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를 걷다] 등산만 하기엔 아까운 '문화재 명산'

강윤성 2023. 10. 1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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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 서운산(548m)
서운산 북동쪽 기슭에 자리한 석남사 풍광. 보물 영산전(제823호)과 삼층석탑, 층을 이룬 계단 너머로 서운산 자락이 첩첩이 펼쳐진다.

가을철 산사 산행은 한 편의 아름다운 마음의 시를 읊는 것과도 같다. 산에 드는 것만으로도 몸이 정화되고, 사찰에 들어서면 영혼조차 씻기는 느낌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계절을 음미할 수 있는 산사 산행지로 안성 서운산만큼 안성맞춤인 곳이 있을까.

경기도 안성시와 충북 진천군의 경계에 자리한 서운산(548m)은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단풍나무숲이 울창한 서운산 자락엔 10여 개의 사찰이 흩어져 있다. 그중 서운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남사당의 본거지인 청룡사와 드라마 '도깨비' 촬영 장소인 동쪽의 석남사가 유명하다.

또한 산중에는 '조망이 탁 트인다'는 탕흉대, 온화한 미소가 아름다운 석조여래입상, 돌부처와 용이 같이 살았다는 용굴, 좌성사 가는 길의 환상적인 단풍나무숲터널, 태조 왕건이 3년간 은거했다는 은적암, 발가락이 앙증맞게 양각된 5.3m의 마애여래입상 등 이야기보따리가 한가득이다. 게다가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홍계남과 이덕남 장군이 축성한 길이 700m의 토성인 서운산성이 남아 있어 역사의 흔적도 느낄 수 있다.

금광루 아래에서 바라본 석남사 전경. 대웅전을 향한 층을 이룬 높다란 계단이 볼 만하다. 맑은 가을빛을고스란히 받아 영롱한 기운이 사찰에 가득하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풍등 날린 석남사

지난 9월 2일 경기도 최남단에 자리한 서운산 석남사에 들어섰다. 석남사를 원점회귀 산행 기점으로 삼아 정상에 오른 후 탕흉대, 좌성사, 은적암에 이르는 남쪽 산자락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정상에 다시 올라 마애여래입상 코스로 하산하는, 나름 알차게 산사를 둘러보는 산행 계획을 세웠다.

680년 고승 석선이 창건한 석남사는 청룡사, 칠장사와 더불어 안성의 3대 사찰로 불린다. 석남사의 일주문격인 금광루에서 바라본 석남사 대웅전은 진중하면서도 근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높다란 계단이 층을 이루며 쭉 뻗어나간 그 끝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석가모니불이 내려다본다. 계단 양 옆에는 영산전과 몇 개의 전각이 자리한다. 1562년에 건립된 영산전(보물 제823호)은 석가모니불과 오백나한이 함께 모셔져 있는데, 그 표정이 각양각색이고 색감이 매혹적이다.

영산전 내부 전경. 석가모니불과 각양각색의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다.

계단 중간에 올라서면 고려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남사 석탑(향토유적 제19호)이 세워져 있는데, 처마를 갖춘 옥개석 위에는 돌탑이 한 아름씩 쌓여 있다. 사찰을 방문한 이들이 차곡차곡 쌓은 작은 소원의 흔적일 터다.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본 조망은 깊디깊은 산중 사찰의 면모를 보여 준다. 층을 이룬 계단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사찰은 서운산의 첩첩 산줄기와 조화를 이룬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이 계단에서 풍등을 날렸다고 한다.

석남사에서 서운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등산로는 곧장 마애여래입상이 자리한 왼쪽의 계곡길과 오른쪽의 임도로 나뉜다. 서운산을 찾는 대부분의 등산객은 단풍나무숲이 울창한 완만한 임도를 따라 산을 오른다. 길은 끊임없이 굽이지며 정상까지 완만하게 이어진다. 정상을 800m쯤 남겨둘 무렵 기존 등산로와 신규 등산로 안내판이 나오는데, 그 지점부터 길이 다소 가팔라지며 허벅지가 뻐근해진다. 이윽고 산마루가 보이고 서운산 정상에 선다.

서운산 정상 데크.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왔다'는 곳이다. 능선이 부드럽고 산세가 완만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정상의 전망데크에 서니 북서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야트막한 산들이 구릉지대를 형성한 곳에 안성 제4 일반산업단지, 공도읍, 진령봉, 안성 제2·3 일반산업단지, 안성시청 등이 내려다보인다.

서운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완만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정상 주변의 데크와 쉼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왁자지껄 떠들며 쉰다. 기타 반주에 노랫소리가 숲을 울리기도 한다. 막걸리 잔술을 파는 상인들 주변은 더욱 떠들썩하다.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온 금북정맥의 산

서운산은 금북정맥의 산이다. 금북정맥은 칠장산(492.1m)에서 한남정맥과 갈라져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후 칠현산(516.5m), 덕성산(521.8m)을 일구고 배티고개, 서운산, 엽돈재를 거쳐 위례산(523m)과 성거산(573.4m)으로 이어지다 태안반도 지령산에 이르러 산세를 끝낸다. 그 길이가 240km에 이른다.

탕흉대에서 좌성사 가는 길에 만난 서운 북산리 석조여래입상. 온화한 미소가 산행하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 전기로 추정된다.

서운산은 동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금북정맥뿐만 아니라 서너 개의 산줄기가 동서남북으로 휘저으며 복잡한 산줄기를 이룬다. 마치 청룡이 한바탕 용틀임을 한 모양새다. 정상만 올라섰다가 곧장 하산하면 서운산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없다. 이 산 정상과 서쪽 봉우리격인 탕흉대에 이르는 남쪽 산자락에는 문화유적지가 꽤 많이 흩어져 있다. 산중 사찰 좌성사와 은적암을 비롯해서 홍계남 장군이 임진왜란 때 진지를 구축한 서운산성과 용굴, 석조여래입상 등은 진정 이 산의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서쪽 봉우리인 탕흉대로 향한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능선길이다. 도중에 은적암과 좌성사로 내려서는 길이 복잡하고 어지럽게 나 있지만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딱히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서운산 서쪽 끝에 위치한 바위턱에 도착하니 '앞이 확 트인 높다란 둔덕'을 뜻하는 탕흉대다. 자연적인 바위 봉우리에 인위적으로 돌과 흙으로 축대를 쌓아 올린 형태다. 이곳 역시 정상과 마찬가지로 북서쪽으로 조망이 펼쳐진다. 다만 안성을 비롯한 평택 너머로까지 더욱 광대하다. 바닥의 바위에는 '탕흉대'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에 서면 "모든 희로애락이 가슴속에서 속 시원하게 바람과 함께 아득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계곡 하산길에 만난 구름다리. 울창한 숲과 계곡이 가을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난다.

탕흉대를 내려선다.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길을 벗어나 좌성사로 향한다. 수풀과 잡목이 우거진 한적한 산길이다. 지대가 평평한 곳에 도착하니 거대한 바위 아래 용굴이 보이고, 인근에는 샘터도 있다.

원시림을 헤치고 가니 너른 터에 팔각지붕을 이룬 서운정이 서 있고, 그 뒤편에서는 석조여래입상이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이곳은 의병장 홍계남 장군과 이덕남 장군이 쌓은 서운산성의 한가운데로 지휘본부인 장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홍계남 장군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쳤던 격전의 현장이지만 현재는 수풀만 우거져 있을 뿐이다.

서운정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니 숲 너머로 조망이 시원스럽게 터지는 곳에 좌성사가 나온다. 한적하고 조용한 사찰이다. 좌성사에서 은적암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가을 햇살을 머금은 시퍼런 단풍나무숲이 거대한 터널을 이루며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10월 말 단풍이 들면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될 것이다.

고려 건국 초기에 태조 왕건이 3일간 은거했다는 은적암. 산신각과 삼불광선원 등 전각의 모습이 독특하고 이색적이다. 산신각 내부에는 샘터도 있다.

태조 왕건이 3년간 은거했다는 은적암

청룡사 갈림길을 지나 은적암으로 향한다. 그대로 하산했더라면 한걸음에 청룡사에 닿았을 것이다. 청룡사는 남사당의 본거지다. 그 남사당패를 이끌던 여장부 바우덕이가 살던 불당골과 사당 등이 청룡사 인근에 있다. 짧은 고개를 두어 개 넘어서니 은적암이다.

서운산 정상 남쪽 7부 능선쯤에 자리한 은적암隱寂庵은 태조 왕건이 3년간 은거했다는 곳이다. 현재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의 건물만 남아 있는데, 건물 형태와 색감이 이색적이고 강열하다. 게다가 산신각 안에는 특이하게도 샘터가 자리한다.

5.3m의 암벽에 양각된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넓적한 얼굴의 눈, 코, 입이 두텁고 두 귀가 어깨에 닿을 듯 길게 늘어졌다. 통일신라 마애불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마애불로 여겨진다. 마애여래입상의 발가락이 앙증맞다.
5.3m의 암벽에 양각된 석남사 마애여래입상. 넓적한 얼굴의 눈, 코, 입이 두텁고 두 귀가 어깨에 닿을 듯 길게 늘어졌다. 통일신라 마애불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마애불로 여겨진다. 마애여래입상의 발가락이 앙증맞다.

은적암에서 서운산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길이 제법 가파르다. 정상에 오른 후 동쪽으로 뻗어 내린 금북정맥 마루금을 타다가 배티고개 갈림길에서 석남사를 향해 내려선다. 예상치 못한 가파른 능선길이다. 길은 능선을 벗어나 계곡을 만난 후에야 경사가 누그러진다. 시원스런 물줄기를 따라 석남사에 도착할 무렵, 마애여래입상 이정표가 나온다. 길에서 50여 m 떨어진 오른쪽 산기슭에 올라서니 암벽에 5.3m에 이르는 마애여래입상이 양각돼 있다. 넓적한 얼굴에 눈코입이 두텁게 표현돼 있고, 두 귀는 어깨에 닿을 듯 늘어져 있다. 특히 하단 연꽃 문양의 대좌 위에 올라간 뚜렷한 모양새의 10개의 발가락은 너무도 귀엽고 앙증맞게 생겼다. 이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것으로 여겨진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민초들의 애환을 어루만져 주었을까. 서운산 산행 내내 예상치 못한 숨겨진 많은 보물을 발견한 기쁨에 가슴이 뿌듯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산행길잡이

서운산瑞雲山은 경기도 안성시와 충청북도 진천군 경계에 솟은 금북정맥의 산이다. 서운산은 동쪽 배티고개에서 남쪽 엽돈재로 뻗어 내린 금북정맥뿐만 아니라 서너 개의 산줄기가 동서남북으로 휘저으며 복잡한 산줄기를 이룬다. 마치 청룡이 한바탕 용틀임을 한 모양새다.

산중에는 석남사, 청룡사, 좌성사, 은적암 등 10여 개의 사찰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홍계남과 이덕남 장군이 축성한 토성인 서운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앞이 확 트인 넓고 넓은 곳의 앞이나 높다란 둔덕'을 뜻하는 탕흉대, 팔각지붕을 이룬 서운정, 온화한 미소가 돋보이는 서운 북산리 석조여래입상, 돌부처와 용이 같이 살았다는 용굴, 5.3m에 이르는 마애여래입상 등 문화유적지가 즐비하다.

서운산은 능선이 부드럽고 산세가 완만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오를 수 있다. 임도나 다름없는 길이 산자락을 휘감고 있으며, 흙길은 푹신푹신하다. 대표적인 들머리는 석남사와 청룡사에서 1시간이면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정상과 탕흉대를 중심으로 남쪽 산자락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적지 답사를 추가하면 더욱 알찬 산행을 할 수 있다. 다만 이 구간은 길이 복잡하고 어지럽게 나 있어 헷갈릴 염려가 있으니 갈림길마다 설치된 이정표를 꼭 확인하면서 산행하도록 한다.

교통

서울 - 경부고속도로 - 안성JC - 평택제천고속도로 - 남안성IC - 325번 국도- 서운산자연휴양림/석문사

맛집

서운산자연휴양림 입구에 가마솥(0570-1388-8789, 소머리국밥), 산마루식당(031-677-5618, 한방백숙), 배티고개 방면에 배티장금이(043-536-3335, 갈치조림), 청룡사 입구에 청룡원조매운탕(041-585-5598, 민물새우매운탕) 등이 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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