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막으려면]⑤비 와도 서핑, 경제 효과 660억…양양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양양=홍다영 기자 2023. 10.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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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인구 늘어 경제 효과 2019년 228억→작년 657억
수심 적당하고 파도 다양해 서핑 성지로 떠오른 양양
어촌 마을에서 관광 핫플로…일자리 창출해 소멸위기 극복

지난 7월 출생아 수가 같은 달 대비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올해 합계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수 있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구 감소로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은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다. 진학과 취업 등으로 꾸준히 인구 유입이 이뤄지는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다. 2021년 감사원 보고서는 2067년 무렵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29개 지역이 소멸 고위험 지역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조선비즈는 인구가 줄고 있는 지자체가 어떤 노력으로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보통 여름에 서핑을 많이 할 것 같지만 양양은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진짜 서핑은 가을부터죠. 9~10월에도 파도가 좋습니다. 날씨가 쌀쌀해도, 비가 와도 서핑은 계속돼요.”

강원 양양군 현남면 인구해변에서 지난달 26일 오후 만난 한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때 시간당 2㎜씩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외국인 포함 20여 명은 개의치 않았다. 이들은 거센 파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으며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몸이 젖고, 바다에 코를 박고 짭짤한 물을 들이마시기 일쑤지만 표정만큼은 밝았다.

서핑숍(서핑 가게) 직원은 모래사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서핑하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 촬영이었다. 그는 “서핑하려면 1시간에 4만9000원, 2시간에 7만원”이라며 “초보면 2시간은 배워야 한다”고 했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서퍼비치에 지난달 26일 관광객을 위한 조형물이 설치됐다. /홍다영 기자

◇스페인 이비자 뺨치는 양양…낮에는 서핑, 밤에는 라운지바

강릉과 속초 사이에 있는 작은 어촌 도시였던 양양이 서핑족(族) 등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양양이 서피비치로 각광받는 등 젊은 층에서 서핑 인기가 높아졌는데 고속도로도 개통돼 청년들이 유입되고 있다. 낮에는 바다에서 서핑하고 맛집과 카페를 방문한 뒤 새벽까지 풀파티를 즐기는 게 관광객의 일반적인 하루다.

양양 현북면 서피비치에서는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10여 명이 해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파라솔과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흰색 그네를 타는 사람, 의자에 누워 수평선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LA) 베니스비치처럼 운동 기구를 전시한 머슬비치와 길이가 짧은 숏보드, 길고 안정적인 롱보드, 회전할 때 좋은 펀보드 등 서핑 보드가 눈에 띄었다. 양양에는 서핑숍이 84개 있다. 전국의 서핑숍 10곳 중 3곳이 양양에 몰려 있다.

강원 속초시에 거주하는 임모(25)씨는 “서핑을 좋아하는데 올해 여름에 오지 못해 이번에 지인과 여행을 왔다”고 했다. 충북 청주시에서 사는 황모(42)씨는 남편, 자녀와 양양을 방문했다. 황씨는 “연휴를 앞두고 회사에 연차를 내고 아이는 학교에 체험 학습을 신청해 강원도를 한 바퀴 도는 중”이라며 “바다가 없는 지역에 있다가 아이들과 보트를 탔는데 정말 좋아하더라”고 했다. “함께 먹은 돈가스도 맛있었다”고 덧붙였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방문한 이모(35)씨와 강모(35)씨는 동갑내기 연인이다. 이들은 “전날 강릉시에 이어 이날 양양 해변을 드라이브하는 중”이라며 “브런치(아침 겸 점심)를 여유롭게 즐겼다”고 했다. 이씨와 강씨 옆으로 흰머리 난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지나가고 있었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서퍼비치의 한 음식점에 지난달 26일 서핑 용품이 전시됐다. /홍다영 기자

점심 시간이 되자 잠시 비가 멈췄다. 서피비치를 찾는 사람들도 50여 명으로 늘었다.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얼그레이 하이볼이나 모히토, 아이스 커피, 감자튀김 등을 구매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방문한 권모(22)씨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처음으로 양양에 왔다”며 “2박3일간 머무르며 편백나무찜 등의 음식을 맛볼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IT(정보기술) 개발자로 일하는 손모(32)씨는 “친구와 휴가를 내고 4살 말티푸 강아지와 놀러 왔다”며 “비가 살짝 오고 여름보다는 사람이 적은 것 같은데 오히려 한적하게 산책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서핑 강사 이모(27)씨는 “성수기에는 하루 300~400명씩 서핑을 배운다”며 “다들 즐거워하는데 운동을 안 하는 분들은 생각보다 코어 근육이 없어서 (중심을 잡고) 파도에서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한번 오면 서핑 강습을 받고 보드를 대여하며, 맛집과 카페도 가고 라운지바에서 음악을 듣고 숙박한다”고 설명했다.

해가 저물자 인구해변 거리 곳곳에서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 조명이 반짝였고 라운지바에서는 이국적인 음악이 흘러 나왔다. 인근 음식점에서는 14명의 손님이 해산물을 먹으며 ‘소맥’(소주+맥주) 등 폭탄주를 제조하고 있었다. 인구해변 피자 전문점과 주점, 펍 등에서도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즐기며 대화를 나눴다. 평일 비수기, 비가 다시 추적추적 쏟아지고 있었지만 양양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해변의 한 음식점에서 지난달 26일 시민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홍다영 기자

인구해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여름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기업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도 많았다”며 “추석 연휴에도 정신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낮에는 서핑하는 사람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지만 밤이 되면 라운지바, 풀파티를 즐기는 20~30대가 몰리면서 거리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며 “최소 1박2일은 머물면서 소비하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좋은 것 같다”고 했다. 한 숙박업소 직원은 “장사가 잘 될 때는 숙박뿐만 아니라 1층에서 바비큐와 맥주를 판매하며 추가 매출을 올린다”고 했다.

◇인구 2만 지자체에 서핑하러 오는 인구만 47만명…”소멸 위기 극복”

양양 서핑의 역사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재일교포가 국내에 서핑 문화를 전파하며 부산에 서프클럽이 생겼지만 양양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2009년 양양 동산해변에 첫 서핑숍이 문을 열었다. 2014년에는 양양서핑협회와 강원도서핑협회가 설립됐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2017년 개통되며 서울에서 4시간쯤 걸리던 거리가 2시간대로 줄었고, 본격적으로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파도가 있다고 모든 바다에서 서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이 많거나 수심이 너무 깊으면 안전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양양은 수심이 적당하고 1년 내내 파도가 치는데, 해변마다 파도 각도와 세기 등 유형이 다양해 초보자부터 중·상급자까지 수준에 맞춰 서핑할 수 있다는 게 양양군 설명이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인구해변에서 지난달 26일 사람들이 서핑하고 있다. /홍다영 기자

양양에서 서핑을 즐기는 관광객은 해마다 늘고 있다. 양양군에 따르면 서핑인구는 2019년 18만2500명이었지만, 2020년 22만6800명, 2021년 35만7420명, 지난해에는 46만9560명으로 증가했다. 서핑 산업 경제 효과는 2019년 228억 원, 2020년 294억원, 2021년 482억원, 지난해 657억원으로 추산됐다. 서핑을 즐기는 관광객 한 명이 양양에서 쓰고 가는 금액도 2019년 12만5000원, 2020년 13만원, 2021년 13만5000원, 지난해 14만원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양양은 지자체 차원에서도 서핑 관광을 활성화하고 있다. 2013년 죽도해변에 해양 종합 레포츠 센터를 세웠고 2019년부터 서핑 해양 레저 특화 지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핑 보드 거치대, 코인 샤워기, 파도 정보를 실시간 파악하는 키오스크(무인 단말기) 시계탑, 겨울에도 따뜻하게 서핑할 수 있는 돔하우스 휴게 시설 등을 설치했다.

올해 6월에는 통합 관광 앱 ‘고고양양’을 선보여 해변 13곳의 날씨 정보를 제공하고 서핑 강습을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 오는 2028년까지 사계절 내내 서핑할 수 있도록 인공 파도 시설을 갖춘 양양 서핑 교육 센터를 2만9727㎡(8992) 규모로 만들 계획이다.

양양군 관계자는 “‘양리단길’, 서퍼비치 등 서핑을 체험하는 젊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인구 3만명 미만의 작은 도시지만 관광객이 증가하며 숙박, 외식업 등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활기와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로 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강원도 양양군에 위치한 한 음식점 카운터.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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