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계와 ‘바우하우스’ 예술 정신 [김범수의 소비만상]

김범수 2023. 10. 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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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시계의 고장은 어디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가장 먼저 스위스시계를 꼽는다. 물론 ‘파텍필립’을 필두로 스위스 시계는 의심없이 시계 산업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 시계를 쫓는 시계 제조국은 어디가 있을까. 세이코(Seiko)와 시티즌 그룹이 있는 일본, 지금은 스와치그룹으로 넘어갔지만 해밀턴(Hamilton)이 탄생한 미국도 언급된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 이상으로 ‘아 랑게 운트 죄네’(A. Lange & Söhne)를 필두로 한 독일 시계를 꼽을 수 있다.

◆‘바우하우스’ 미술이란

독일 시계는 스위스 시계와 전반적인 느낌이 다르다. 스위스 시계에 못지 않은 기술력을 자랑하면서 화려함 보다는 절제미, 실용성을 강조한 제품이 특징이다.

독일 시계를 살펴보면 크고 작게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 정신이 깃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우하우스란 1919년 독일에서 설립된 시각·조형예술 학교로 공예 부분의 장인 육성을 위해 출발했다. 

1919년 독일에 설립된 예술학교 '바우하우스' 모습과 로고.
 

오늘날 모더니즘이 바우하우스에서만 발전된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산업디자인에서 바우하우스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요약하면 ‘현대적’, ‘실용적’, ‘간결함’으로 볼 수 있다. 화려했던 유럽의 ‘로코코’(Rococo) 양식이나 동시대 프랑스의 ‘아르누보’(Art Nouveau)와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나칠 정도로 웅장하고 위압감을 주는 독특한 고전주의(?) 양식을 좋아했던 독일의 나치당과 정 반대 사조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바우하우스는 1933년 나치당에 의해 폐쇄된다.

독일의 바우하우스 양식은 건축물로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바우하우스를 계승한 독일 ‘울름 조형대학’이 1955년 막스 빌(Max Bill)에 세워지면서 가전제품, 조명, 시계 등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독일의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
◆‘바우하우스’ 시계의 대표…‘노모스’

바우하우스 정신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알려진 독일 시계는 크게 ‘노모스’(Nomos), ‘스토바’(Stowa), ‘융한스’(Junghans)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계 브랜드이지만,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간결한 매력과 훌륭한 성능,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 시계 노모스의 대표적인 모델인 '탕겐테'(상단)와 '테트라'. 노모스 제공
 

노모스는 1990년에 독일의 유명한 시계 원산지인 글라슈테(Glashütte)에 설립됐다. 비교적 역사가 짧지만, 독일 글라슈테 지역에 노모스 전신이 되는 회사가 있었다가 노모스로 재창업 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모델은 현재 기자가 애용하는 모델이기도 한 ‘탕켄테’(Tangente)다. 다이얼에 표기된 브랜드 로고와 숫자부터 바우하우스 폰트를 따왔다. 이 밖에 손목시계에서 흔치 않게 정사각형 형태의 케이스를 사용하는 ‘테트라’(Tetra)도 기자가 아직까지 잘 사용하고 있는 모델이다.

롤렉스(Rolex) 같이 화려한 시계에 익숙한 사람들은 시간을 알리는 기능에 충실하고 심플한 노모스 시계를 보고 낯설어 할 수 있다. 손목시계라는게 원래 과시의 기능도 있는 만큼, 간결한 시계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모스 기술력은 스위스 시계에 비해서도 전혀 꿀릴게 없다. 기계식 시계의 엔진에 해당하는 노모스 ‘무브먼트’ 두께는 불과 3.2mm에 불과하다. 노모스에서도 이를 강조하며 “우표 9장보다 더 얇다”고 홍보한다. 

노모스가 자랑하는 우표 9장 두께와 같은 3.2mm 무브먼트. 노모스 제공
 

무브먼트의 두께가 얇을 수록 더 정밀하고, 고가라는 인식이 있다. 무브먼트 전문제조기업 ETA의 2892 무브먼트가 3.6mm이고,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인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의 울트라씬 무브먼트가 3.3mm보다 얇은 경이적인 스펙을 자랑한다.

물론 무브먼트 중 가장 얇은 무브먼트로 알려진 바쉐론 콘스탄틴의 1120 모델이 2.45mm지만, 최소 2000만원부터 시작하는 예거나 바쉐론의 가격에 비교했을 때 350만원 이하의 노모스 시계는 놀라울 정도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자사 무브먼트(시계 제조사에서 자체적으로 무브먼트를 개발 및 출시)를 사용하는 롤렉스, 파텍필립, 예거 르쿨트르 등 15곳 시계사 중 하나로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또 다른 바우하우스 시계…‘스토바’, ‘융한스’

독일 시계 브랜드 스토바(Stowa) 모델 마린(Marine)과 플리거(Flieger). 플리거 모델은 IWC 시계 디자인과 상당히 닮았다. 스토바 제공
 

노모스와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훨씬 오래전인 1927년에 설립된 스토바도 바우하우스 디자인이 담긴 대표적인 독일 시계다. 스토바의 ‘안테아’(Antea) 모델은 노모스 탕겐테와 너무나 닮았다. 한 때 어느 디자인이 원조냐 저작권 소송도 벌인 역사도 있다. 

이 밖에 명품브랜드 IWC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으로 알려진 파일럿 와치도 스토바의 ‘플리거’(Fliege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토바 역시 노모스와 함께 고급 세공기술로 알려진 ‘블루핸즈’(Blue Hands) 기술이 탁월하다고 알려졌다. 블루핸즈 기술이란 시계의 바늘을 열 처리 해 아름다운 푸른색으로 변환 시키는 것을 말한다. 기술이 부족하면 푸른색이 고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저가 시계에서 블루핸즈를 보면 대부분 도금이거나 대충 열처리 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깔끔한 '블루핸즈' 노모스 탕겐테. 노모스 제공
 
융한스는 노모스와 스토바보다 더 오래전인 1861년에 설립됐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에서는 ‘국민시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지도를 자랑한다. 

융한스는 1960년대 초중반 바우하우스 출신의 디자이너 막스 빌과 협업해 미니멀리짐 디자인의 벽시계, 손목시계를 출시했다. 이 디자인은 오늘날 융한스의 아이덴티티로 내려와 ‘Max Bill by Junghans’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융한스 막스 빌은 다이얼에 글자 하나를 넣는 것도 절제한 간결미와 실보다 더 가느다란 시계 바늘이 인상적인 모델이다. 시계 유리가 평면이 아닌 돔 형태인 점도 단아함을 강조한다. 

융한스 시계는 독일 출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차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알음알음 인지도가 커지면서 융한스 막스 빌 모델은 생각보다 쉽게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독일 시계 브랜드 융한스(Junghans)의 대표적인 모델 '막스 빌'(Max Bill). 융한스 제공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애플 ‘아이팟’

물론 모든 독일 시계가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용성을 강조하는 독일의 문화와 비교적 저렴하고 기술적으로 훌륭한데다가 간결한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시계는 과거부터 오늘날에도 독일을 중심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계승한 다양한 제품들.
 
더 나아가 바우하우스 디자인은 오늘날 산업에서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바우하우스 디자인 영향을 받은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애플의 음악플레이어 ‘아이팟’(iPod)이다. 오늘날의 애플이라는 기업을 만드는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팟이 1950~1970년대 독일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라디오에서 나온 것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1950년대부터 유행했던 바우하우스 디자인 라디오와 20세기 애플의 아이팟(iPod) 비교. 아이팟이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계승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이팟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원형으로 된 ‘조작 휠’(Wheel)이 쉽게 조작할 수 있고 간결한 디자인을 뽑을 수 있는 바우하우스 정신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바우하우스가 나치에 의해 폐쇄되기 전 학교에 있었던 전설적인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역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또한 동시대의 추상화의 대부로 일컫는 피트 몬드리안(Pieter Mondriaan) 역시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의 그림과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영향을 끼쳤다.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알려진 몬드리안(상단)과 칸딘스키(하단) 작품의 일부.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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