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특집] 은하수는 못 봤지만 영월의 밤을 가슴에 새기다

윤성중 2023. 10. 1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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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 국도 야간 여행
영월 선돌전망대 야경. 옆에 보이는 바위 봉우리 중 오른쪽에 우뚝 선 바위가 선돌이다. 앞에 보이는 강은 동강이 아니라 '서강'이라고 불린다.

밤의 깊이를 잰다면 가을밤은 30cm쯤 된다. 종아리 언저리에서 찰랑댄다. 이것은 딱히 위협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 안을 자꾸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강원도 영월의 밤이 딱 그렇다. 깨끗한 영월의 밤 풍경에는 대도시의 화려함 속엔 없는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하다.

얼마 전, 나는 별을 보려고 밤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덩달아 지금껏 살면서 은하수를 실제로 본 적도 없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따져봤다. '도시에 살아서 그렇다'고 나는 나에게 변명했다. 도시의 밤은 대낮처럼 밝다. 게다가 먼지가 많다. 그것들이 온통 밤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오래 전부터 도시에서 별 보기를 포기했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등산전문지 기자가 아닌가? 지방의 산에 올라가서 밤하늘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지?'라고 나는 또 나에게 물었다. 속으로 또 이렇게 중얼댔다. '포기한 끝에 아예 잊고 살았다'고. 마음속에서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별마로천문대에서 본 영월읍 야경. 은하수를 보기 위해 올라갔지만 구름이 많아 보지 못했다. 영월읍 야경이 이를 대신했다.

은하수 보기를 포기한 사람이여, 영월로 가자

영월로 떠나기 전 숙소를 알아보다가 은하수 사진을 봐버렸다. '게스트하우스 영월'이라는 데서 은하수 투어를 진행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숙박객들이 은하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쫙 나왔다. 예뻤다. 나도 그 안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기사 기획안 제목을 곧바로 '영월 은하수 투어'로 고쳤다.

영월에서 은하수가 잘 보이는 지점이 어디일까? 영월 문화관광체육과 관광마케팅팀에서 일하는 오희영 주무관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단번에 여러 곳을 집어줬다.

"선돌전망대, 별마로천문대, 수라리재요!"

인터넷에서 지도를 열고 그녀가 알려준 지점을 찍었다. 코스를 연결하고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이들 모두 31번국도 위에 나란했다는 것이다(별마로천문대는 38번국도). 31번국도는 강원도 양구에서 시작해 부산까지 이어지는데, 그 길이가 627.6km에 이른다. 해안 드라이브코스로 유명한 7번국도와 포항쯤에 이르러 합쳐지는데, 영월의 유려한 경치를 관통하는 이 길 주변도 분위기가 꽤 좋을 것 같았다.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라리재도 야경 명소다. 지금 이곳엔 자동차나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다. 아래쪽으로 터널이 생긴 뒤부터다. 손전등을 들고 있는 사람은 영월 군청 오희영 주무관이다.
하이힐링원 정원에서도 별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잘 가꿔진 숲 덕분에 분위기가 아주 좋다.

양수열 사진기자와 나는 오후 4시쯤 영월에 도착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영월 깊숙이 들어갔다. 하지만 분위기가 수상했다. 하늘에 구름이 많았다. 양수열 기자는 걱정이 많았다.

"은하수 볼 수 있을까?"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은하수 말고도 영월의 밤 풍경은 분명 근사할 테니까. 우리는 상동읍까지 가서 촬영지를 대충 훑어본 다음 선돌전망대로 가기 위해 다시 영월읍으로 나왔다. 하늘이 어둑해졌다.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 나무 지팡이를 들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고향 영월에 막 도착한 '김삿갓'이 된 것 같았다. 도로에서 5분쯤 걸어 선돌전망대에 가니 그 기분이 더욱 선명해졌다. 곡선을 그리며 마을을 감싼 서강西江과 그 위로 솟은 산들이 근사한 풍경을 이뤘다. 기이하게 솟은 '선돌'보다 이 풍경이 눈에 더 들었다.

절벽 아래, 강변에 불이 켜진 집들도 정겨웠다. 그 집 마루에서 수박을 먹고 마당에 씨를 뱉는 꼬마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꼬마가 되고 싶었다. 꼬마는 아마 평생 그 정겨운 추억을 보물처럼 간직하면서 살 것이다. 해가 막 진 상태라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 머물다가 우리는 별마로천문대로 올라갔다.

천문대에 도착하니 저녁 7시였다. 천문대 바로 아래 차를 대고 1분쯤 걸어 올라가 봉래산 정상에 섰다. 인조 잔디가 깔린 넒은 터에 몇몇 사람이 짝을 지어 앉아 있었다. 별마로천문대는 힘들이지 않고 운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어떤 사람이 SNS에 '별마로 운해' 영상을 올렸는데, 이것이 '몇 십만 뷰'를 기록했다. 점점 유명해지고 있는 명소다. 어두컴컴한 산 앞자락 가운데에서 영월읍이 반짝였다. 하지만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다.

하이힐링원 자작나무숲에서 본 야경.

"구름이 낀 건가?"

하늘을 보니 군데군데 흰 구름이 보였다. "이른 저녁이어서 그렇다"고 판단한 우리는 정상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머물렀다. 끝내 은하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수라리재로 갔다.

지금 수라리재를 차로 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2013년 이 고개 아래로 '수라리터널'이 개통된 이후부터다. 영월에서 태백이나 동해로 가는 사람들은 모두 터널을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대신 매년 연초 이곳에서 해맞이 행사가 열리며 자전거 동호회에서도 이따금 이 고개를 라이딩 코스로 이용한다. 우리는 수라리재 아래쪽에 설치된 '나무 데크'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앉아서 은하수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사방은 온통 깜깜한 가운데 고요했다. 양수열 사진기자는 카메라 렌즈를 북서쪽으로 돌린 다음 계속 셔터를 눌렀다. 여기서도 은하수는 끝내 보지 못했다.

수라리재에서 내려와 하이힐링원으로 갔다. 하이힐링원은 강원랜드에서 만든 '산림힐링재단'이 운영한다. 라이프 디톡스와 치유, 힐링이 콘셉트다. 올해 추천 웰니스 관광지로도 선정됐다. 하이힐링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달빛트레킹'도 있다. 우리는 그 트레킹 코스에 마지막 희망을 걸기로 했다. 하이힐링원에 도착해 삼각대를 폈다 카메라 렌즈를 남서쪽으로 향했다. 건너편 목우산(1,066m), 쇠이봉(1,119m) 능선 위로 은하수가 떠있어야 했는데, 은하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계획했던 은하수 투어는 실패했다. 구름이 낀 날씨 때문이다. 대신 밤하늘은 질리도록 봤다. 얼굴이 짙은 파랑색으로 물든 느낌이었다. 질리도록 봐도 전혀 해가 되지 않는 것, 그것은 분명 영월의 깨끗한 밤하늘이었다.

은하수를 못 본 것이 아쉬워 다음날 새벽 별마로천문대에 다시 올라갔다. 마침 운해가 생겼다. 이곳은 등산 없이 차로 오를 수 있어 '등산 0분 운해 맛집'으로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강력한 LED 손전등

은하수 투어 등 야간 여행을 할 때 LED 손전등을 이용하면 좀 더 재미있는 일정이 된다. 우리는 페닉스(왼쪽, Fenix TK16)와 P20(Gen1-1) 손전등을 사용해 야간 촬영에 재미를 더했다. 둘 중 P20은 아주 강력한 집중광을 냈는데, 이번 영월 야경 사진에 나온 파란색 기둥이 이 손전등에서 나온 것이다. 마치 '광선검'을 연상케 했다.

영월 은하수 스팟

하이힐링원

주소 상동읍 섬지골길 113

숲 조성이 잘돼 있다. 밤이면 은은한 조명을 밝혀 분위기도 좋다.

솔고개 소나무. 소나무 모양이 어떤 제약회사의 로고로도 쓰였다.

솔고개 소나무

주소 산솔면 녹전리 81-1

제약회사 '솔표'의 로고 모델로 알려진 소나무. 야간에도 조명을 밝혀놔 여기서 은하수를 보기는 힘들 수 있다.

수라리재

주소 산솔면 화원리 산64-1

주변이 온통 깜깜해 은하수를 비롯해 별자리를 관찰하기에 적당하다.

별마로천문대. 봉래산 꼭대기에 있다. 이곳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쓰인다.

별마로천문대

주소 : 영월읍 천문대길 397

영월읍에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까지 차로 10여 분 걸린다. 주차장에서 산 정상까지 1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활공장이 나온다.

선돌전망대

주소 영월읍 방절리 769-4

내비게이션에 '선돌주차장'을 검색하면 된다. 주차장에서 선돌전망대까지 걸어서 5분 정도 걸린다. 일몰 명소 이기도 하다.

밤에 쓰면 좋은 모자

서늘한 가을밤, 머리 부분 체온 유지는 '나드리' 모자가 제격이다. 모자 전체가 보온성이 있는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목과 입 전체를 가릴 수 있는 덮개도 따로 결합할 수 있다.

영월에서 만난 사람들

영월군청 문화관광체육과 관광마케팅팀 오희영 주무관

'영월 트래블라운지' 만든 주인공

오희영 주무관은 영월이 고향이다. 군청에서 일한 지 7년째다.

Q 영월역 앞에 '트래블라운지'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공간인가요?

A

물품보관함, 핸드폰 충전, 공공 와이파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뚜벅이 여행자들에게 인가가 많은 공간이에요. 공간 크기는 작지만 여행 리플릿, 아기자기한 포토존까지 있어 관광객들에게 반응이 좋아요.

Q 최근엔 어떤 방식으로 영월을 홍보하고 있죠?

A

코로나 때는 여행을 제대로 못다니는 상황이라 영월의 풍경을 담은 감성 사진위주로 홍보했어요. 지금은 관광객들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카페, 맛집, 숙소 등을 직접적으로 홍보하고 있죠.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체험하는 기분이 들도록이요. 계속해서 다양하게 홍보하려고 노력해요.

Q 앞으로 어떤 걸 계획하고 있을까요?

A

서울 중심지에서 영월만의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고 싶어요. 지자체 단독으로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 건 못 본 것 같거든요. 영월에 흥미로운 관광지가 많아요. 이런 것들을 캐릭터화해서 또 예쁘게 꾸미고 싶어요.

영월지역 31번국도의 끝자락에 하이힐링원이라는 숙박업소가 있다. 리조트나 호텔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왜냐하면 이곳은 '치유'를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을 숙박객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힐링원 프로그램 운영팀 유도현 팀장(왼쪽), 차미나 프로

"영월은 힐링하기에 최적인 곳이에요"

Q 하이힐링원은 언제 생겼죠?

A

2019년 11월에 생겼습니다. 강원랜드 산하 '산림힐링재단'에서 운영하고 있고요. 사회공헌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숙박객들의 인터넷, 스마트폰 등 미디어를 포함해 각종 행위중독을 예방하고 심신을 치유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Q 왜 하필 영월에 생겼을까요?

A

폐광지역 폐광법 때문이에요. 여기 상동에 옛날에 광산이 있었죠. 텅스텐을 발굴했고요. 당시 3만 명이 살았던 마을인데 광산이 없어지면서 거의 폐허가 됐고요. 지역을 살릴 목적이기도 합니다.

Q 하이힐링원의 모티브가 된 곳이 있을까요?

A

미국 쿠퍼 센터가 모티브예요. 우리도 웰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죠. 저를 비롯해 여기 직원들은 요가, 음악치료 등 웰니스 전문가들이에요. 영월은 웰니스에 최적인 장소입니다. 하이힐링원에 들러 푹 쉬었다가 가세요!

게스트하우스 영월 송지환 대표

"은하수 투어는 여기밖에 없어요"

영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여행 프로그램 '은하수 투어'는 게스트하우스 영월에서 진행하면서 많이 알려졌다. 지금은 인기가 많아 예약하기가 힘들다.

Q 영월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 지 몇 년째죠?

A

2017년 2월부터 했으니까 6년이 넘었네요. 이전에 영월과 저는 아무 관련 없었어요. 우연찮게 영월에 왔다가 좋았던 경험이 있어요. 관광 시스템이 잘되어 있는데 그것에 비해 관광객이 적은 것이 의아했죠. 그래서 여기서 숙소를 운영해 보자고 결정했습니다.

Q 은하수 투어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A

어렸을 때부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은하수 투어 같은 경우 '바이트레인'이라는 여행 카페도 운영 중인데, 여기서 주로 하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진행하게 됐죠.

Q 은하수 투어는 날씨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요?

A

맞아요. 여름 장마기간에는 거의 못 해요. 장소나 시기가 한정적이어서 영월 바깥 지역에서 진행할 때도 많아요. 스팟은 공개를 안 하는 편입니다. 아마 은하수 투어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곳은 국내에서 유일할 거예요.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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