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65. 남이섬 판타지 - ‘2023 한국·인도 아티스트 캠프’를 마치고

이광택 2023. 10.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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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
한국·인도 수교 50주년 아티스트 캠프
양국 작가 20인 남이섬 합숙 작품 창작
마을 수호·안녕 기원 소재 ‘벅수’ 선택
소박·따뜻 외형 다정한 한국 정서 표현
고대 문명 존경 인도여신 보름달 묘사
▲ 이광택 작, ‘남이섬 판타지’(2023)

한국과 인도의 수교 50주년 기념이 아티스트 캠프의 추진 배경이었다.

지난 9월 5일부터 14일까지 양국에서 각 10인씩 총 20인의 작가들이 남이섬 안의 호텔 정관재에서 합숙하며 작품을 창작하고 다채로운 워크숍을 통해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는 소통의 시간을 보냈다.

남이섬만큼 관광지이면서 자연이 오롯하게 보존된 곳이 한국에 또 있을까. 메타세쿼이어, 은행나무, 자작나무, 벚나무, 산딸나무, 잣나무….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지도 않은 채 건강하게 잘 자라는 온갖 나무들이 보기에 참 좋았다.

언젠가 ‘공간 플레이리스트’에 대해 언급한 기억이 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사색하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문득 들르는 공간’이 바로 공간 플레이리스트이다. 공작새, 토끼, 청설모, 다람쥐들이 섬을 맘껏 활보하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곳. 유난히 이끼가 많은 곳. 그래서 조용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곳.

캠프 기간 내내 나는 마음만큼은 큰 부자라고 생각했다. 욕망의 도시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주인이 따로 없는 숨은 공간, 그 자연에 맘껏 스며들고 말을 걸고 즐겼으니까. 언뜻 보면 하찮게 보이는 자연에서 인생의 영롱한 사리를 찾고, 차선(次善)에서 최선(最善)을 발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부자가 아니겠는가.

단 일주일 만에 제법 큰 사이즈(117×80.5㎝)의 작품을 제작(개·폐막식, 국립중앙박물관 탐방 등으로 3일은 창작이 불가능했음) 하는 일은 큰 압박이었다. 또한 성의 없이 엉성하게 작품을 끝내서는 안 된다는 몸에 밴 고집이 더해졌기에 마치 바이스로 머리를 조이는 것 같은 스트레스가 줄곧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큰 시장기를 느꼈다. 한국과 인도 각지에서 오랫동안 순회전이 예정된 만큼 평소의 화풍과는 다른, 뭔가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정갈한 다정함이 깃든 한국의 마음을 작품에 담아 인도 관객들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림의 주인공은 단연 한국의 벅수들이다.

벅수란 다들 알다시피 무덤 앞에서 죽은 이를 지켜주는 신상(神像)의 일종이다. 과거 지배층의 정형화된 문신상과 무신상을 연상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삼천리 방방곡곡의 마을을 수호해 주는 돌장승으로 확대 발전하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마을 입구에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선 채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건강을 지켜주는 벅수를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소박하게, 구수하게 생긴 이 벅수들의 모습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인의 착한 심성, 따뜻한 낙관을 읽었다. 그 벅수의 따뜻함이 그림에서는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마을은 한국의 마을이지만 또한 인도의 마을이기도 하다.

하늘에는 큰 보름달이 둥실 떠 있다. 인도의 여신 얼굴을 달에 그려 넣은 건 찬란했던 고대의 인도 문명을 상징한다. 그 문명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내가 모란꽃(부귀)을 건네고 있다. 한국과 인도 국민의 장수와 길상을 기원하는 학과 노루, 새, 호랑이 등의 한국 민화 동물도 있고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나의 모습도 있으며 남이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작과 토끼도 그려 넣어 변화를 주었다. 그림의 좋고 나쁨을 떠나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은 없다.

아름다운 추억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참기름 같은 웃음들과 서로를 응원했던 따스한 눈길들은 차분한 숨결처럼 내 가슴에 포개져 있다. 20인의 작가들은 물론, 물심양면으로 아티스트 캠프를 도와준 모든 스태프의 노고도 잊을 수 없다.

특히 더딘 창작의 진척에 괴로워할 때마다 환한 표정으로 곁에 다가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핀란드의 엘리나. 고맙다는 의미로 그녀에게 내가 유일하게 아는 핀란드 말로 뒤늦게나마 건배를 제안하고 싶다.

“오마 라우하!”(‘내 안의 평화’라는 뜻)

강원도민일보의 독자분 모두 평화와 고요가 함께 하는 10월이 되시길 기원한다. 서양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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