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밀라노의 칙령, 슬로우하라
#프라다파운데이션 #10꼬르소꼬모
●그렇게 프라다 마니아가 되어 간다
드디어 프라다에 반했다. 오래된 '명알못'를 단숨에 사로잡은 건 밀라노 프라다 파운데이션(Fondazione Prada)의 격조였다. 1994년 프라다 파운데이션을 설립하고 예술문화 활동을 해 온 미우치아 프라다, 파트리치오 베르텔리 부부가 밀라노의 문화공간을 위해 선택한 건축가는 경희궁에 '프라다 트랜스포머'를 구연했던 렘 콜하스다.
삭막한 산업지역이었던 밀라노 남쪽, 옛 증류주 공장은 포디움이 되었고, 고층 건물도 더해졌다. 빛나는 유리 벽면의 포디움은 정원의 나무를 고스란히 투영하며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것 같았다. 대형 유리창을 이용해 안팎의 경계를 허물고 공간을 재창조하는 렘 콜하스의 특징이 이곳에서도 뚜렷하다.
가장 고층 건물인 '토레(Torre)'는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등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프라다라는 브랜드를 철저하게 숨기고 오로지 현대예술에 헌정된 공간을 빨리 떠나기가 싫어서 다른 일정을 취소했을 정도다.
내친김에 꼭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방문객 사이에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앤더슨(Wes Anderson)감독이 레트로하게 디자인한 카페 바 루체(Bar Luce)가 SNS 인증 명소로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 레스토랑 '토레'에서의 식사를 권한다. 하지만 미각이야 개인차가 클 테니 추천의 안전장치로 '뷰'를 걸어 둔다. 밀라노 도심의 거의 모든 랜드마크가 시야에 들어오는 시원한 전경은 이견 없이 최고다.
●슬로우 쇼핑, 슬로우 푸드
오래된 명소라 새삼 소개하기가 망설여졌지만, 10 꼬르소 꼬모(10 Corso Como)는 사실 성지의 반열에 오른 스테디셀러다. '편집숍'으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는 사실이, '편집자'로도 불리며 살아온 나를 뜨끔하게 한다. 실제로 10 꼬르소 꼬모 창립자인 까를라 소짜니는 패션 잡지의 에디터 출신이다. 그녀가 30여 년 전 한적한 꼬모 거리 10번지의 낡은 빌딩에 편집숍을 열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숍이 편집숍이라는 새로운 쇼핑문화 공간의 시작이 되고, 18년 후에는 대한민국에도 진출해서 가장 트렌디한 쇼핑숍이 될 것을 말이다.
늦깎이 쇼퍼이자 예술소비자로 10 꼬르소 꼬모를 방문했다. 추종자들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편집 매장뿐 아니라 호텔, 레스토랑, 전시관까지 갖추고 있다. 2층에 올라가니 실은 갤러리로 시작했던 10 꼬르소 꼬모의 시원에 대한 안내와 관련된 작가들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하나의 편집숍이 일으킨 골목의 부흥은 많은 관광객과 도열한 부티크숍,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증명했다. 거리 끝에서 슬로우 푸드 슈퍼마켓인 '잇탈리(Eataly)'까지 스캔하고 나니 허기가 졌다.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10 꼬르소 꼬모의 가든 레스토랑은 드라이한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렸다. 까다로운 기준으로 '셀렉 된' 아이템들은 한국의 매장에서도, 온라인으로 쉽게 주문할 수 있지만, 이 느긋하고 향기로운 쇼핑과 식사의 경험은 현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의 청량한 여름, 햇살이 찰랑거리는 가든 테이블이 여기로 와 있었다. 그래도 이곳의 주소는 10 꼬르소 꼬모다.
●내면이 더 아름다운 도시
사실 '슬로우'하기로 말하자면 밀라노 두오모도 빠지지 않는다. 1386년에 착공해 공사가 완료된 것은 1951년이다. 어마어마한 규모도 규모지만 구석구석 다양한 건축 양식과 이탈리아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미사가 진행 중인 성당 내부를 스치듯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오모 지붕으로 올라갔다. 요즘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도 줄을 서야 하니 엘리베이터쯤이야. 인내심이 저절로 고양된다.
두오모의 가이드는 말했었다. 밀라노는 외부도 아름답지만 사실 안쪽이 더 아름다운 도시라고. 그리고 자신도 외모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밀리노 토박이라는 중년 부인의 위트있는 자기소개는 고스란히 밀라노 감상법이 됐다.
유럽 식재료의 박람회장 같은 보케리아 재래시장을 포함해 어딜 가도 인파가 미어터지는 밀라노의 여름을 즐기는 방법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브레라 거리, 고딕 거리를 천천히 걷고, 되도록 밖이 아닌 안을 즐기면 된다. 한 잔의 술,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는 진열된 병의 종류만으로도 위스키와 칵테일에 진심임을 알 수 있는 뫼비우스 밀라노가 제격이다.
글·사진 천소현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비스터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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