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어디로 갈까[서중해의 경제 망원경](19)

2023. 10. 9.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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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AFP|연합뉴스



한국은 올해 추석과 대체휴일과 개천절로 이어지는 엿새의 긴 연휴를 가졌다. 추석은 농경사회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친족 모임의 성격에서 휴식의 시간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20~29세 세대의 63%가, 그리고 20~39세 세대의 55%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MZ세대는 과반수 이상이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는데, 세대가 바뀌면서 전통과 관습에 덜 얽매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어떤 변화보다 인구 구성의 변화와 이에 수반되는 인식의 변화는 사회경제체제에 근본적인 변화를 촉발한다. 중국의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전망을 이러한 관점에서 전개해볼 수 있다.

귀신도 정착할 수 없는 곳

“내가 한 번은 만찬모임에서 미국인들은 역사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표명한 적이 있다. 그러자 모든 (미국인) 친구들은 특히 조상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보여줌으로써 나의 오해를 바로잡으려고 애썼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나는 전통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다소간 의식적이고, 이지적이고, 인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와 (즉 중국인과) 같지 않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미국인들에게는 귀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은 중국의 대표적 사회학자 페이샤오퉁(1910~2005)의 에세이 <귀신 없는 세상>에 나오는 구절이다. 페이샤오퉁은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1933년 중국 옌징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의 런던정경대로 유학을 가서 1938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후 칭화대학 등 여러 대학에 재직했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우파로 비판받아 하방되기도 했지만, 개혁·개방 후에 복권돼 중국 정협 부주석, 전인대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여러 중국대학에 사회학과 신설을 주도했다. 그의 주요 저작은 영어와 일본어 등으로 번역됐고 영국의 토마스 헉슬리상, 일본의 아주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1943년에 미국 국무부의 초청으로 1년간 미국을 방문했는데, 이때의 미국 생활 경험을 여러 매체를 통해 글로 남겼다. 몇 편의 에세이는 후에 영어로 번역됐다. 그중의 하나가 <귀신 없는 세상>이다.

이 글에서 그는 미국 집에 살면서 느낀 심리적 불안감에 대해 적었다. 그의 불안감을 유발한 것은 귀신의 부재였다. 미국 체류 중에 방문한 동료교수들의 집에는 조상의 사진이 거실과 계단에 걸려 있지만, 조상은 사진 속에 기록으로 존재한다. 반면 중국 가정에서 조상은 조상신이라는 귀신으로 존재한다. 그는 어릴 때 기억을 떠올린다. 비몽사몽 간에 나타난 돌아가신 할머니는 손자의 점심을 차려주려 고향집 한편에서 부엌으로 나온다. 그는 조상신이 사는 중국의 가정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미국의 가정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고 술회한다. 이 단순한 가정집의 대조는 두 종류의 사회를 드러낸다. 중국에서 사람들에게 고향은 사회관계에서 중요한 준거이고, 조상신이 살아 있는 가족의 역사는 국가 역사와 연결돼 있다. 중국사회에서 개인은 전체로부터 주어진다. 미국사회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새로 정착하며 미국이라는 나라를 기회의 땅으로 인식한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국가를 구성한다.

노동절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4월 28일 중국 상하이 훙차오 기차역에서 수많은 여행객들이 열차 탑승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페이샤오퉁의 에세이는 개인의 경험세계에 투영된 사회적 전통으로서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역사적 연원이 매우 멀고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이 둘 사이의 대비는 현재의 중국과 미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전체주의적 사회 전통이라는 관점에서는 중국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에서 방점은 전체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에 있고, 시장경제는 부수적이라는 것은 당연하게 이해될 수 있다. 지난 칼럼(미국의 오판 ‘서중해의 경제 망원경’ 18)에서 인용한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은 중국의 전통과 이에 기반을 둔 사회경제체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중국에도 개인적 자유주의가 이내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방적인 미국의 관점일 뿐이었다. 되돌아보면 WTO 가입을 두고 미국과 중국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다.

비록 최근에는 탈세계화 움직임도 부상하고는 있지만, 세계화의 커다란 후퇴는 상상하기 어렵다. 디지털 경제로 이행하고 있는 현재의 기술-경제 패러다임은 상호의존을 전제로 발전하고 있으며, 상호의존에서 후퇴하는 것은 경제적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거미줄처럼 얽혀 서로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세계경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미국과 중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연원에서부터 달라 상당기간 평행선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사회경제체제에도 경제발전의 결과로서 내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변화의 양상을 <귀신 없는 세상>을 통해 전망해보자.

“귀신이 어떻게 미국 도시에 정착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조수처럼 움직인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는 말할 것도 없고 일정한 장소와 영구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장소에 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것이 미국에서의 생활이 불편했던 또 다른 이유다.” 페이샤오퉁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새로 정착하는 생활패턴이 지배적인 미국사회의 단면을 지적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장소와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귀신도 정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통과 유대를 존중하는 깊은 인간관계보다는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사회관계가 지배적인 개인주의 사회의 모습이 당시의 미국사회였다.

개인중심사회로 변하는 중국

중국도 변하고 있다. 개인과 가족의 삶과 사회적 행위는 전통사회에서 개인중심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이를 촉발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가 도시화다. 중국의 총인구 대비 도시인구는 1960년 16%에서 2020년 61%로 증가했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주택 구입이 더 용이해지면서 중국에서는 한 지붕 아래 3세대가 사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결혼 연기, 출산 지연 등 인구 구조적 요인과 맞물려 1인 가구는 2002년 8%에서 2018년 17%로 증가했다. 중국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인구는 약 2억4000만명으로 추정되며 매년 0.5%씩 증가한다고 한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도시화는 더 진행될 것인데, 도시에서의 삶이 지배적일수록, 대가족에서 개인이 분리될수록 그리고 유동인구가 많을수록 장소와의 유대관계는 지속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귀신이 정착하기도 어렵게 된다. 외형은 그대로일지라도 중국사회도 내부에서 변하고 있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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