도서전을 둘러싼 갈등은 증폭될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트 쪽은 “이 지역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편향되고 불공정한 태도에 유감을 표한다”고 외신에 밝혔다. 아랍에미리트는 페르시아만 국가로는 처음 이스라엘과 평화협정(2020년)을 맺었다. 아랍국가로는 세번째다.

리트프롬은 단체의 목표를 “유럽 중심주의적 관점, 제3세계권에 대한 무지,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이란 말로 설명하고 있다.

아다니아 쉬블리는 24일부터 26일까지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리는 ‘DMZ 평화문학축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사소한 일’(출판사 강)은 지난 7월 국내에도 번역 소개되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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