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200방 물린 고통인데, 두드러기라 '건보는 안된다?'

이창섭 기자 2023. 10. 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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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 취급받은 만성 알레르기, 환자는 "지긋지긋해 죽겠다"
1년 약값 640만원… "죽을 병 아니라면 이 금액도 부담"
중증 질환으로 코드 분류하고, 치료 접근성 개선해야
지영구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이사장이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만성 두드러기 환자의 치료 접근성 개선'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이창섭 기자

모기에 1방 물리면 가렵지만 고통스럽진 않다. 그러나 모기에 100번, 200번 물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아픔을 최장 10년까지 겪어야 하는 병이 있다. '만성 두드러기'다. 장기이식·암 환자의 치료제까지 쓰지만 최근까지 '경증'으로 분류됐다. 효과 좋고, 부작용 적은 약이 등장했지만 환자는 해마다 약 64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만성 두드러기 환자의 질병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보험 급여 등 치료 접근성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는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성 두드러기 환자의 치료 접근성 개선'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축사로 행사를 시작한 지영구 이사장(단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은 "만성 두드러기가 결코 죽을 병은 아니지만, 진료 현장에서 환자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지긋지긋해서 죽겠다'이다"고 말했다.

두드러기는 모기에 물렸을 때 느끼는 증상과 비슷하다. 가렵고, 주변이 빨갛게 올라온다. 이런 증상을 '팽진'이라고 한다. 예영민 아주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두드러기가 심한 환자는 모기 1마리가 아니라 여기저기, 100~200번 물린 것처럼 가렵고 힘들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유 없이 증상이 6주 이상 지속되면 만성 두드러기라고 한다. 운동하다가 또는 찬 공기나 햇볕에 노출되면 증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속옷이 피부와 밀착하면서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장윤석 총무이사(분당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샤워할 때 물방울만 맞아도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환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윤석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총무이사(분당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가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만성 두드러기 환자의 치료 접근성 개선'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이창섭 기자

실제로 만성 두드러기 환자의 삶의 질은 당장 심장혈관 수술이 필요한 환자와 유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당뇨, 류머티즘 관절염 등 만성질환 환자와 비교해도 삶의 질 저하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드러기 환자 치료에는 항히스타민제가 사용된다. 그러나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해도 잘 낫지 않는 환자에는 '사이클로포스포린', 'MTX' 등을 사용한다. 사이클로포스포린은 장기이식 환자의 면역 거부 반응을 억제하는 면역억제제다. MTX는 암 환자가 사용하는 항암제다. "이런 약제를 쓰는 것만 봐도 만성 두드러기가 중증 질환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장 이사는 말했다.

만성 두드러기는 지금까지 '경증'으로 취급됐다. 2019년에는 상급종합병원에 가장 많이 방문하는 경증 질환 10위에 꼽히기도 했다. 환자는 병·의원 등 1차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해 절박한 심정이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작 그 정도 병으로 상급종합병원에 갔다'는 눈총을 받아야 했다.

지난해 '경증' 딱지를 드디어 뗐다. 그러나 아직 중증 만성 두드러기에 대한 별도의 질병 코드가 없다. 질병 코드 신설과 건강보험 급여는 환자의 치료 접근성 개선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가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성 두드러기 환자의 치료 접근성 개선'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사진제공=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생물학적 의약품인 '오말리주맙'이 중증 만성 두드러기 환자 치료의 새로운 옵션으로 떠올랐다. 중증 천식으로 개발된 약이지만 만성 두드러기에도 효과를 입증했다. 장 이사는 "심하던 만성 두드러기 증상을 주사 1~2방에, 2~3일 만에 사라지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아직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환자의 비용 부담이 크다. 연간 약 640만원의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 큰돈이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다. 최정희 동탄성심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암이라면 640만원은 금방 낼 것이다. 그러나 죽을 병이 아닌 두드러기에 1년에 그렇게 돈을 쓰는 용감한 환자들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만약 만성 두드러기가 중증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되면, 환자는 산정특례 제도로 약값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건강보험까지 적용되면 나머지 금액은 국가가 부담한다.

김미애 분당차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만성 두드러기의 별명이 '오펀'(orphan), 즉 고아 질환이다. 어느 과에서도 크게 관심 갖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며 "안전하게 쓸 약이 나왔는데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상태이다. 특히 어르신들은 자식이 주사 놔주면 맞고, 아니면 치료를 못 하는 상황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두드러기가 진료 지침까지 있는 엄연한 질환인데 아직도 디톡스 등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려는 분들이 많다"며 "약을 써서 조절해야 하는 질환이 맞고, 생활 습관만으로 조절되는 병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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