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폐교가 달라졌어요…위기의 학교들, 지역 명소로 변신[창간 기획]

김정훈·강정의·김현수 기자 2023. 10. 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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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합계출산율 0.78명.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서울에서도 문을 닫는 학교가 등장하고 있다. 2020년 강서구 가양동 공진중·염강초를 시작으로 올해는 광진구 화양동의 화양초가 폐교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폐교한 전국의 공립학교는 3922곳에 달한다. 이 중 2587곳이 매각됐고 1335곳은 각 시·도교육청이 보유하고 있다.

보유 중인 폐교는 야영장·수련원 등 시설이나 교육·복지·문화 시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활용 방안 없이 방치되고 있는 폐교도 전체의 9%인 358곳에 달한다는 점이다.

수년에서 수십년간 흉물로 자리한 폐교는 마을 쇠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반면 폐교를 지역 명소로 탈바꿈시킨 곳들도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례다. 폐교 문제에 해법이 될 곳을 경향신문이 다녀왔다.

고단한 길 생활 잊고 기분 좋은 ‘골골송’만

경남 통영 공공형 고양이보호소

‘인간의 진정한 성격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경남 통영 한산면 용호도에 있는 ‘공공형 고양이 보호·분양센터’ 정문(사진)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지난달 20일 찾은 이곳에는 통영 지역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지난 7월부터 구조된 길고양이 30마리가 보살핌을 받으며 새 가족들에게 입양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센터는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배로 1시간가량 가야 했다. 배편도 하루 왕복 3편밖에 없는 한적한 곳으로, 용초·호두마을에 주민 280명이 살고 있다.

고양이 보호는 기간근로자 3명이 전담하고 있다. 이들은 고양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녀석들이 어질러놓은 실내 곳곳을 청소한다. 김재돌씨(69)는 “용하게 살아남아 이곳까지 온 고양이들”이라며 “다쳤다고, 나이가 많다고, 아프다고 버려진 녀석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양이 두 마리가 다가왔다. 구조 당시 왼쪽 뒷다리 골절로 생명이 위험해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코봉이’(수컷·생후 24개월)와 쓰레기장에서 구조된 ‘팔도’(암컷·생후 7개월)라고 했다. 둘 다 이곳에서 붙인 이름이다.다른 고양이들은 보호실 캣타워 곳곳에 숨어 있었다. 외부인을 경계하는 듯했다. 최민정 통영시동물보호센터 담당은 “거의 길거리 고양이들이다 보니 질병에 약해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공공형 고양이 전문 보호·분양시설이다. 원래는 용호분교였다. 1940년 6월 개교한 이 학교는 한때 제주 해녀들이 돈을 벌려고 올 정도로 인구가 많아 전교생이 300명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3월 결국 문을 닫았다. 현재 용호도에 사는 초등생 1명은 배를 타고 한산초 본교로 통학하고 있다.

센터는 마을 주민들과 통영시가 ‘동물 생명권 보호, 인간과 동물의 공존, 섬 활성화’라는 공동목표로 결실을 본 사업이다. 폐교 활용 방안을 고민하던 차에 2020년 경남도 주민참여예산 공모사업으로 예산을 확보하면서 길고양이를 위한 공간으로 지난달 재탄생했다. 학교 운동장 3000㎡, 건물 446㎡ 2층 규모를 경남도교육청에서 빌려 길고양이 보호실(5실)과 치료실, 캣북 카페, 노령묘실로 고쳐 운영 중이다.

통영시는 이곳에서 최대 120마리까지 고양이를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성화로 적정 개체를 유지하다 입양으로 빈자리가 생기면 충원하는 방식이다. 생후 3개월 미만 구조묘나 주인에게 버림받은 유기묘·장애묘가 우선 입소 대상이다. 입양되지 않은 개체는 자연사할 때까지 보호할 방침이다.

효율적 운영·관리를 위한 운영 조례도 마련했다. 인건비와 약품비·사료비 등 필요한 경비를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데, 2024년까지는 통영시가 직영한 뒤 민간에 위탁할 계획이다. 통영시는 현재 통영시동물복지플랫폼(tongyeong.go.kr/pet)에서 고양이를 수시로 분양하고 있다. 용호도에서는 고양이를 주제로 한 각종 행사도 열린다.

한국고양이보호협회에 따르면 전국에 서식하는 길고양이는 100만마리로 추정된다.

평일엔 동네 사랑방, 주말엔 ‘핫플’ 카페로

충남 태안 컨츄리로드커피

“폐교요? 자유롭게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라고 생각해요. 한때는 천덕꾸러기 신세였을지 몰라도 현재는 이색 카페로 운영되면서 지역을 널리 알리는 데도 일조하는 만큼 큰 보람을 느껴요.”

동갑내기인 문해수·고충실 공동대표(32)가 운영하고 있는 ‘컨츄리로드커피’ 카페는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초 폐교를 리모델링해 문을 열었다. 이 카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색 관광 명소로 전국에 알려지면서 폐교 활용의 성공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0일 찾은 카페 컨츄리로드커피의 길쭉한 직사각형 외관과 입구 앞 교문(사진)은 과거 이곳이 학교였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카페 내부는 화분·옷·신발·LP판 등을 재활용한 장식품과 식물로 가득했다. 야외 부지에는 손님들을 위한 테이블이 준비돼 있었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여행 왔다는 김학수(30)·유태경(31)씨는 “인근에서 이 카페가 가장 유명하다는 글을 보고 와봤다”며 “내부에 식물과 앤티크 가구 등 볼거리가 많고, 폐교에 지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색다르면서도 친근하다”고 말했다.

이 카페는 1993년 원북초로 통폐합되며 폐교된 신두초 건물을 활용, 개장했다. 신두초는 2003년 지역 주민에게 매각됐다. 신두리·동해리 등 마을 4곳이 합쳐진 합동마을회가 폐교를 인수한 후 야영장·기숙학원·공무원 학원 등으로 재활용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후 2021년 6월 리모델링 작업에 착수, 같은 해 12월부터 카페로 개방됐다. 두 대표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폐교 건물과 부지를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문 대표는 “폐교 근처를 지날 때마다 ‘많은 사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카페를 창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카페 개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최의만 합동마을회장(74)은“오랜 기간 부지와 건물이 방치되다 보니 혐오시설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카페로 개조해 살려보겠다’는 젊은이들 제안에 반신반의로 임대했다”며 “임대료는 모두 마을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일에는 지역 주민들이, 주말에는 관광객들이 주로 카페를 이용한다. 많게는 하루 300~400명이 이곳을 찾고 있다. 이는 카페가 위치한 원북면 전체 인구 4349명(지난 8월 기준)의 10분의 1에 달하는 수치다. 문 대표는 “폐교를 활용한 만큼 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는 사람도 많다”고 귀띔했다.

주민들은 마을 인구가 적은 데다 유동 인구가 거의 없어 한산했지만 현재는 방문객들로 마을에 생기가 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카페는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원북면에 거주하는 김상곤 할아버지(96) 역시 일주일에 평균 2번씩 카페를 찾는다. 김 할아버지는 “편히 쉬면서 담소할 수 있는 카페가 생겨서 좋다”며 “주말에는 집에 찾아온 자녀, 손주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컨츄리로드커피 카페는 지역 주민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지역을 홍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글 배우며 “까르르” 돌아온 아이들 웃음

경북 경주 한국어교육센터

“쏜생님, 한국어 쉽게 알려줍니다. 친구, 생겼어요.”

지난달 22일 경북 경주에 있는 경주한국어교육센터(사진) 초등부 반. 연필을 든 학생들이 한국어 단어를 적어 넣은 빙고 게임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교실에 앉아 있는 8명은 러시아·우즈베키스탄·캄보디아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학생들이었다.

선생님과 단어를 반대로 말하는 게임을 하며 한국어를 배워보는 시간도 가졌다. 단어의 뜻을 설명하다 급한 마음에 모국어가 불쑥 튀어나오자 교실에선 웃음보가 터졌다. 중학생 반은 책 읽기가 한창이었다. 학생들이 큰 목소리로 한글을 읽고 나면 받아쓰기로 실력을 점검받는다. 국적도, 나이도 다양한 다문화 학생 70여명이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경주한국어교육센터는 지난 3월 문을 연 전국 최초 공립형 ‘한국어’ 대안학교다. 수업 일정이 한국어 집중 교육 프로그램으로만 구성된 대안학교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매일 4시간씩 한국어 교육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예체능 위주의 방과후 활동을 지원한다. 센터가 들어선 부지는 과거 노월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노월초는 폐교 후 장기간 방치되면서 쓰레기 투기와 우범지대화 등으로 지역민들의 골칫거리가 됐던 곳이다. 쓸모없이 방치됐던 공간이 다문화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특별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경주는 경기 안산, 경남 김해와 함께 대표적인 중도입국자 가정이 많은 지역”이라며 “지역민과 충분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다문화 가정을 위한 교육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주는 공업도시인 포항과 울산 사이에 있다. 올해 경북 지역에 입국한 외국인은 2000명으로 이 중 826명이 경주에 모여 있다.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중도입국한 만큼 부모들은 한국어에 서툰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자녀들도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데, 이는 곧 의사소통 부족으로 이어져 한국 생활 적응 실패로까지 연결된다. 지난해 10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박소피아양(12)은 “친구들과도 잘 이야기하지 못하니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박양은 지난 7월 일반 학교에서 센터로 옮겨왔다.

센터에서는 일반 학교 학습 과정을 잠시 멈추고 3개월간 한국어 학습에 집중하게 된다. 국가별 언어가 가능한 이중언어 선생님이 상주해 있어 소통에도 문제가 없다. 지난 6월 70명의 1기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현재는 74명의 2기 학생들이 입소해 있다.

박지혜 초등담당 교사는 “소리를 지르는 등 폭력 성향이나 학교생활 부적응 문제 등은 실제 원인이 언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며 “(1기 학생 중 폭력 성향이 강했지만) 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운 뒤 본래 학교로 돌아가 잘 적응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흉물처럼 방치됐던 폐교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로 생기를 되찾자 지역 주민들도 만족하고 있다. 주민 김성래씨(64)는 “잡초가 무성해 꼭 귀신 나올 것 같은 곳이 환하게 변해 주민 모두 좋아한다”며 “손주 같은 애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훈·강정의·김현수 기자 j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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