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지방소멸 해법 떠오른 다주택자 규제…패러다임 바뀌나

서미숙 2023. 10. 1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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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다주택자 규제 '집값 상승 주범' vs '임대주택 공급자'…정권 따라 오락가락
"지방은 3주택부터", "농산어촌 1주택 규제 없애야"…국토연·원희룡 화두 던져
다주택자 중과완화 법안 국회 계류, 통과 불투명…명확한 방향 설정 선행돼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다주택자 규제는 집값 안정 또는 시장 활성화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쓰였다.

집이 많은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주택시장 상황이나 정권의 이념에 따라 세금 규제를 묶었다 풀었다 하면서 수요 조절을 해온 것이다.

최근 전문가와 당국자들 사이에 이 다주택자의 개념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행 부동산 관련 세법상 2주택부터 중과 대상에 포함되지만. 서울 등 과밀지역을 제외한 지방은 3주택으로 주택 수를 넓히거나 농·산·어촌 주택은 중과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이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주택자 규제, 집값 변동·정권 이념 따라 '오락가락'

흔히 '많다'는 뜻의 '다'(多)는 2개보다는 최소 3개 이상일 때 붙여야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등 현행 부동산 관련 세법에서는 지역에 따라 2주택자부터 다주택자로 간주해 차별이 주어진다.

1가구 1주택자는 거주 목적의 '실수요자'인 만큼 세금을 깎아주지만, 2주택 이상 보유자는 거주하지 않는 집을 산 '투기수요'로 간주해 불로소득에 대해 세금을 중과하거나 감면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이다.

주택 장기 보유자에게 양도세의 최대 80%까지 깎아주는 장기보유특별공제의 경우 규제지역인 조정대상지역에서는 1주택자에게만 혜택이 주어지고, 2주택자는 규제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최대 30%까지만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다주택자의 세금 중과는 집값 상승기와 정권의 이념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규제 수단으로 활용됐다.

양도소득세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3주택자부터 세금이 중과됐는데,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오르자 2006년 8·31대책을 통해 2주택자로 중과 대상이 확대됐다.

당시 2주택 보유자가 집을 팔 때는 일괄적으로 양도차익의 50%를, 3주택 이상 보유자는 양도차익의 60%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이후 주택시장이 침체되자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규제를 폐지됐다. 당시에는 다주택자를 규제 대상이 아닌 '민간 임대주택 공급자'로 보고 집 사는 데 걸림돌을 모두 없앴다.

뒤이어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다시 다주택자 규제에 나섰다. 이전보다 한층 강화된 규제였다.

김현미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일성부터 "집값 상승의 주범은 다주택자"라며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양도세 중과를 부활,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에 대해서는 기본세율(6∼45%)에서 20%포인트, 3주택 이상에 대해선 30%포인트를 각각 가산해 양도차익을 환수했다.

종합부동산세도 더 강화했다. 조정대상지역의 2주택자부터 일반세율(0.6∼3%)이 아닌 1.2∼6%의 중과세율을 적용했다.

취득세 역시 투기 수요의 진입을 원천 차단한다는 목적으로 1주택자(1∼3%)와 2주택자(최대 8%), 3주택자(최대 12%)의 세율을 차등하는 등 전방위에 걸쳐 다주택자를 압박했다.

'살지 않는 집'은 무조건 투기로 간주해 철저한 규제 대상이 된 것이다.

발언하는 원희룡 장관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9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9.21 superdoo82@yna.co.kr

"지방은 3주택자부터 규제", "농산어촌 1가구 1주택 제외"…변화 예고?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과세의 근간이 되는 다주택자의 범주를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연달아 제기돼 눈길을 끈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물꼬를 텄다.

연구원은 지난달 7일 공개한 '다주택자 규제정책의 전환 필요성과 과제'라는 정책 보고서에서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다주택 수의 기준을 차등적·순차적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통상적 다주택자의 기준을 현행 2주택에서 3주택으로 확대하되, 인구 및 자가점유율, 지역 쇠퇴 상황을 감안해 선별적으로 적용하자는 것이다.

연구원은 비수도권 지역이나 1천명당 주택 수가 많은 지역부터 다주택자 개념을 3주택으로 완화하고, 점차 적용 범위를 넓히되 특별시와 광역시, 인구 50만명 이상 대도시는 그대로 2주택을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국토연이 지난해 전국 152개 시·군·구 국민 6천6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주택을 몇 채 이상 보유할 경우 다주택자로 보고 세금을 중과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3채 보유자'라는 응답이 48.3%로 1위를 차지했다.

2채부터 다주택자로 봐야 한다는 응답(44.2%)보다 4.1%포인트 높은 수치다.

연구원은 여기에 더해 주택 수가 아닌 주택가격(공시가격)을 반영한 다주택자 개념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의 공시가격 20억원짜리 주택과 지방의 공시가격 4억원짜리 주택을 동일 주택 수로 간주해 규제하는 것이 형평에 맞느냐에 관한 문제다.

국토연이 띄운 화두를 국토부 원희룡 장관이 이어받았다.

원 장관은 지난달 21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농·산·어촌에 대해서는 '1가구 1주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수도권 인구가 지방에 집을 갖도록 장려해 4일은 도시(4都)에서, 3일은 농·산·어촌에서 생활(3村)을 하고, 단순한 주민등록인구 개념이 아니라 생활인구 개념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국토연이 제언한 다주택자 범주에서 실제 규제를 풀어야 할 대상을 좀 더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도 수도권·광역시·특별자치시 등을 제외한 지방의 3억원 이하 주택(부수 토지의 기준시가 합산)은 1가구 2주택에서 제외해 양도세 중과가 되지 않고, 종부세 산정 시 주택 수에서도 빠진다.

원 장관의 발언은 농·산·어촌에 대해선 주택 수 산정에서 제외해 세금 중과 대상에 넣지 말고 별장처럼 쓰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원 장관은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 집값 급등과 같은 문제를 낳고, 이로 인해 결혼·출산·사회생활 포기와 국가 성장 제한으로 이어진다"며 주택 수요 분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부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의견 모두 도시 집중과 지방 소멸을 막고, 농·산·어촌을 살리기 위해 다주택자 기준을 풀어주자는 면에서 궤를 같이한다.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거공약 등장 가능성…현행 다주택자 규제부터 명확한 방향 설정해야

국책연구기관과 국토부 수장의 연이은 의견 개진으로 앞으로 다주택자 과세와 관련한 정책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단기로는 얼마 남지 않은 내년 총선, 장기적으로는 다음 대선의 공약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서는 지방 주택 수 규제를 풀어주면 일단 지방을 중심으로 늘고 있는 빈집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 부처별 조사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빈집은 모두 13만2천52채로, 도시지역에 4만2천356채, 농촌지역에 6만6천24채, 어촌지역에 2만3천672채가 있다.

국토부는 앞서 2021년에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을 만들고 올해 6월에는 국토부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가 공동으로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빈집 실태 조사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 빈집 관리에 착수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 이후 농지취득자격 심사, 주말체험영농목적 취득 제한 등으로 거래가 급감해버린 농지 거래도 살아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농·산·어촌이나 지방 다주택 수를 늘려주는 것에 앞서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정책 방향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간 정부가 집값과 수요 조절 수단으로 양도세, 종부세 등을 중과하고 철회하는 것을 반복하는 사이 주택 시장은 심각하게 왜곡됐다.

다주택자 규제가 없었던 2015년에는 전세를 낀 갭투자가 횡행하며 작은 목돈만 생기면 너도 주택 구입에 나섰다.

그 결과 2015년 주택 거래량은 120만건에 육박해 2006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이후 집값 거품을 만들었다.

반대로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지난해는 금리 인상까지 더해져 전국의 주택 거래량이 절반에도 못미치는 50만8천건에 그치는 등 '거래 절벽'이 심화했다.

공시가격이 급등한 상태에서 다주택자들이 막대한 종부세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팔려고 해도 최대 82.5%(지방세율 포함)에 달하는 양도세가 걸림돌이 됐다.

이사 수요 급감으로 가구·인테리어·이사·중개업 등 연관산업까지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과도한 세금은 '똘똘한 한 채' 선호를 부추겨 강남 아파트를 찾는 원정 매입 수요 증가로 이어졌고, 지방은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했다.

조변석개(朝變夕改)식 규제를 반복한 결과다.

정부는 올해 들어 과도한 세금을 정상화하겠다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와 종부세, 취득세 중과세율을 없애거나 낮추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여야 대치 속에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은 한 건도 없다.

작년 5월부터 규제지역 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를 시행하고, 공시가격과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보유세를 낮춰 주택 거래를 유도하고 있지만 임시방편이다.

그 사이 서울 등 일부 지역은 규제지역 해제와 분양가 상승, 기준금리 동결 등을 틈타 집값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현 정부 입장에서도 규제를 완전히 풀기에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되면서 다주택자 세금 완화는 미래를 가늠하기가 어렵게 됐다.

농·산·어촌 주택 규제를 푸는 것은 지방 소멸을 막고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지만, 자칫 도시지역의 투기수요가 지방의 집값과 땅값을 올리는 게 아니냐고 경계하는 목소리도 크다.

설익은 선거공약으로 풀리기 전에 집값 변동이나 정권에 따라 바뀌지 않을 확고한 다주택자 기준과 규제의 범위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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