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구한말 항일운동… 시대가 찾아 기억해야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정자연 기자 2023. 10. 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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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조례, 1895~1909년 발생 의병운동 미포함
“道, 무명의병 전수조사… 기념비적 사업 적극 펼쳐야”

정부와 학계 등에선 항일독립운동을 통상적으로 1895년 전후부터 1945년 광복까지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훈부에서 독립유공자 대상자가 활동한 시기를 1895년 전후부터 1945년 광복으로 지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 일제강점기에 한정된 조례, 항일운동에서 빠진 의병

반면 경기도 조례에서 명시된 항일독립운동의 시기는 매우 한정적이다. 경기도는 ‘항일독립운동 유적 발굴 및 보존에 관한 조례’(2016년 제정), ‘독립운동기념사업 지원 조례’(2019년 제정)를 통해 각종 독립운동을 기념·지원한다. 하지만 이들 조례엔 지원 대상 시기가 일제강점기(1910년~1945년)로 돼 있어 1895년~1909년 발생한 의병운동은 시기적으로 포함하지 않는다. 구한말 항일운동에 나섰다가 순국한 이들은 발굴되거나 기념될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이다.

반면 상위법인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은 독립유공자의 적용 대상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나눠 구체적인 시기를 일제의 국권침탈(1895년) 전후로부터 1945년 8월14일까지로 설정했다. 일제에 항거한 구한말 의병까지 그 대상이 된다.

서울시와 전남, 울산광역시 등 광역시·도에서도 독립운동과 관련한 대상 시기를 의병이 포함될 수 있게 설정해 역사의 뒤안길로 빠지는 이들이 없도록 했다.

2020년 제정된 서울시의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와 항일독립운동 유적 발굴 및 보존에 관한 조례는 지원 대상을 ‘일제강점기 또는 그 직전에 일제의 민족차별 및 국권 침탈 등에 반대하거나 항거한 활동’으로 명시했다. 전남의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 지원 조례(2017년 제정) 역시 지원 대상 시기가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14일’이다.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전 수원대 사학과 교수)은 “보통 항일운동은 을미사변 이후부터 진행된 의병운동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항일을 명시한 경기도의 조례가 이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면 일반적인 독립유공자 기준보다 훨씬 더 후퇴한 것”이라며 “상위 개념인 국가보훈부에서 독립유공자를 서훈하는 기준에 따라 하위 조직에서 통일성을 갖춰 체계화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최종현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장은 “‘경기도 독립운동 기념사업 지원 조례’가 제정될 당시 지원 대상을 ‘일제강점기’로 한정했던 구체적인 이유를 알긴 어렵다”면서도 “항일독립운동은 강제병합 이전의 국권침탈기 일제에 항거한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경기도 조례 역시 ‘항일독립운동’을 포함한 내용으로 개정하는 등 폭넓게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러스트=유동수 화백

■ 사라진 역사의 조각, 시대가 찾아 나서야

의병을 위한 조례를 따로 제정해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지자체도 많다.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발굴하고 기억에서 잊혀진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이를 기리는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다.

전국 광역시·도 중 의병과 관련된 조례가 제정된 곳은 충남과 전북, 전남, 경남, 경북, 광주광역시 등 6곳,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양평군을 비롯한 7곳이 있다.

광주광역시는 지난 2015년 ‘한말 의병운동 기념사업 지원조례’를 제정해 1895년 이후인 명성황후 시해부터 단발령에 이르는 시기까지 벌어진 한말 의병운동과 관련해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 한말 의병운동 희생·공헌자 발굴, 한말 의병운동에 관한 역사적 자료 수집·보존·관리·전시 및 조사·연구, 한말 의병운동에 대한 교육·홍보 및 학예 활동 등이 담겼다.

광주광역시 관계자는 “호남에는 한말에 의병활동을 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분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시대를 ‘한말’로 특정해 조례를 제정했다”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들에 대한 예우 등은 기념, 선양 사업이 많이 이뤄졌는데 한말 의병활동에 대한 지원사업은 없어 이의 필요성을 느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전남도 역시 지난 2020년 ‘남도의병 선양사업 지원 조례’를 제정, 의병 생가 등 각종 의병 기념시설물을 유지 보수하고 이름을 남기지 않은 의병을 역사의 무대로 올리기 위해 기록물 등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오는 2025년 6월엔 남도의병 역사박물관 개관도 앞두고 있다.

조례를 발의한 최명수 전남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나주2)은 “국가·도·시·군 지정문화재는 사후 관리를 하지만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은 의병 유적은 후손이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 방치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해 국가가 선양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며 “예산 문제로 진통이 있었지만 조례 제정으로 호남 의병의 현황을 파악하게 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자료로 기록이 남아있는 1906년~1911년 사이 의병전쟁에 참전한 한말 의병 수는 14만여명으로 이중 1만7천779명이 전사했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의병’으로 등록된 숫자는 2천717명에 불과하다. 의병 순국자에 대한 자료가 없거나 자료가 사라져 이 중 극소수만이 정부 포상 대상자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명의병을 모두 찾을 수 없더라도 이들에 대한 전수 조사나 기리는 기념비적 사업에 경기도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용 연천문화원장은 “연천에는 심원사에서 150여명의 의병이 활동했다는 내용이 있을 만큼 항일 의병운동 격전지가 많고 의병도 많았다. 일본군이 절을 불태워 의병들이 전멸했는데 이 같은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지역 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구한말 의병 등과 관련한 조례가 제정돼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이들을 역사 기록에 남기고 많이 알려야 한다. 불과 100여년 전에 있었던 매우 의미있던 사건들이 사장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구한말 의병 후손들

이백원 의병장의 후손 이병도 할아버지. 올해 여든 다섯의 나이인 그는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내가 기억하는 이백원 의병장에 대한 이야기도 희미해져 가지만, 많은 이들이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곽민규PD

“남한테 알리려는 것도 없었고 그냥 저냥 세월이 지나갔다.”

1907년 8월 17일(음력) 양평 양근지구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이백원 의병장의 외증손자인 이병도씨(84)에게 의병은 오랜 세월 금기어였다.

할머니께 “아버지 산소가 있고, 왜놈들과 싸우다 전사했다. 전사한 자리가 현재 산소 쓴 자리(양평군 옥천면 옥천리 산23-1)”라는 말을 듣고 자란 그는 “의병장이라고 해서 어릴 땐 대단하게 생각 안 했다. 그거 하면 붙잡혀 간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의병의 후손들은 1900년대 후반에도 스스로 후손임을 밝히지 못했다. “의병 집안은 순사한테 잡혀간다”는 말은 오래도록 이어졌고, 후손들은 그 사실을 감추고 숨겼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인터뷰를 하는 이병도씨의 말엔 두려움이 후유증처럼 남아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자랑스러운 선조의 활약상도 점점 희미해졌다.

한말 의병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줄 후손들은 이미 고령인 데다 그 수도 많지 않다. 특히나 언제 어떻게 전사했는지 기록이 남지 않은 무명의병의 후손들은 그들이 그 후손임을 증명할 길이 없다. 이백원 장군 역시 후손을 통해 전해지고 기억될 뿐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은 없다. 지난해 관련 학자와 양평의병기념사업회 관계자 등이 포함된 ‘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추진단이 이백원 의병장의 묘를 확인하고 후손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항일 의병을 기록한 F.A. 매켄지의 ‘대한제국의 비극’에 나온 양평 사탄전투에서 전사한 한말 무명의병이 이백원 의병장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1908년 10월 연천군 가루재에서 의병부대 제3분견대(파견대)장의 임무를 맡아 전투를 벌이다 흉탄에 맞아 26세(미혼)의 나이로 전사한 심상우 의병의 후손들 역시 오랜 세월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다. 당시 의병활동을 하다 적발되면 집안이 몰락됐기에 가족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묘를 정했다. 이후 심상우 의병의 방계후손인 심덕보씨(84) 등이 묘를 관리하며 제사를 지내왔다.

‘심상우 묘’가 경기도 연천군의 지방향토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뒤 제사를 드리는 심상우 의병의 후손들. 연천문화원 제공

심상우 의병의 활동은 지역 주민과 가족 등에 의해 대대로 전해져 왔지만 당시의 상황이 기록된 자료가 없어 보훈처의 훈장은 받지 못했다. 그러다 2014년 연천군이 의병 전수조사를 하면서 연천문화원에 의해 심상우 의병의 활동이 확인됐고, 연천군의 지방향토문화재 제24호로 선정됐다. 형편없이 세워졌던 묘는 다듬어지고 관리가 됐으며 의병 비석이 세워져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심덕보씨는 “어른들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심상우 의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론 매우 자랑스러웠다”며 “하지만 26세에 돌아가실 만큼 애국 정신이 있었음에도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에 속상하고 가슴이 미어졌다. 구전으로 내려와서 가족들만 알고 파묻힐 뻔한 이야기를 연천문화원과 연천군이 노력해서 공식화 돼 매우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국을 위해서 몸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애국 정신이 투철했던 무명용사들이 많다. 이들을 전수조사 하고, 기념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 몰랐던 의병들을 발굴하고 애국 정신을 후손에게 길러주는 길을 터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경기도 차원에서라도 이름 없이 순국한 한말 의병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도록 의병 활동을 기록하고 이들을 위한 기념 사업 등을 진행한다면 무명의병의 이름을 찾아주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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