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택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예술의 숲 풍성하게" [인터뷰]

정자연 기자 2023. 10. 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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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택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윤원규기자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비어 있는 무대에 공연을 올리게 하는 것이 문화예술 후원의 힘입니다. 경기도형 예술나무 10만 그루를 심는다면 경기도 문화예술의 숲이 더욱 풍성해 질 거라 확신합니다.”

시민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질을 끌어올리는 데 문화예술이 기여하는 바를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국가나 지자체의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은 부문도, 재정이 어려울 때 큰 타격을 입는 분야 역시 문화예술이다. 흔들림 없는 문화예술지대를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 키우는 특별한 나무가 경기도에 심어진다. 문화예술 창작, 향유 등을 위한 외부 재원 유치에 소중하게 쓰일 ‘경기예술나무’다.

유인택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67)는 예산 축소로 우려되는 도민의 문화예술 활동 위축을 타개할 수단으로 문화예술 기부와 후원을 위한 경기예술나무 심기 캠페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 대표를 만나 그 구상을 직접 들어봤다.

지난 8월 3일 파주시 군내면 대성동 마을에서 열린 '자유의 마을, 대성동 70주년 기념행사'에서유인택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축하인사를 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 공공성 강화, 사각지대 해소…기부로 다각적 재원 마련 

경기예술나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예술 후원 브랜드 ‘예술나무’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 예술을 우리가 함께 키워야 할 나무로 형상화해 문화예술의 가치를 확산하고 문화예술 후원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

경기문화재단에선 2013년부터 경기도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문화이음’이란 이름의 기부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연간 2억~3억 원가량의 정기 후원과 사업 관련 후원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규모가 작아 자체 사업을 소화하는 정도다. 유 대표는 “기존의 사업은 기존대로 의미를 두고, 문화예술 기부 활성화를 위해 다른 접근과 확산을 위한 브랜드가 필요했다. ‘예술’을 심고 함께 키워 나가 숲을 가꾸자는 인식을 심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아 나무의 이미지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경기예술나무는 내년부터 씨앗을 심어 육성할 예정이다.

경기예술나무 심기를 고안한 것은 경제 상황 악화로 도의 예산 축소, 이에 따른 도민의 문화예술 활동 위축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미 설정된 재단의 예산은 경직돼 있는 만큼 후원 기금의 재원을 예비비처럼 활용해 좀 더 문화예술 사업과 활동을 유연하게 하자는 취지다.

유 대표는 “문화소외계층에 안정적인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가·단체의 창작지원을 위해 필요한 추가 재원을 기부와 후원 활성화로 확보해 보자는 의지가 담겼다”며 “경기예술나무는 이러한 데에 시드머니가 돼주는 것은 물론 경기도 대표적인 문화사업에도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금은 문화예술 활동을 희망하나 사각지대에 있어 활동이 어려웠던 예술인들을 찾아내 지원하는 데도 활용할 예정이다. 유 대표는 “재단에서 아무리 찾으려 해도 행정 시스템에 얹히다 보니 사각지대가 많다. 단체에 속하지 않은 예술인이나 장애 예술인 등 공공의 영역에서 찾기 어려웠던 곳을 찾아내 서비스하고, 문화예술로 삶의 가치를 더욱 높여드릴 수 있을 거라 본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10일 김포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전망대에 있는 '평화의 종'에서 유 대표이사(맨 왼쪽)와 경기도 기초 문화재단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 사회공헌 활동에 ‘문화예술’ 메뉴 추가

지난해 12월 취임 직후부터 유 대표는 문화예술 기부와 후원에 대한 중요성을 줄곧 강조해 왔다. 예술의 영역에서 돈 이야기를 수면으로 올린다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 정서상 쉽지 않은 일.

유 대표는 관계자들을 만나면 특유의 너스레와 소년 미소로 “문화예술 기부에 돈 좀 꺼내 주시오”라며 자연스레 돈 얘기를 건네는 대표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예술이라고 왜 돈이 안 중요하나요. 체면 차리면 문화예술을 가꿀 토양을 마련하기 어려워요. 2019년 예술의 전당 사장 취임 인터뷰 기사에서 나온 헤드라인도 ‘기승전-돈’이었어요”라며 껄껄 웃어보인 그는 “문화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사각지대 없는 문화예술을 위해선 떨어지는 예산만 바라봐선 안 된다. 다각적인 재원 마련이 중요하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 대표는 예술나무 후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새로운 명함도 준비 중이다. 그는 “내가 할 일은 재단이 광역문화재단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영업사원처럼 열심히 뛰고 솔선수범하는 것”이라며 “기부자가 지속적으로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이를 이어갈 수 있게 대우 프로그램도 발굴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에서 재단에 기부를 하면, 기업이직원 복지를 위한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장기 기부와 일반 기부, 지정 기부 등 다양한 영역을 개발할 계획이다.

“1천만 원만 있어도 문화예술이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지원할 수 있어요. 어느 기업이나 사회공헌 활동을 하지만 대부분 장애인, 다문화, 소외계층 등으로 한정돼 있는데 거기에 문화예술 메뉴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겁니다. 이를 테면 청소년 학생들에게 지원한다고 하면 장학사업을 많이 하는데, 학교에 가서 가야금이나 음악을 가르쳐주는 지원 사업 등 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지난 7월 27일 '2023 세계예술인 평화선언'에서 유 대표이사가 '평화의벽'에 평화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 경험에서 우러난 자신감…‘경기예술나무 포럼’으로 첫 출발

11월 6일 경기아트센터에서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경기예술나무 포럼’은 그 분위기를 띄울신호탄이 될 예정이다.

포럼은 경기도 전역의 공공, 경제, 교육, 문화예술 관계자 등 다양한 인사 150여 명이 참여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향유의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로 마련된다. 경기도의 ‘예술나무’를 함께 가꿔 갈 ‘동지’를 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경기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사전 분위기 조성과 후원 유치를 위해 최신 문화예술 동향이 소개된다. 또 인문강연, 문화탐방 등 부대 행사를 포함한 행사와 경제계, 문화예술계, 교육계 등 분야의 다양한 의견 청취 시간도 이어진다. 배우 이순재씨의 강연과 관계 형성을 위한 기업과 법인 단체 등의 네트워킹 행사도 준비될 예정이다.

유 대표는 “많은 이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며 “대상자에게 그 일에 왜 자금이 필요한지, 그만한 예산이 있다면 어떤 일들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쓰일 때 어떤 사회적 가치와 보람이 생겨나는지를 이해 시키고, 사회 오피니언 리더는 물론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을 즐기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필요에 따라 사회 영향력이 있는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 경기문화예술에 대한 관심 유도 및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타깃 마케팅을 할 계획”이라며 “어떻게 전개될진 모른다. 다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분위기를 무르익게 할 것임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시민들이 플리마켓 등을 즐기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 누구나 마음 모을 수 있는 ‘경기예술나무’

그가 생각하는 기부 모금 사업은 가랑비에 옷 젖듯 십시일반해 맞들면 나은 백지장 같은 것이다.

부자들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닌 일반 월급쟁이도, 청년들도 공감하고 필요성을 느낀다면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예술나무 한 그루가 10만 원인 것도 이러한 이유다.

“10만 원은 경조사 때 내는 돈이죠. 잘만 설득하면 기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에요. 공공기관이라며 공공예산에만 매달리지 않고 민간 부문의 재원을 흡수하면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 경기문화재단이 광역재단으로서 경기도에 대표적인 축제가 있으면 힘을 실어주고 키워줄 수 있는 역할도 할 수 있어요. 그 다른 길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유 대표의 자신감은 경험에서 나온다. 1988년 십시일반으로 1억8천만 원을 모아 신촌에 예술극장 한마당을 지었고, 1994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제작 당시 7천700명에게 3억 원을 모은 ‘펀드전문가’였다. 2019년 예술의전당 사장 시절 전당에서 기존 골드회원에 준하는 혜택을 담은 ‘골드회원권’이라는 제도를 선보이며 10만 명의 골드회원을 모으는 것을 공약으로 100억 원을 모금 목표를 세웠던 이도 유 대표다.

지난 9월 15일 경기상상캠퍼스에서 열린 ‘항일 창작 쇼케이스’에서 예술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유 대표이사. 경기문화재단 제공

■ 대화 테이블에 ‘문화 한 스푼’…우리의 삶 풍성

대학로란 상징적인 공간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그가 본 경기도는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많은 ‘기회의 공간’이다. 오는 12월 취임 1주년을 맞는 그는 기부 활성화와 함께 초심 때 가졌던 고민을 하나씩 풀기 위해 여전히 현장을 바쁘게 누비고 있다.

취임 직후 경기문화재단을 많은 이들에게 재단을 이해시키고, 경기도를 쉽게 들여다보고자 그의 스타일대로 만든 ‘유인택표 경기도지도’는 올해 업그레이드 된 버전으로 다시 만들었다.

시군별 인구와 경기문화재단 소속 뮤지엄의 위치 등이 표시된 종이지도엔 경기도 문화예술의 이해도를 높이려고 애쓰는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유 대표는 “그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취임 후 재단 산하 박물관, 미술관의 업무와 재단 내 500여 개 사업을 파악하는 데 애를 썼다”며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경기도 곳곳에 있는 재단 기반시설을 찾아다녔다”고 밝혔다. 하반기엔 그동안 구상한 발레축제 등 북부 도민들에게 관람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발레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중소극장 규모의 맞춤형으로 재제작한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을 양주시, 동두천시, 연천군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누리고 경험하는 문화예술이 확대될수록, 경기예술나무가 한 그루씩 늘어날수록 도민의 삶에 문화예술의 꽃이 활짝 피어날 것으로 유 대표는 기대한다. 무엇보다 재원뿐만 아니라 일상의 예술이라는 열매를 맺는 게 최종 목표다. 그는 기금 모금 활동 자체가 하나의 ‘문화예술 캠페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예술나무가 모여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쓰이겠다’란 공감대가 확산하고, 또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씩 문화예술 떠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예술의 숲 토대는 마련한 것 아닐까요. 무엇보다 우리 일상 대화의 테이블에 ‘문화예술’이 한 번이라도 올라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삶의 질이 풍성해지는 거라고 봅니다. 경기예술나무, 함께 가꿔 나가시죠.”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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