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잡초를 이렇게 곱게 키워요

김양진 기자 2023. 10. 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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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를 넘어 ‘복원’으로 가는 전초기지 백두대간수목원 방문기
2023년 9월13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양묘장의 1년생 구상나무. 김양진 기자

비닐하우스 안에 싸리며 대사초·비수리 같은 풀과 굴피·물푸레 같은 나무 등 키 작은 어린 식물들이 줄맞춰 자라고 있었다. 모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물이다. 왜 이런 ‘흔한 식물’들이 공공기관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양묘장에서 석·박사 연구진에 의해 귀하게 길러지는 걸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논밭에 그 흔한 피나 바랭이·강아지풀도 빈 땅을 덮거나 훼손된 산림을 복원해보려고 찾으면 구할 수 없어요. 꼭 우리 식물을 이용해야 한다는 법도 없었으니까, 경제적 이유로 중국 등에서 싸고 손쉽게 종자(씨)를 구해다 뿌려온 거죠. 그러다보니 국내에는 종자 판매 자체가 없고, 그래서 수입하고 종자는 더 구할 수 없게 되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돼온 거죠.” 2023년 9월13일 오전 경북 봉화군 춘양면 백두대간수목원 양묘장을 함께 둘러본 양종철 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장이 이렇게 설명했다.

2023년 9월13일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양묘장의 산림 복원용 비수리를 연구진이 둘러보고 있다. 김양진 기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양묘장의 양종철 산림생태복원실장. 김양진 기자

‘우리 강산 일단 푸르게’ 사업

산도 돈도 풍부한 우리나라가 어쩌다 ‘잡초 수입국’이 됐을까. 우리나라 산림(산) 면적은 629만ha(2020년 말 기준)로 국토의 62.6%를 차지한다. 경제규모는 1조6733억달러(2022년 명목GDP 기준), 전세계 13위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각종 개발로 훼손된 산림생태계에 대처하는 방식은 수입한 식물들로 ‘일단 푸르게(녹화)’ 덮는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출입식물 검역통계를 보면 2016~2020년 수입식물은 모두 1045t에 이른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비수리(213t), 낭아초(165t), 참싸리(161t), 안고초(71t), 피(43t) 등 씨앗 형태 지피식물(땅을 덮는 식물)이다.

산을 깎아 도로를 깔 때 드러나는 길 좌우 경사면을 피복할 때는 거의 100% 수입식물을 활용했다. 원래 우리 강산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곳에 어떤 동식물이 살았는지 등은 오랫동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경제·사회적 수준에 비해 가장 낙후됐던 게, 환경 분야만 놓고 봐도 산림생태계 복원 쪽이 아닐까 합니다. 훼손된 산림에 대해 인간의 눈으로 색깔·외형만 일단 녹색으로 하는 데 치중했죠. 그 지역에 맞지 않은 식물을 심었으니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산사태가 나고, 생태교란이 심각하게 일어났죠.” 이날 함께 양묘장을 둘러본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말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이 더디게나마 나아질 전망이다. 각종 개발이나 산불 등으로 훼손된 산림 식생을 복원할 때 중앙·지방 정부는 ‘자생식물·자연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산림복원 기본원칙이 2019년 산림자원법(제42조의 2)에 신설됐다. 2030년까지 훼손되는 산림의 30%는 그 지역 자생식물로 복원한다는 목표도 설정됐다. 자생식물 공급센터로는 백두대간수목원이 지정(2020년)됐다. 산림청이 집계한 훼손된 산림면적은 2022년 기준 9931ha고, 앞으로도 도로 개설 등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연구진이 전국을 누비며 자생식물 씨앗을 수집하고 있다. 일단은 산림청 고시에 따른 전국 4개 기후대별 대표적 자생식물 94종이 대상이다. 떡갈나무·신갈나무·붉가시나무·버드나무 등 나무류와 비수리·구절초·엉겅퀴·새·띠 등 풀류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그렇게 채집한 씨앗은 종자은행에 저장하거나, 묘상(모판·못자리)에서 일일이 길러 농가에 위탁생산하는 방식으로 대량 양산하는 등 자생식물 생산·공급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2023년 처음으로 일단 10개 농가에 위탁해 10만 본 정도를 생산할 계획이다. 또 2022년 산불로 훼손된 경북 울진 지역(전체 피해 면적 2만676ha 가운데 보호구역인 4789ha 대상)을 복원하는 등의 용도로 자생식물을 일부 공급하기 시작했다.

전국이 모두 비슷비슷한 식재

“(한국전쟁 이후) 최근까지 이뤄진 ‘녹화’도 물론 의미가 크죠. 외국 종자를 받아오긴 했지만 황폐해진 산림을 다시 푸르게 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주로 많이 심은 게 리기다소나무하고 낙엽송이라고 부르는 일본잎갈나무예요. 그런데 지금 와서 평가해보니까 ‘생물다양성’ 측면에 취약한 부분이 확인됐죠. 쉽게 말해 개체수는 많지만, 일괄 식재를 하다보니 전국적으로 유전 특성이 다 비슷비슷해진 거예요. 그러면 기후변화 등에 취약하거든요. 훼손된 산림을 일단 지키자는 ‘녹화’나 ‘조림’ 개념에서 원래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거죠.”(양종철 실장)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식물사회학자 김종원 박사(전 계명대 교수)는 “자생식물로 복원하려면 우리 국토에 어떤 서식처에 어떤 식물이 자생하는지에 대한 해상도 높은 ‘잠재자연식생’(자연 과정만으로 이뤄진 식생) 지도가 먼저 그려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숲이 자연림인지, 2차적으로 만들어진 훼손된 숲인지 연구해야 하거든요. 좀 늦어도 이런 기초연구를 가지고, 골병든 우리 자연생태를 제대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죠. 잘못하면 생태계 복원한다면서 망칠 수 있어요”라고 지적했다.

백두대간수목원 양묘장의 다른 동에서는 구상나무 묘목이 자라고 있었다. 20세기 초 미국·유럽 등으로 흘러들어 양산돼 ‘크리스마스트리’로 큰 인기를 끄는 구상나무는 자생지인 우리나라에선 되레 기후위기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근 20~30년간 한라산·지리산·덕유산 등 대규모 서식지가 급격하게 줄어든 현상이 확인됐다. 2021년 산림청은 ‘멸종위기 고산 침엽수종 보전·복원 대책’에서 분비나무·가문비나무·주목·눈잣나무·눈측백·눈향나무 등과 함께 ‘중점 보호 7대 수종’으로 선정했다.

이곳 양묘장에는 8만 본의 1살·2살·5살짜리 구상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1살짜리는 5㎝ 남짓에 떡잎이 3~6장 정도, 2살짜리라봐야 10㎝는 될까. 그래도 가지를 하나 낸 것이 달랐다. 5살짜리도 20~30㎝에, 얼핏 둥근 모양이 로즈메리 같아 보였다. 이렇게 더디게 자라던 구상나무가 여기서 몇 년만 더 지나면(정확히 몇 살부터인지는 연구 중), 한 해에도 몇m씩 쭉쭉 자란다고 한다. 담당인 이동준 박사는 “구상나무는 발아시키는 게 상당히 까다로운 종입니다. 처음엔 그늘을 좋아하는 ‘음수’(陰樹)예요. 조금만 건조하면 죽어버리죠. 습하고 그늘지게 키워줘야 하거든요. 그러다 햇빛을 받아서 쑥 자라나 20m까지 크는 ‘양수’(陽樹)가 됩니다. 우리나라 고유종이긴 한데 축적된 연구가 많지 않아요. 1천 본을 생산하려면 1만 개 정도는 심어야 한다고 봐요. 1만 개를 심으면 유묘(어린 모종) 단계에서만 3천 본 정도는 죽는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양묘장의 2년생 구상나무. 김양진 기자

복원시에 꼭 고려해야 하는 ‘유전적 다양성’

‘2023-001654 구상나무(제주 남벽분기점, 제주01) 이식일: 23.05.18’ 각각의 어린나무마다 이런 표지가 꽂혀 있었다. 양종철 실장은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건 훼손된 산림을 ‘복원’하는 중요한 기준이에요. 같은 종이라도 지역에 따라 서식지에 따라 종 안에서 유전 특성이 다를 수 있거든요. 아직은 비용 등 문제 때문에 일일이 유전자분석을 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지역·지형별로 구분해서 관리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회복하는 문제는 국제협약에 따른 우리나라의 의무이기도 하다. 특히 2022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유엔 산하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제15차)’는 새로운 생물다양성 목표(쿤밍·몬트리올 GBF)에 기존 종·생태계 다양성과 함께 유전적 다양성을 핵심 지표로 담았다. 서재철 위원은 “생물다양성협약이 중요하게 참고한 2013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복원(재도입) 가이드라인을 보면, ‘복원할 때 동식물의 종뿐 아니라 유전자가 일치해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핵심이에요. 한국도 두 원칙을 제도화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구상나무를 예로 들면, 겉보기엔 다 같아요. 하지만 유전 특성은 한라산이냐 지리산이냐에 따라 다 달라요. 조경용으로 많이 심는 건 대부분 한라산에서 왔어요. 쉽게 말해 유전적 다양성을 고려하면 조경용 구상나무는 지리산이나 덕유산 복원용으로 심으면 안 되죠. 유전적 다양성은 어떤 종의 활력이나 회복력 등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예요. 그동안 복원 시도는 많았지만 실패 사례가 많았어요. 원인을 찾다가 유전적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어떤 종의 개체수는 복원되더라도 기후위기 등 극단적인 위험요인 속에 매우 취약한 집단이 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이) 결론을 낸 거죠.”(임효인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유전적 다양성은, 학계에서 제기되는 ‘구상나무 위기’ 같은 기후위기에 따른 문제를 인간이 컨트롤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도 단서를 제공한다. 임효인 박사는 “구상나무는 천만년 전부터 있었던 종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적응해온 잠재력이 있어요. ‘절멸의 소용돌이’(Extinction Vortex) 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종이 멸종할 때 한번에 싹 가는 게 아니라, 사이클을 돈다는 거죠. 서식 규모가 줄고, 그러면서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하면 환경 적응력이 떨어지고, 다시 회복되기도 하지만 회복력이 한계점을 넘어가면서 소멸에 이르는 겁니다. 지금 기후변화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활동 때문이잖아요. 기후변화에 대응해 여러 노력을 하고, 구상나무의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해 소멸 속도를 늦춘다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오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머루 터널. 김양진 기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숲. 동물원에 비해 넓은 공간인 3.8ha(축구장 6개 넓이) 우리에 여섯 마리가 산다. 김양진 기자

또 다른 ‘명이나물’을 찾아서

이날 양묘장의 또 다른 동에는 각종 부추와 머루, 그리고 아스팔트 틈 등 서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잡초’ 까마중 등의 식물이 길러지고 있었다. 양종철 실장의 권유로 까마중 열매를 따서 먹었더니 시큼달콤한 맛이 났다. 5179ha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인 백두대간수목원을 둘러보면 곳곳이 재래원종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머루로 만든 터널길이 있었고, 돌 틈은 돌단풍으로 장식됐다. 털부처꽃·산꼬리풀·배초향 등으로 색감이 뛰어난 꽃식물로 꽃밭도 만들어놓았다.

“생물유전자원의 나라별 주권을 인정한 ‘나고야 의정서’가 2014년 발효됐어요. 최소한 우리 식물이라고 주장하려면 근거자료 연구가 필수고요. 그런 차원에서 재래원종을 연구하고 있어요. 부추는 사실 외래종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산부추나 울릉도 두메부추 같은 부추 재래종이 있거든요. 울릉산마늘(명이나물)도 이런 재래원종을 상용화해서 성공한 사례예요. 두메부추는 뮤신이라는 끈끈한 성분이 풍부해서 소화를 돕는 약으로도 쓰이고요. 머루도 분명히 매력이 있고요.”(양종철 실장)

야생종이던 블루베리가 재배에 성공한 것도 불과 100여 년 전인 1916년 일이다.

​봉화(경북)=글·사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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