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에서 이게 된다고? 올가을에도 ‘빈티지 인테리어’는 계속된다

김지윤 기자 2023. 10.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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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물건? 귀한 새것!
인테리어 애호가의 종착지, 빈티지의 매력
올가을에도 빈티지 인테리어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서윤 공간 디렉터(@lebenz_seoyoon)의 공간.

인테리어는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척도 중 하나다. 특히 결혼과 이사철이 맞물린 가을은 해당 시즌의 트렌드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기다. 최근 감각적인 실내장식으로 주목받는 공간에 공통으로 언급되는 단어는 ‘빈티지’다. 인테리어 애호가들 사이에서 ‘돌고 돌아 결국엔 마주하게 된다’는 빈티지의 매력은 무엇일까.

초록 대문 집에 놓인 비밀의 장

아차산 자락,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덕선이네 골목이 떠오르는 붉은 벽돌집 사이로 빼꼼히 초록 대문의 얼굴을 내밀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단독주택이 있다. 인테리어 전문 플랫폼 ‘오늘의집’에서 범상치 않은 안목과 빈티지 인테리어로 주목받은 김서윤 공간 디렉터의 집이다.

“처음 리모델링을 계획할 때 ‘집은 이래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이나 유행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단 하나 포기하지 않고 고집한 것이 있다면 이질적인 문화가 혼재된 분위기, 각 시대를 매혹적으로 끌어당겼던 감성이었죠.”

1979년 지어진 주택은 기하학 패턴의 창틀, 고풍스러운 문양의 나무 천장,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장식 유리까지 ‘K빈티지’가 완벽하게 집약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노후와 안전상의 이유로 그 시절의 흔적을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뼈대만 남긴 채 사라진 옛것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그는 ‘빈티지 스타일’이라는 콘셉트를 강화했다.

이그조띠끄 하우스의 주인이자 스튜디오 레벤즈를 운영 중인 김서윤(@lebenz_seoyoon) 공간 디렉터에게 빈티지 가구란 장인정신과 건축가 고유의 철학이 담긴 오브제이자 나만의 비밀이 더해진 추억의 물건이다.

현관 타일부터 다용도실의 방문까지 각별하지 않은 것을 찾는 것이 더 빠른 집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절의 체스트(서랍장)를 리프로덕션(리터치 작업을 통해 재생산된 빈티지 가구)한 코너장은 과거 고객을 위해 구매한 것이었는데 모자이크처럼 이어 붙인 유리 수작업이 마음을 흔들더니 끝내 그의 품에 돌아왔다는 애절한 사연도 갖고 있다.

“‘비싸다’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다면 평생 마주하지 못할 거예요. 빈티지 가구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가치를 알게 되고 매력을 느끼게 되는 존재거든요. 피상적인 관점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죠.”

통상 컬렉터를 비롯해 전문가들이 말하는 빈티지 가구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 북유럽 일대에서 만들어진 오브제를 의미한다. ‘제조로부터 100년 이상 된 공예품·미술품’을 의미하는 앤티크와는 구분되며 특히 1950년대 전후로 만들어진 가구의 인기가 높다. 대량 생산이 쉽지 않았던 시절, 유명 디자이너와 장인들이 저마다의 독특하고 맵시 있는 디자인으로 승부수를 날리던 ‘황금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디렉터가 생각하는 정의는 조금 다르다. 그에게 빈티지 가구란 가구를 예술 작품 삼아 장인정신과 건축가 고유의 철학을 담은 오브제다.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만든 이의 생각을 견고하게 다지고 동시에 희소성까지 갖추게 된 우리 삶의 일부다. 동시에 나만의 비밀이 더해진 추억의 물건이다.

“평소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 세계 여행을 즐기는 편이에요. 그 여정엔 언제나 벼룩시장이 포함돼 있어요. 책이나 인터넷에는 소개되지 않은 진짜 역사가 맞닿아 있거든요. 누군가에게는 퇴색하고 낡은 물건이 주는 쓸쓸함과 고루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저는 이런 빈티지한 물건이 어떤 연유로 여기까지 왔을까 상상하고 그 위에 나만의 비밀을 덧대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리빙 인플루언서이자 공간 디자이너인 손명희(@likelikehome) 라이크라이크홈 대표의 집.

전셋집 아파트에서 이게 된다고?

무심한 듯 놓았지만 제 몫을 하는 1인 소파부터 개성 강한 빈티지 가구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서재까지 타고난 안목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한 집이 있다. 샤를로트 페리앙, 르코르뷔지에 같은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이 곳곳에서 언급되지만 이질감보다는 푸근함이 느껴지는 이곳의 주인공은 리빙 인플루언서이자 공간 디자이너인 손명희 라이크라이크홈 대표다.

“빈티지 가구가 가진 내공 덕이죠. 같은 공간에 새 가구를 들였을 때도 이런 느낌이 날까, 곱씹어본 적이 있는데 대답은 ‘아니’였어요. 같은 디자인이어도 만들어진 시대, 컬러와 재질,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아웃풋이 완벽하게 달라지는 것이 바로 빈티지 가구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그의 집 사진은 ‘움직이는 빈티지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시대를 넘나든 빈티지 가구 고유의 특성도 있지만 계절과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며 분위기를 바꾸는 손 대표의 부지런함도 한몫한다.

“틀에 박힌 듯 정형화된 구조의 아파트나 구축 전셋집은 대공사를 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사실 가구를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드라마틱한 변화를 줄 수 있거든요. 특히 빈티지 가구들은 어떤 공간, 어떤 가구와 어우러지느냐에 따라 매력이 달라져요. 제가 수시로 가구를 옮기는 이유이기도 하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사나 공사보다는 품이 덜 들잖아요(웃음).”

가격표에 적힌 숫자를 떠올리면, 여러 차례 발품을 팔았던 고생을 생각하면 ‘모시고 살아야 할 것’ 같은 가구이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스크래치와 물 자국에 연연하지 않는다. 빈티지 가구의 가치는 소장이 아닌 삶의 순간에 녹아들 때 더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금속 체어로 더 유명한 피에르 귀아리슈의 데이베드. 손명희 제공

“이건 피에르 귀아리슈의 데이베드예요. 철제 의자로 더 잘 알려진 브랜드의 제품인데 이 데이베드를 처음 보는 순간 ‘ㄱ’자로 튀어나온 구조에 머리를 대고 누워 책을 읽거나 걸터앉아 간식을 먹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웃음).”

‘특정 연도나 지역에서 만든 와인’이라는 의미에서 확장된 빈티지라는 단어 앞에는 ‘켜켜이 쌓인 시간’과 같은 수식어가 암묵적으로 포함돼 있다. 그러나 리빙업계에서 통용되는 빈티지 용어는 세월에만 방점을 찍지 않는다. 흔한 새것보다 귀한 헌것, 낡았지만 가치 있는 것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손 대표는 “가구도, 공간도 유기적인 대상이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다수는 집을 꾸밀 때 한 번에 완벽하게 세팅하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공간의 중심이 될 가구는 미리 사되, 나머지는 천천히 필요성을 고민하며 채워가다 보면 나만의 취향도 찾게 될 겁니다.”

마니아의 가구, 어떻게 인테리어 ‘끝판왕’이 됐나?

현재 국내 빈티지 편집숍은 주로 미드 센추리 모던 가구와 소품으로 채워져 있다.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북유럽과 미국의 인테리어, 건축, 디자인 전반에 유행한 스타일이다. 전쟁 후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바우하우스 출신 건축가들이 그 당시 가구에 잘 사용되지 않던 금속이나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창의적인 소재를 활용했으며, 실용성과 간결함이 특징이다.

<가구, 집을 갖추다>의 저자인 김지수 작가는 빈티지 인테리어의 인기를 두고 ‘날것에 대한 인간 본능의 미학적 정서’를 이유로 꼽았다. 그는 “빈티지 스타일은 초기 물성을 그대로 살려둔다. 그 자체의 멋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빛의 각도와 양에 따라 집 안의 느낌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로 낡은 부분은 덜 퇴색된 부분과 함께 오묘한 명암과 질감을 나타낸다. 그래서 새것의 밋밋한 면보다 덜 질리고 볼수록 새롭다. 인위적 행태와 기교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멋이 있다”고 설명했다.

악뮤의 찬혁, 김나영 등 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스타들의 ‘쇼룸’ 같은 집은 빈티지 인테리어를 꿈꾸는 이들의 참고서가 됐다.

사실 빈티지 인테리어는 혜성처럼 등장한 새로운 트렌드가 아니다. 상승과 하락을 거듭하며 마니아를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변곡점은 2015년 전후, 서울 청담동과 성수동의 카페와 편집숍을 중심으로 빈티지 가구와 소품이 퍼지기 시작하면서다.

감각 있는 이들이 찾아낸 유려한 디자인, 시간이 흐르면서 짙어지는 희소성, 빈티지에 대한 누적된 관심 등 다양한 이유가 뒤섞이며 빈티지 시장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여기에 휘발성 강한 소비에 염증을 느낀 이들까지 더해지며 빈티지 인테리어는 급부상했다.

반짝하고 멈출 것 같았던 인기는 주거공간 이상으로 집에 의미를 부여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팬데믹 기간을 지나며 견고해졌다. 악뮤의 찬혁, 김나영, 강민경 등 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스타들의 ‘쇼룸’ 같은 집은 빈티지 인테리어를 꿈꾸는 이들의 참고서가 됐다.

업계는 올가을에도 빈티지 가구의 인기가 이어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서울옥션은 지난여름 이와 같은 분위기를 반영해 거장들의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를 비롯, 총 86점을 선보이는 기획 경매를 진행했다. 영국의 리빙 잡지 ‘하우스 뷰티풀’은 2023년 하반기 트렌드로 빈티지 인테리어를 꼽으며 “사람들은 따뜻하고 역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빈티지 아이템을 더욱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오디너리맨션이 오픈한 아파트먼트풀은 ‘선순환’을 강조하며 빈티지 가구 전시, 렌털, 거래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홈페이지 갈무리

그러나 적게는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억 단위가 넘어가는 가격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장벽이다. 빈티지 가구 구입이 망설여진다면 ‘렌털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국내 빈티지 시장을 이끈 원오디너리맨션이 오픈한 아파트먼트풀은 ‘선순환’을 강조하며 빈티지 가구 전시, 렌털, 거래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최장 7일간 대여 가능한 렌털 서비스는 아파트먼트풀 홈페이지에서 멤버십 가입 후 마일리지를 충전하고 이용하면 된다.

전문가들이 전하는 빈티지 가구를 구입하는 팁은 단순하다. 관심을 두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빈티지 가구 편집숍 오드플랫 박지우 대표는 “일단 인스타그램을 끊으라 하고 싶다(웃음).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빈티지 가구 사진들은 획일화된 이미지가 다수라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면서 “가까운 편집숍을 다니며 다양한 제품을 보고 자신의 취향과 생활 방식을 반영한 제품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공간을 채워가는 재미를 알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마이 디어 빈티지’의 저자인 권용식(b2project_gallery) 대표가 운영하는 빈티지 가구 복합 공간 비투프로젝트 공간.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색과 질감이 변화는 ‘에이징’은 빈티지 가구만의 매력이다. 의외로 관리법은 여느 가구와 다르지 않다. 철재나 가죽으로 된 가구는 습하고 염분이 많은 곳을 피하는 것이 좋고 건조한 계절에는 전용 오일을 발라주면 가구의 수명을 조금 더 늘릴 수 있다. 일상에서 거칠게 다뤄지는 식탁 역시 오일로 관리하면 수분이나 오염의 침투를 막을 수 있다.

권용식 빈티지 가구 복합 공간 비투프로젝트 대표는 “경험상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제품을 구입한다면 내구성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다만 최근 시대별 물량이 한정적이다 보니 1980~1990년대에 제작된 가구를 빈티지 가구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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