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人] (40) "호로파를 아세요?"…국제논문 써낸 한의과 학생들

임채두 2023. 10.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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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개 넘는 논문 1년 반 분석…당뇨·전당뇨 병증 완화 효과 검증
수업·논문 집필 병행…"실력 제대로 갖춘 한의사로 성장할 것"
왼쪽부터 김아림, 김지원, 노우정씨 [촬영: 임채두 기자]

[※ 편집자 주 =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 대학들은 존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 산학협력, 연구 특성화 등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지방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구성원들을 캠퍼스에서 종종 만나곤 합니다. 연합뉴스는 도내 대학들과 함께 훌륭한 연구와 성과를 보여준 교수와 연구자, 또 학생들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국제적으로 관심도가 높은 호로파(fenugreek)를 연구 주제로 삼았어요."

우석대학교 한의학과 본과 3학년인 김지원(23)씨는 15일 호로파를 논문의 소재로 정한 배경을 말하면서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지원씨와 같은 학년 김아림(23)씨, 2학년 노우정(24)씨가 한의학과 본과 학습량을 감당하면서 써낸 논문의 제목은 '호로파가 제2형 당뇨와 당뇨 전 단계에 미치는 효과: 체계적 문헌 고찰 및 메타분석'이다.

호로파는 지중해 서부 지역에서 나는 한해살이풀로, 호로파 씨앗은 몸속 혈당과 인슐린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효과가 있어 약용한다.

호로파 씨앗이 당뇨에 미치는 효과를 입증하려는 해외 연구는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약재 자체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학생들은 메타분석(여러 연구 결과를 하나로 통합해 요약) 방법으로 이 호로파 씨앗의 당뇨 개선 효능을 검증했다.

지난해 1월부터 1년 6개월가량 이들이 분석한 국내외 논문은 800개가 넘는다.

펍메드(PubMed), 한국학술정보(KISS), 엠베이스(Embase) 등 논문 검색 사이트를 뒤져 호로파에 관한 연구를 끌어모았다.

프로토콜(protocol·정해진 절차) 따라 수많은 논문 중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근거 수준이 낮은 논문은 제외했다.

호로파의 효과에 관한 근거가 풍부하거나 당뇨에 관한 보편적 효과를 제시한 논문을 골라냈다.

이 작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야말로 '노가다(막노동)'인 셈이다.

연구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지도는 이 연구의 교신저자로 참여한 김영식(한의예과) 교수가 맡았다.

학생들은 해를 넘긴 연구 기간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해가 어려운 점을 묻고 해법을 찾았다.

시간 맞추기가 어려운 본과생들이라 화상으로 대화하며 밤낮 없이 논문에 매달렸다.

교과서에 파묻혀 논문 읽어볼 기회도 적었던 본과생들에게는 이번 논문이 일종의 도전이었다.

학생들은 "본초학 강의를 들을 때 호로파를 처음 접했는데, 국제적으로 관심이 높고 많은 연구가 확보된 호로파를 효능 검증의 대상으로 삼았다"며 "논문을 분석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는데 교수님이 참고될 만한 책을 소개해주고 조언도 많이 해줘서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김아림, 김지원, 노우정씨 [촬영: 임채두 기자]

이들은 결국 호로파 씨앗이 공복 혈당, 당화혈색소 등 혈당과 관련한 지표를 개선한다는 결괏값을 얻어냈다.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등 혈중 지표에서도 유사한 개선 효과가 있다는 점도 입증했다.

학생들의 이 논문은 과학기술 논문 추가 인용 색인(SCIE)급 학술지인 국제분자 과학저널 9월호에 게재됐다.

김 교수는 "이 논문은 호로파의 항당뇨 효과 검증을 통해 당뇨 환자들에게 기존 약물이 아닌 한약재를 이용한 치료, 관리법을 제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추켜세웠다.

학생들은 이번 연구를 기점으로 동양의학에 더 큰 애정을 갖고 한의사의 꿈을 키워가려고 한다.

문과 출신임에도 한의대에 진학했다는 김지원씨는 "환자를 진료하려면 실력이 기반이 돼야 한다"며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제대로 된 한의사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씨도 "스스로 떳떳한 실력을 갖춘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뜻을 수줍게 내비쳤다.

잔병치레가 많아 어렸을 적부터 의료인을 꿈꿨다는 김아림씨는 "환자는 물론 내 몸까지 챙기는 한의사가 되려 한다"고 웃음을 지었다.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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