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파괴 급발진 사고 다신 없길…" 도현이 가족의 명절 소원
유족, 결함 입증 책임 '소비자→제조사' 제조물 책임법 개정 촉구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급발진 사고는 정말 너무나 단란했던 한 가정을 일순간에 무너뜨린 연쇄살인범이자 가정파괴범입니다…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늦었지만 반드시 법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아들 도현군을 잃은 이상훈 씨의 가족은 이번 추석 연휴 본가와 처가가 있는 강릉을 찾지 않았다.
일찌감치 도현이가 잠든 곳을 찾아 추모한 이씨 가족은 대신 전남 순천행을 택했다.
무엇보다 강릉에서 추석 연휴를 보내는 것이 심리적으로 힘들고,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급발진 추정 사고에서 운전자가 실제 조작한 페달을 확인할 수 있는 '급발진 확인 장치'를 개발해 최근 제44회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전남 송강고 2학년 국지성 학생을 만났다.
사고의 아픔을 잊기 위해 남쪽으로 핸들을 돌렸지만, 도현이네 가족의 사연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발명품을 만들었다는 국지성 학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직접 전하지 않고는 편히 연휴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너무나 단란했던 가정이 일순간에 와해했기 때문에…그냥 그렇게 멀리 떠나왔습니다. 모두가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추석 명절이지만 저희한테는 너무 잔인한 명절이네요."
이씨는 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도현이가 더 많이 보고 싶고 그립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며 연신 "그냥 그래요"라는 말로 '아프다'는 말을 대신했다.
그는 "급발진 사고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막상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니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소비자가 결함 원인을 입증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도현군이 타고 있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서 급발진 의심 현상이 일어나 큰 사고로 이어져 도현군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운전대를 잡았던 할머니(60대)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조사를 받았다.
반백 년 서울 생활을 접고 강릉으로 내려와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도현이 남매의 하굣길을 챙기는 등 손자를 돌봤던 할머니는 졸지에 '죄인'이 됐다.
이씨 가족은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약 7억6천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제기하며 이번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법정에 선 할머니는 "사랑하는 손자를 잃고 저만 살아남아서 미안하고 가슴이 미어진다. 누가 일부러 사고를 내 손자를 잃겠느냐. 제 과실로 사고를 냈다는 누명을 쓰고는 죄책감에 살아갈 수 없다. 재판장님께서 진실을 밝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또 사고 이후 이씨 가족이 지난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에 5만 명이 동의하면서 이른바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일부법률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피해자가 차량 결함의 원인을 입증해야 하는 현행법을 '차량에 결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자동차 제조업자 등이 입증해야 한다'고 바꾸어 제조업자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더 두텁게 보호하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사고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만 5개지만, 개정을 위한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조사와 산업계에 미칠 부담을 우려해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씨는 최근 국회를 찾아 국민의힘 권성동·박정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을 잇달아 만나 제조물 책임법 개정을 촉구했다.
의원들은 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올해 안에 적어도 상임위원회까지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씨는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입증하게 하는 제도 자체가 모순이자 폭력"이라며 "급발진 의심 사고에만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방향으로 올해 안에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급발진 사고 관련 민사소송에서 사고기록장치(EDR) 신뢰성 감정과 음향분석 감정을 거쳐 처음 승소한 사례가 되어 도현이 사고를 실마리로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급발진 사고 시 제조사가 방관하고 묵과하지 않도록 법 개정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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