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5초’ 마라톤 신기록 달성까지... 일주일에 300㎞ 달렸다

김민기 기자 2023. 10. 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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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켈빈 킵툼이 8일(현지시각) 일리노이주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열린 2023 시카고 마라톤에서 세계기록(2시간00분35초)을 세운 뒤 자축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이제 36초. 마라톤에서 인간 한계를 상징한다는 1시간대 진입까지 남은 장벽이다. 케냐의 켈빈 킵툼(24)이 8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2023 시카고 마라톤에서 42.195㎞를 2시간00분35초에 달렸다. 100m를 평균 17.1초에 주파한 셈이다. 작년 9월 엘리우드 킵초게(39·케냐)가 베를린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01분09초를 34초 앞당겼다.

킵초게는 이미 2시간대를 무너뜨린 적이 있다. 201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벤트 경기에서 1시간59분40초를 기록한 것. 당시엔 기록을 위해 환경과 구조를 설계했다. 달리는 데 적합한 습도나 온도를 맞추기 위해 출발 시간을 정하지 않고 기상을 살폈다. 공기저항도 적은 시간대를 골랐다. 달릴 때도 페이스메이커들이 킵초게 앞에서 V자 대형을 유지하며 달렸다. 바람막이 역할을 한 것이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이 때문에 이 기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킵초게는 “한계는 없다”고 공언했고, 조만간 킵초게가 ‘서브2′(2시간대 이하 기록)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픽=이지원

그런데 킵툼이란 탁월한 재능을 지닌 젊은 선수가 급부상하면서 기록 경쟁에 불이 붙었다. 킵툼은 하프마라톤(21.0975㎞)을 주로 뛰다, 풀코스에 데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작년 12월 발렌시아 마라톤에서 첫선을 보여 2시간01분53초라는 놀라운 기록을 냈다.

그리고 올해 4월 런던 마라톤에선 2시간01분25초로 한 번 더 기록을 갈아치웠다. 당시 기준 킵초게에 이어 역대 2위였다. 그리고 불과 세 번째 출전인 이번 대회에서 마라톤 역사를 새로 썼다. 지난해 시카고 마라톤 우승자 벤슨 키프루토(32·케냐)는 2시간04분02초로 2위를 했다.

킵툼은 케냐 체프코리오에서 양과 염소를 키우며 자랐다. 체프코리오는 해발 약 2550m에 있는 마을. 고산지대에서 자란 이들이 탁월한 심폐 기능을 가져 마라톤에 유리하다는 속설을 다시 입증했다. 2017·2019 뉴욕 마라톤 우승자이자 올해 2시간 4분대 기록을 쓴 제프리 캄워러(31)도 이 마을 출신이다.

킵툼은 르완다 출신 제르베 하키지마나(36) 코치를 만나 본격적으로 마라톤 선수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하프마라톤 국제대회에 나섰는데, 이후 코로나가 확산하자 케냐에서 마라톤 풀코스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가 서서히 마무리되고 마라톤 대회가 속속 열리자 그간 갈고닦았던 기량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켈빈 킵툼./AFP 연합뉴스

킵툼은 지독한 ‘연습 벌레’다. 주당 250~280㎞를 달리고, 때론 300㎞ 이상을 뛸 때도 있다. 먹고, 자고, 달리는 것 외에는 다른 일상은 없다고 한다. 하키지마나 코치가 “이러다가는 선수 생명이 조기에 끝날 수 있다. 정말 한 달은 쉬어야 한다”고 염려할 정도다. 다만 강훈련을 소화하고도 좀처럼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 등 그의 최근 컨디션은 절정이다. 과거 많은 세계적 선수가 30세를 넘겨 신기록을 작성했던 걸 감안하면, 1999년생 킵툼이 기량을 더욱 끌어올릴 가능성은 커 보인다.

최근 세계 신기록 경신 추세는 고무적이다. 킵초게는 2018년 2시간 01분 39초에 주파했고 작년 신기록을 다시 새로 작성했다. 그런데 킵툼이 이를 1년 만에 깬 것이다. 이제 스포츠계 관심은 1시간대를 넘어 어디까지 이 한계를 단축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1991년 한 스포츠학자가 마라토너 경기력 3대 요소(최대 산소 섭취량. 젖산 역치, 경제적 달리기)를 고려해 생리학적 최대치를 계산해보니 1시간 57분 58초가 나왔다. 이걸 뛰어넘을 수 있을지 관건이다.

여자부에서는 시판 하산(30·네덜란드)이 2시간13분44초로, 대회 신기록(종전 2시간14분04초)이자 여자 마라톤 역대 2위 기록으로 우승했다. 트랙 중장거리에서 이미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하산은 올해 4월 런던 마라톤에서 처음 풀코스에 도전해 2시간18분33초로 우승하더니, 두 번째로 치른 풀코스에서는 개인 기록을 4분49초나 단축하며 정상에 올랐다.

한국 마라톤으로선 이 광경을 마냥 기분 좋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이봉주가 2000년 2시간 07분 20초로 한국 기록을 쓴 이후 23년 동안 이를 넘어선 마라토너는 나오지 않았다. 1985년 카를로스 로페스(포르투갈)가 2시간 07분 12초로 세계 신기록을 썼을 때, 한국 기록은 이홍열의 2시간 14분 59초로 7분 47초 차이가 났다.

1988년 벨라이네 덴 사모(에티오피아)가 2시간 06분 50초에 내달렸고 이 기록은 약 10년 유지됐는데, 이봉주는 1998년 4월 2시간 07분 44초를 기록했다. 그해 9월 호나우두 다 코스타(브라질)가 2시간 06분 05초를 기록하며 격차는 벌어지긴 했지만, 잠시나마 세계 기록과 1분도 차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한국 마라톤이 정체된 사이, 세계는 빠르게 앞서나갔다. 전 마라톤 국가 대표 김원식 해설위원은 “한국인 신체 조건은 마라톤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키가 크면 오히려 공기저항을 더 많이 받는다”며 “젊은 유망주들이 고산지대 훈련을 반복하면 충분히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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