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 재건축 Yes or No]②조합 갈등 '지긋'…신탁사 '날개' 달았다
내집 등기 이전 '걸림돌' 제거…'빨리 가려면 신탁'
시장·상가 재건축까지 트렌드 확산
신탁 방식 정비사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 곳곳에서 공사비 증액을 놓고 조합-시공자 간 갈등이 커지면서 사업이 지체되자 조합 방식을 내려놓고 신탁 카드를 꺼내드는 추세다.
조합 비리 등의 고질적인 문제를 피하고 부동산 신탁사의 자금력과 전문성을 통해 사업 속도 자체를 높일 수 있어서다. 신탁사들은 상가, 시장 재건축 등까지 발을 넓히며 트렌드 굳히기에 나섰다.
정부까지 신탁사에 날개를 달아줬다. '9·26 주택공급 활성화 대책'을 통해 신탁 정비사업 추진 시 시행자 지정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토지면적 3분의 1 이상을 신탁, 즉 등기이전을 해야 하는데 이 요건을 없애면서 신탁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해준 셈이다.
'정비사업 빨리 가려면' 조합보다 신탁
최근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이 신탁시행 방식으로 정비사업 추진에 속속 나서고 있다.
신탁 방식 정비사업은 크게 '신탁시행' 방식과 '신탁대행' 방식이 있다. 시행은 조합 없이 신탁사가 사업 진행 전반에 걸쳐 관리하는 방식이고, 대행은 조합은 두고 신탁사가 관리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신탁사가 정비사업에 단독 참여할 수 있게 된 건 지난 2016년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조합 방식의 부작용을 줄이고 사업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호가 열렸다.
이후 소규모 정비사업 위주로 채택돼 왔는데 최근 공사비 증액 갈등, 사업 지체 등의 문제로 신탁(시행) 방식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신탁 방식은 무엇보다 사업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조합을 만들지 않아도 돼서 추진위 구성부터 조합설립인가까지 소요되는 2~4년가량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신탁사의 자금력·전문성도 사업 추진 동력으로 작용한다. 조합 방식은 시공사가 신용 보강을 받아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신탁사는 자체 자금으로 시공사에 먼저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비용·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비전문가로 이뤄진 조합과 달리 신탁사는 전문 인력을 통해 공사비 검증이나 협의를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최근 시공사들이 자잿값, 물가 상승 등으로 조합에 공사비를 올려달라고 하면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협상 끝에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하거나 새 시공사를 찾느라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도시정비사업 시공사들이 조합에 요구한 증액 공사비는 총 2조3273억원(17곳)에 달했다.
한국부동산원이 이들 공사비를 검증한 결과 적정액은 1조8225억원으로 시공사가 요구한 액수의 72%에 불과했다. 시공사들이 부풀린 금액이 5000억원이 넘는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조합 집행부의 비리나 내홍에 따른 사업 지연도 피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비사업 추진 기간이 줄어들수록 소유주들의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다.
특히 재건축초과이익환수금의 경우 사업 시작 시점과 종료 시점 간 가격차로 책정되는 만큼 사업이 빠를수록 이득이다.
상가·시장까지?…"확산 가능성 높아"
신탁 방식이 시장의 선택을 받기 시작하자 신탁사들도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지방 소규모 사업장 위주로 수주를 했다면 서울 강남, 여의도 아파트로 상경한 데 이어 상가, 시장 등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는 추세다.
올 8월 서초구 래미안 신반포팰리스아파트 상가가 단지 내 상가 중 처음으로 신탁방식 재건축을 채택했다. 이 상가는 10년 가까이 재건축 추진이 지지부진하다가 코람코자산신탁을 시행자로 선정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일반 상가 재건축으로는 무궁화신탁이 지난 2021년 8월 신탁사에서 최초로 신탁 계약했다. 강남구 개포동 대청프라자는 무궁화신탁과 손잡고 1년6개월만에 관리처분 총회를 열었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6월 고척산업용품종합상가 시장재건축 정비사업 추진위원회와 시장정비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노후한 시장을 정비해 주상복합아파트 등을 지어 올리는 사업이다.
신탁사 및 대형건설사와의 컨소시엄 구성도 활발하다. KB부동산신탁과 코람코자산신탁이 지난 4월 양천구 신월시영 재건축 사업에 컨소시엄 응찰해 선정된 데 이어, 8월엔 부동산신탁업계 1·2위인 한국토지신탁과 한국자산신탁이 손을 잡고 서초 삼풍아파트와 MOU를 맺었다.
무궁화신탁의 경우 대우건설로부터 지난 7월 지분 투자(2.2%)를 받았다. 대우건설은 추진 중인 프로젝트금융투자사(PFV)사업과의 시너지도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신탁사의 정비사업 특례 적용 등 제도적 뒷받침까지 이뤄진다면 신탁 방식이 더 활성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6월 말 국회 본회의에선 신탁사가 추진하는 재건축‧재개발사업에 특례를 부여하는 내용이 담긴 도정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신탁사가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 등이 포함된 내용으로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9·26 주택 공급 활성화 대책에선 신탁 정비사업 추진 요건에서 '토지면적 3분의 1 이상 신탁 등기'를 없애고 주민 동의 4분의 3 이상의 동의만 있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정비사업계획도 통합 처리할 수 있게 했는데, 이런 규제들이 완화되면 사업 기간이 최대 3년 단축될 전망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공사비 인상, 금리 인상 등에 따라 자금 조달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인 만큼 신탁 방식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질듯 하다"며 "제도 개선, 성공 사례 등까지 갖춰지면 더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모주달력]'따따블' 갈까…두산로보틱스 5일 코스피 상장
- 대한항공, 정말 '화물 사업'까지 내놓나
- 에스엘에스바이오, 공모가 7000원 확정…내달 코스닥 상장
- [IPO워치]두산로보틱스. '실탄 4000억' 어디에 쓰나
- 반전 준비 LG디스플레이, 승부수 먹힐까
- [IPO워치]에코프로머티리얼즈, '퀀텀 점프' 시동
- 제약바이오 IPO '꿈틀'…얼어붙은 투심 회복할까
- [100조 예금전쟁]고금리 상품 만기에…'속수무책' 저축은행
- "주가하락이 공매도 때문? 근거 어딨나"…공매도 두고 '갑론을박'
- '뚱바'가 1800원?…'국민우유' 바나나맛우유의 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