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계서 가장 진화한 ‘신이 만든 마지막 꽃’ 국화[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10. 2.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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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계서 난초과 다음으로 큰 패밀리
동서양 관상용으로 가장 오래 길러온 식물
선비의 절개과 지조의 상징 ‘오상고절(傲霜孤節)’
17세기 유럽 전파돼 장례식 추도의 의미로 사용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경기 남양주 북한강변 카페 ‘대너리스’ 앞뜰을 장식한 관상용 소국. 10월 1일 촬영

<그리움을 간직한/사람들 수만큼/꽃을 피운다는/국화꽃 이야기를 / 듣고 난 뒤//가을이 되면/국화가 왜 많이 피는지/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윤보영 시인의 짧은 시 ‘국화꽃 이야기’는, 가을이 왜 국화의 계절인지, 국화가 왜 그리움의 꽃인지를 말해준다. 가을 여행을 떠나면 산과 들, 화단, 화분에 각양각색의 국화가 저마다 고운 자태로 유혹한다. 배롱나무도, 연꽃도 뜨거운 뙤약볕에 지쳐 시들시들할 무렵, 가을의 전령사 국화 군단이 진군 나팔소리를 힘차게 분다.

국화는 쌍떡잎식물로 국화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초본이다. 중국이 원산지라고 하며 재배 기록은 약 3500년 전인 상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감국(甘菊·황국)이 조상이라는 설도 있다. 여하튼 국화는 한·중·일 세 나라에서 역사가 깊다.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상용으로 길러온 가장 오래된 꽃이기도 하다. 식물학상으로 종자식물 중에서 최고로 진화된 꽃이라고 한다.

서울 서대문구 서울시교육청 입구를 장식한 노랑·보라·붉은색 소국 위로 은행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2022년 10월 23일

식물계의 대표적인 큰 가문으로는 난초과와 국화과를 들 수 있다. 국화과는 초화 중에서 난초과 다음으로 큰 집안(family)을 거느리고 있다. 무려 1620속에 2만3600여종이라는 대식구를 거느리고 있다.코스모스나 해바라기 같은 일년초, 엉겅퀴나 아티초크 같은 다년초뿐 아니라 관목과 덩굴식물, 교목도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상추, 쑥갓도 국화과 식구다.

국화과 식물은 실제 유통되는 꽃 중에서 장미와 쌍벽을 이룬다. 하지만 장미과가 91속 4800여종을 이루는 것과 비교하면 국화과는 보통 큰 집안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국화과 식구가 많다는 것은 종의 다양성이 실현된 것으로 그만큼 진화를 많이 했다는 의미다.

1753년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는 국화의 속명으로 ‘크리산세멈(Chrysanthemum)’이란 이름을 부여했다. 황금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크리오스(chryos)’와 꽃을 뜻하는 ‘안테몬(anthemon)’의 합성어다. ‘황금빛 노란색 꽃’이란 의미다. 노란색 국화의 특징을 잘 묘사하는 이름으로, 국화꽃의 대표주자가 노란색임을 시사한다.

북한강변 카페 ‘대너리스’ 앞뜰을 장식한 소국 꽃. 10월1일 촬영

<한 송이/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미당 서정주의 절창 ‘국화 옆에서’다. 전북 고창 선운사 건너편 질마재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당은 선운사를 자주 들렀다고 한다. 미당이 선운사에 들르면 늘 묵던 숙소가 아직도 남아있는데, 과거 ‘동백장’으로 불렸던 고창군 아산면 중촌길 동백호텔이다.

미당은 동백장에서도 201호에서만 묵었다고 한다. 생전의 미당이 "소쩍새 소리 잘 들리는 방을 달라"고 해서 내준 방이다. 미당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그렇게 울었던 그 소쩍새 소리를 동백장 201호에서 들었던 것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건물 화분에 전시된 대국. 2022년 10월 31일

우아한 기품이 서려있고 추위를 이겨내는 강인함은, 혼탁함 속에서도 홀로 당당히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굳은 지조를 일컫는 ‘오상고절(傲霜孤節)’ 군자의 모습으로 시인묵객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국화는 아주 작은 꽃들로 이뤄진 꽃 무리다. 꽃잎으로 보이는 하나하나가 모두 한 송이의 꽃이다. 이처럼 줄기나 가지의 끝에 머리 모양의 꽃을 만드는 꽃을 ‘두상화(頭狀花)’라고 한다. 두상화는 100∼400개의 작은꽃들이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룬 ‘취합화(聚合花)’이다. 작은 꽃은 길이가 짧고 ‘통(筒)’ 모양을 하고 있어 ‘통상화(筒狀花)’ 또는 ‘관상화(管狀花)’라고도 한다. 흔히 꽃잎이라 부르는 꽃을 혓바닥 모양의 ‘설상화(舌狀花)’라 부른다.

통상화는 1개의 암술과 5개의 수술이 있는 완전화이다. 설상화는 한 개의 암술만 있는 불완전화이다. 통상화와 설상화의 비율이나 크기, 생김새에 따라 꽃의 모양이 달라진다고 한다.

국화꽃은 신이 만든 꽃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만든 꽃이라고도 한다. 국화를 장례에 ‘추도’의 의미로 이용하는 것은 인생을 잘 마치고 신의 품으로 돌아가 편히 쉬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국화가 유럽에 도입된 것은 17세기로, 유럽에서는 주로 죽음을 상징해 장례식에 사용되고 무덤에 놓여졌다. 특히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에서 거의 추모의 꽃으로만 쓰였다. 폴란드에서는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고인들을 추모하며 무덤에 국화를 놨다. 국화가 처음 미국에 전해진 것은 유럽보다 약간 늦은 1798년이었는데, 미국에서는 가을꽃을 대표하는 꽃으로 큰 인기를 끌며 컨테이너 식물로도 널리 재배됐다. 미국에서 국화는 기쁨과 긍정의 의미가 부여돼 집들이 선물, 병문안 꽃다발, 코르사주로도 인기였고 한다.

동양에서는 불로장생의 의미로 국화차나 국화주를 마시면 장수한다고 믿기도 했다.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환갑이나 진갑을 맞은 이에게 헌화를 하기도 했다.

북한강변 카페 가을빛 머금은 ‘대너리스’의 노란 국화 10월1일 촬영

국화과의 꽃은 혀 모양의 설상화와 통 모양의 관상화로 이뤄진 가장 진화된 형태의 복잡한 두상화라는 꽃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 송이로 보이는 꽃이 사실은 수많은 작은 꽃의 집합체인 셈이다. 지금까지 수천 종의 국화 품종이 개발됐는데 워낙 많은 종류가 있다 보니 분류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가장 단순하게는 꽃송이 크기에 따라 대국(지름 18㎝ 이상), 중국(9㎝ 이상), 소국(8㎝ 이하)으로 나눈다. 꽃 피는 시기에 따라 나눌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가을에 피는 추국(秋菊), 약간 늦게 초겨울에 피는 동국(冬菊), 개화 시기를 한참 앞당겨 여름에 피는 하국(夏菊)이 있다. 꽃이 피는 형태에 따라,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을 피우는 스탠더드 국화와, 하나의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을 피우는 스프레이 국화로 나뉜다.

설상화와 관상화로 이뤄진 꽃 자체의 형태에 따라서는 홑꽃·겹꽃·장식형·폼폰형·아네모네형·거미형·스푼형 등 13개 그룹으로 나뉜다. 스프레이멈(Spray Mum)은 한 줄기에 여러 꽃송이가 달리는 국화 종류를 말하는데 꽃은 여러 형태를 가질 수 있으며 절화용이나 정원용으로 쓰인다.

국화의 꽃말은 ‘고결’이다. 국화의 상징은 충절이며, 고고함과 청순함을 품고 있다. 장미처럼 색깔별로 뜻이 조금씩 다르긴 하다. 붉은색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뜻하고, 흰색 국화는 ‘진실’‘감사’를 의미한다. 노란색은 ‘짝사랑, 실망’을 뜻하지만 국화의 대표적 의미는 ‘고결’이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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